검색결과


제 2권 제 2편 제 1부 교회의 최고 권위
1990년 6월호 (제 137호)
제4절 교황청 ⑦ 6개의 사무처들 (Officia) (114-131조) 제1절 상서원 (Cancellaria Apostolica)) (...

주일의 말씀
1990년 6월호 (제 137호)
성신 강림 대축일 (전야미사) : 6월 29일 1. 독서의 배경과 주제 제1독서(창세 11,1-9) : 막강한 ...

교회의 정의 활동의 신학적 근거
1990년 6월호 (제 137호)
IV. 복음화와 정의 예수는 교회와 신자들에게 복음을 온 세상에 선포하고 가르치라는 명령과 사명을 주...

복음 선교의 토착화 토착화 관점에서 본 복음 선교 이해의 어제와 오늘
1990년 6월호 (제 137호)
일 시 : 1990년 4월 30일 (월) 오후3시 ~6시 장 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회의실 사 회 : 김정수 (...

해방신학이 남미의 국가 발전과 교회 생활에 기여했는가?
1990년 6월호 (제 137호)
우리의 여러 가지 생각을 모으려 한다. 여기서는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는 계기가 되고 이것을 통하여 자기...

나의 고백
1990년 6월호 (제 137호)
배세영( Marcel Pelisse ) 신부님은 1928년 6월 28일 프랑스 랑작( Langeac ) 태생으로 파리 외방 전교회 ...

사회 정의는 사랑의 표현
1990년 6월호 (제 137호)
이스라엘을 구할 자로 믿었던 스승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사형을 당하였을 때 그를 따르던 제자들은 천...

한국 교회의 냉담자 문제
1990년 6월호 (제 137호)
대 담 : 강형일 (레지오 마리애 서울 세나뚜스 부단장),    윤길래 (수유 1동 천주교회 신...

남아메리카의 선교 역사
1990년 6월호 (제 137호)
서 론 천지가 창조된 후 제일 큰 사건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것이다. 즉 콜룸부스(Cristoba Colon) 가...

남아메리카의 사회 현실 - 경제적 측면을 중심으로
1990년 6월호 (제 137호)
I. 머리말 이 글에서 남미(南美)라고 지칭되는 지역은 사실상 멕시코에서 아르헨티나에 이르는 중남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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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백 1990년 6월호 (제 137호)

나의 고백

배세영 (파리 외방 전교회 한국지부장·신부)

배세영( Marcel Pelisse ) 신부님은 1928년 6월 28일 프랑스 랑작( Langeac ) 태생으로 파리 외방 전교회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1953년 5월 31일에 사제로 서품되어 그해 10월 30일에 한국으로 부임하셨다. 1955년 포항 천주교회(1955ㅡ 1958, 현 죽도동 천주교회)를 시작으로 영주 천주교회(1958ㅡ1967, 1969ㅡ1972, 현 휴천동 천주교회), 안동 천주교회(1967ㅡ1969,현 목성동 천주교회),점촌 천주교회(1972ㅡ1974,현 충현동 천주교회), 울진 천주교회(1977ㅡ1978)에서 사목 생활을 하셨고 1978년부터 현재까지 파리 외방 전교회 한국 지부장으로 계시다.


1, 당신이 살고 싶은 곳은?


한국이다. 선교사로서 하느님이 보내주신 약속의 땅이기 때문이다.


2, 당신이 가고 싶은 곳은?


프랑스 고향이다. 성소에 따라 이 땅의 먼지가 되었으면 좋겠으나 활동을 못하게 되면 귀국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3. 당신이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이며 그것이 이루어졌거나 이루어지고 있는지?


주어진 성소에 따라 한국 민족과 만나 서로 주고받고 함께 살며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전하는 것이다. 32년 전에 비신자들 가운데 파견되어 초대 신부로서, 하나의 공동체가 탄생해서 성장하며 제 스스로 해나가는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보았다.


4. 당신이 진심으로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사람은?


친구 신부들이다. 살아가다 보면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30여 년 전 시골에서는 서로 마주 앉아 마음 터놓고 기탄없이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5. 당신 생애에서 가장 고마운 사람은? 그 이유는?


어머님을 빼놓고 몇 분이 계시다. 그 분들은 언제나 나를 염려해주시고 돌보아주며 그들에게서 한국인의 심리라든가 의식 구조를 배웠기 때문이다. 잊을 수 없는 은인들이다.


6. 당신 생애에서 양심에 가장 거리낀 일을 한 것은?


양심에 거리낀 일은 없다. 그러나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지 못해서 아쉽고 반면에 겸손의 덕을 닦는 계기가 되었다.


7. 당신의 삶의 목적은?


주님을 닮아서 하느님 아버지와 상대자가 되는 것이고 주님의 증인으로서 형제 자매들을 이끄는 것이다.


8.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덕목은?


인내와 사랑이다. 타국에 온 외국인에게는 특히 인내가 없어서 안 되며 꼭 필요한 것이다.


9. 당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부족한 내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상대방이 받아들이는 것이 제일 아름다운 것으로 느껴진다.


10. 당신이 보기에 세상에서 가장 완전한 행복은?


인생은 미완성인데도 인생의 유위전변(有爲轉變)을 살면서 나를 부르시는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고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갖고 사는 것이다.


11 당신이 겪은 가장 큰 행운은?


사제가 된 것이다.


12. 당신이 겪은 가장 큰 불행은?


13년 전에 당한 교통 사고이다. 죽었을 텐데 살아났다. 그때 그 이전에는 몰랐던 육신의 고통을 체험하며 보다 훌륭하게 살아가라는 훈계로 받아들였다.


13. 당신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불신이다. 한국인이 친절하면서도 은둔한 왕국의 쇄국 정치사상이 잠재 의식 중에 남아있는 것인지...


14. 당신에게 부자유를 가장 크게 느끼게 하는 것은?


“당신이 무엇을 하고 있오!” “언제 갑니까?" 라는 두 질문을 받을 때에 심리적으로 조크를 먹게 된다. 이 세상이 지구촌이 된 마당에 아쉬움을 금치 못한다.


15. 불행이나 고난 또는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어디서 얻는지?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생사하여 동참하는 인내와 사랑으로 이겨낸다.


16. 원수나 미운 사람과 어떻게 화해할 수 있으며 참 용서가 가능한지?


대개는 남과 화해하기 전에 주님의 용서를 받으려는 신자가 많다. 용서하는 것이 가능하기에 주님이 화해를 하라고 하신다. 또한 한국 전통에 의하면 경천애인(敬天愛人)이란 말이 있다. 신앙인의 입장에서 자기를 무조건 주님께 맡겨서 인격적인 신앙을 가지면 화해하는 순간에 자기 자신보다 주님을 선택하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본다. 화해는 곧 사랑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17. 당신에게 영향력을 준 책은?


한국에 와서 적응하는 과정에 도움이 되고 또 여러 가지를 알고 싶고 이해 하려고 우선 한민족의 역사인 "삼국사기”를 읽었다. 그리고 박해를 알려고 신단미사,단기고사,구원사화,환단고기 등을 읽었다. 또한 불경도 읽어 보고 파리 소르본느 대학에서 공부하신 스님 두 분의 논문(불교에서 악마, 재생)을 감명 깊게 읽었다.


18. 당신에게 영향력을 준 종교 서적은?


준주성범과 프란치스꼬 바리오 신부가 저술한 "믿는 기쁨 사는 기쁨”이다.


19. 성숙한 사람에게서 첫째로 꼽을 수 있는 성격은?


인내로운 마음을 갖고 꾸준하게 떳떳하게 해나가는 성격이다. 믿음을 실천에 옮기고 특히 사랑의 계명을 잘 지키는 것이다. 오늘의 젊은이들은 앞으로 기성 세대와 타협하는 것을 배웠으면 한다.


20.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가장 바라는 것은?


가정생활을 잘하며 부모들과 함께 기탄없이 대화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부모들이 자녀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며 그들을 소유물로 여겨서는 안되고 그들을 위하여 그들을 교육해야 되고 자유로운 몸으로 성장시켜야 한다.


21. 우리의 대학생들에게 가장 기대하는 것은?


이 나라의 주인과 일꾼이 될 이들은 물론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며 가득 차 있는 머리보다 잘 생각하는 머리가 좋을 듯하다. 사회에 대하여 관심을 두는 것이 당연하며 또 사회 문제에 대해 지적하는 점들이 의의가 있다 하더라도 아직까지 세세히 다 알지 못하는 입장이니 자만하지 말고 폭력은 무조건 포기해야 된다고 본다. 자신을 지나치게 믿지 말고 노력했으면 한다.


22. 우리 나라의 가정에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고 가정을 결속시키는 점은?


가장의 부재시가 많고 가정이 하나의 숙소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아내를 믿어서 그런 것이겠지만 이러한 까닭에 자녀들의 생활 중심이 가정이 아니고 밖의 친구들과 지내는 것이 된 것 같다. 부모들이 화목하게 함께 하는 것을 못보고 중요한 가정교육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아이들은 단순하기 때문에 부모가 보여 주는 모범의 생활이 필요하고 따뜻하고 안정된 분위기 속에서만이 자아가 형성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가정의 전통을 살리면서 특히 어른들을 공경하는데 있어서 현사회에 알맞는 새로운 방법 을 찾아야 할 것 같다.


23. 남존여비를 벗고 사회 발전을위해 여성에게 무엇을 베풀어야할지 ?


인간은 혼자 남자가 아니고 홀로 여자도 아니고 남녀 한 쌍이 인간이다. 성서에 의하면 각각 따로 책임을 받았지만 서로 보완해 가면서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우선 이 동등함을 인정해야 한다. 남자가 하느님께 물려받은 권한은 지배적이 아니고 보호하며 봉사하는 것이며 자기 인성에 적합한 법을 지키는 것이다. 따라서 여자는 소유물이 아니고 하느님께서 주신 동등한 인격체인 동반자이다. 범죄를 하였을 때 악마는 먼저 깊이 생각하는 여자에게 말을 꺼내 여자가 응하였고 남자는 입 다물고 자기와 동반자를 보호하지 않았으며 지켜야 할 법으로써 자기네들이 하느님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느님의 계획을 무시해 버린 인내하지 못한 죄인 동시에 건방진 죄를 지었다. 여성들에게 베풀어야 할 것은 남성들에게 달려 있고 여성들 스스로 도 자기의 권리를 찾고 또 소질을 키워 남성들에게 의존하려는 생각을 고쳐나가기 바란다. 남성들은 특히 직장에서 더 이상 여성을 보조 역할을 하는 존재로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서로가 동등한 입장에서 같은 일을 하는 동료로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24. 사회의 성숙한 발전을 위해 개선되어야 할 한국의 남성상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성서에 나타난 남성상을 본받아야 한다. 남성들을 위주로 하는 세상을 바라지 말았으면 한다. 남녀 공존해서 이끌어 가는 사회라는 것을 깨닫고 부족한 점온 서로·보완해 나가면서 이해하며 또 양보하면서 서로의 위치를 존중하고 인정해 주어야 한다. 이제 남성 상위 시대는 지난 것 같다.


25. 당신은 한국인의 장점과 단점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인정과 집단 의식이 장점이긴 하나 지나친 배타적인 경향이 있어 보인다. 예를 들어 지방 색채 등이 그런 것이다. 서로가 너무 편견적인 생각 때문에 관계가 애매하고 균형이 잘 잡히지 않는다. 외국인은 "한국인이란” 잘 알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국산품보다는 외래품을 좋아하고 사람을 거부하는 습성 때문에 어이가 없을 때가 많다. 선교사는 그런대로 이해를 하는데 민간인은 이것을 멸시로 느낄 때가 많다.


26. 한국에 살면서 가장 좋은 점과 언짢은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좋은 점은 친절과 인정이 많다는 것이다. 한국 속담에 "이웃 사촌”이란 말이 있고 남에 관한 관심이 있어 좋긴 좋으나 지나치게 사생활에 간섭하는 경향이 있어 언짢다. 물론 인정이 많은 민족이라 쉽게 대인 관계를 맺을 수 있어 좋으나 선교사로서 체면과 면목을 유지하면서 "손님"의 영성을 가꾸기에는 어렵다.


27. 역사상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그 이유는?


김수환 추기경님을 경애한다. 인품이 풍부하시고 총명한 성격을 가지시고 외국인들에 대한 열등감이 없으시고 유머도 있으시기 때문이다. 고향의 인물로는 드골 (De Gaulle) 대통령을 존경한다. 그는 권력에 매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28. 어떤 사람이 국가 사회 공동체의 발전에 가장 이바지하는지?


자기 의무를 다하고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정신을 가졌으며 언제나 공익을 앞세우는 사람이다.


29. 어떤 사람이 국가나 사회 공동체의 발전에 가장 해를 끼치는지?


멸사봉공의 정신이 없어서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투기와 도박하는 사람이다.


30.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것은?


주택, 공해, 교통, 치안 문제 등이다.


31. 남북 통일의 첫걸음이 무엇이고 이를 위해 계속해야 할 과제는?


남북 통일을 위해서 우선 있는 그대로 양쪽이 서로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바탕 위에 인간적이고 물질적인 교류를 실현해야 한다. 남한에서 북한에 대해 더 많은 이해와 인내가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북한의 문화를 받아들여 통일하기 전에 지방 색채를 해소해야 한다.


32. 현재 우리 나라에서 정치인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멸사봉공의 정신을 가지는. 것이다. 정당을 위해서 정치를 하기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봉사하는 정신으로 정치를 해야 한다.


33. 현재 우리 나라에서 국민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는 것이다. 세계 앞에서 뭉치지 않는 민족은 올바른 인정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한국은 선진국만큼 개방되기에는 멀었다고 생각된다. 고유한 것은 보존하고 보호하며 남의 좋은 것은 인정하며 받아들이는 작업이다.


34. 현재 우리 나라에서 막중한 책임을 질수록 꼭 지켜야 할 기본 덕목은?


겸손과 청렴이다.


35. 한국에서 가장 소중히 보존해야 할 전통이나 문화를 무엇으로 보시는지?


한국말을 보존해야 하는데 영어를 너무 쓴다. 또한 시대에 알맞는 방법으로 효도를 보존하고, 죄의 의식이 없어져서 희박해진 정조 관념을 회복하고 신의를 철저히 지키는 것 등이다.


36. 무당의 굿을 본 적이 있는지? 있다면 볼 때의 느낌은?


절대적인 무신론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성스러운 느낌을 얻지 못했다.


37. 선교사로서의 첫 도착지는 어디며 첫 본당에서의 잊지 못할 추억은?


경상북도 포항시 죽도동 천추교회에 제3대 주임으로 부임했다. 한국에 온 지 2년밖에 안 되는 이때 아직까지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는 나를 신자들이 받아들이고 감싸준 것을 기억한다. 프랑스 교회가 나를 키우고 파견했지만 한국 교회는 나를 새 신부로(25살 때) 받아들여 본성소에 따라 해나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준 것을 잊을 수가 없다.


38. 우리 나라에서 선교사로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나 장애가 되는 요소는?


무엇보다 언어 공부이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사고 방식이 다르고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생활 방식을 잘 몰랐기 때문에 사람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39. 본당에서 뜻하지 않은 큰 실수가 있었다면 언제 어떤 일이었는지?


특별한 것은 별로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냥 적응하는 과정에서 '동방예의지국'인 이 나라의 전통 예절을 잘 몰라 실례를 한 것이 많았다.


40. 그동안의 사목 생활에서 가장 인상 깊고 재미있었던 본당은? 그 이유는?


경북 영주시에 초대 신부로 15년 간 살아온 휴천동 본당이다. 안동 교구가 설정되기 10년 전이다. 비신자들 가운데 파견되어 크리스찬 공동체가 탄생하고 성장하며 그들 스스로 해나가는 것을 보았다. 교우들이 나를 의지하지 않고 자기네들의 교회라는 것을 자각하는 데 7, 8년이나 걸렸다.


41. 당신 선배 신부님들이 한국 교회를 위해 가장 잘하신 일이라면 무엇인지?


선배들이 이 땅에 오자마자 방인 사제를 양성한 것이다. 그들의 최고 목적 이었다.


42. 선배 신부님들이 한국 교회를 위해 등한시했거나 못한 것이 있다면?


교육 사업을 하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목적이 아니었다. 또한 60년 동안이나 상복을 입고 숨어가며 사목을 해야 했고 또 개화 될 때에 학교를 세울 만한 자본도 없었기 때문에 교육 사업을 위하여 베네딕도회를 불러들였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독립 운동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에 온 선배들의 대다수가 프랑스 대혁명을 겪은 신자들의 아들들이거나 손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19세기 말엽에 프랑스 교회가 당한 박해 때에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타국에 와서 외국 선교사로서 중립을 선택했다. 민 대주교는 일본이 추방하려는 독일 선교사들을 보호해야만 했다. 외국인으로서 간섭했다면 추방될 것인데 중립을 선택한 이유는 사목 활동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삼일 운동 때 신학생들을 길거리에 못나가게 한 것도 만일에 나가서 학살되었으면 누구의 책임이었겠나? 독립을 반대했던 것이 아니고 다수의 선택이었다.


43. 당신들이 한국 교회에서 활동히^ 것이 프랑스에 어떻게 알려지고 있는지?


.파리 외방 전교회 본부에 홍보국이 있다. 네 가지의 월간 잡지를 발행하고 있다. 하나는 Echos de La Rue du Bac ( Bac 거리의 메아리)가 본회 내부용이다. 즉 본회 회원들과 그들의 가족 은인들을 위한 것이다. 또 하나는 Peuples du monde (지구촌의 민족들)인데 다른 여러 선교회들과 함께 발행한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Egiises d'Asie (동양의 교회들)와 또한 Les Dossiers EFA (프랑스와 아시아 교환)의 자료집인데 각 나라와 교회를 소개하고 소식을 전하며 일반 모든 신문사들까지 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또한 각 나라에 흩어져 있는 회원들의 편지로써 본 교회의 활동에 알려지고 있다.


44. 두 명의 한국 사제가 프랑스에 사목을 하러가는 것으로 아는데 한국 사제들의 프랑스 본당 사목을 그곳 신자들이 어떻게 이해하는지?


우선 프랑스 교회와 한국 교회가 약간 명의 신부를 교류한다는 동기부터 말하면 신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교회는 한 공동체( Communio )이기 때문이다. 만민을 모으는 공동체이다. 이 사실을 앞세워 교회들이 서로 접촉하여 도우며 서로 배우고 마음을 채워 주는 운동의 시대이다. 복음 선교에 속한 운동이다. 이미 안동교구 출신 이영길 신부님이 파견된 교구는 조선교구 제4대 주교이신 성 시메온 장(Bemeux) 주교의 출신 교구이다. 이 신부님이 그곳 교우들에게 대환영을 받았다. 150여 년 만에 한국 교회가 잊지 않고 이곳에 신부를 보내 주신 것은 너무나 신기하고 이렇게 안배하신 하느님께 찬양드린다.


45. 파리 외방 전교회가 한국 교회를 위해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싶은지?


한국 교회에 물어 보아야 알겠지만,특수 사목이라고 본다. 즉 특수한 분야에서 일을 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여기서도 방인 사제들이 다 할 만 하다. 내가 보기에 한국 교회는 선교사의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않는 듯하다. 그러나 우리가 현재 다섯 교구에 흩어져 20명의 신부들이 일반 본당 사목과 노동 사목, 평신도 교육과 사제 양성, 자선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본회의 규칙에 의하면 우리가 현지 교회 안에 현지 교회와 함께 한다는 것이다. 본회의 사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기에 현지 교회가하는 일에 협조해서 도와주고 있다. 우리는 보편 교회의 중인으로서 현지 교회와 함께 하는 것이다. 신앙이란 언제나 다른 데에서 오는 것임을 말해주며 적응되기 위해서는 모든 노력이 강생 최고의 원칙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급히 성장하는 한국 교회 안에 신앙의 뿌리를 깊이 내리고 크리스찬 성전을 창조하는데 다른 문화의 사람으로서, 선교사가 본 생활로써 주는 증거가 중대하다고 본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한국 교회는 많이 받았으니 이제 많이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국 교회와 우리 '선교의 카리스마'를 나누고 싶다. 프랑스 교회와 신부를 교류하게 된 것도 이 방향으로 가는 첫걸음인 줄 안다. 그리고 복음 선교의 책임자들이신 한국 주교님들이 한국에 머물고 있는 선교사들이 와 있는 의미에 관하여 별 말씀도 없으시고 또 그 분들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조차 우리 선교사들이 모르는 것이 아쉽다.


46. 당신이 보낸 신학생과 수녀 중에 몇 명이나 신부와 수녀가 되었는지?


신부된 사람은 없지만 수녀는 7명 있다.


47. 본당 신부들이 사목상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점과 피해야 할 점은?


공동 사목을 하는 것이다. 교구의 사목지침서를 따르면서 본 지역에 적응되도록 힘쓰며 각계 각층의 평신도들과 함께 협력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사목회들을 보면 큰 역할을 하고 있으나 간부들 대다수가 사회적 지위 때문에 선택된 사람들이고, 서민층의 대표자가 없다. 그리고 하늘나라를 건설하는데  "Mamon" (금전)을 이용하는 것이 이상하다. 그래서 성당에 다니는데 돈이 필요하다는 소리를 들을 때 마음이 아프다.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자기 부활이 복음화 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세례를 준 다음 신자들의 지속적인 양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단지 세례만 받은 신자들이 많은데 아쉽다.


48. 한국 천주교 신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인격적인 신앙을 가지도록 노력하기를 바란다. 하느님은 달래야 하는 귀신이 아니고 이용할 수·있는 고용인도 아니다. 그래서 ‘기복 신앙'과 ‘기적 신앙'의 자세는 버려야 된다.


49. 한국 천주교회가 키워야 할 좋은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어떻게 키워야 할지?


선조들이 보여주신 자발성이다. 신앙 생활은 가정, 직장, 사회에서 하는 것이다. 떳떳하고 용감하게 해야 된다. 그리고 순교 정신이다. 선조들은 명예, 존경, 인정을 찾지 않았고 주님과 교회를 위한 것이라면 순전한 봉사 정신으로 하셨다. 이분들의 삶을 본받아야 한다.


50. 한국 천주교회에 대하여 비판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


성직자들은 보다 겸손해야 하며 근면해야 하고 귀족화되면 안된다. 교회는 가난한 이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많이 하고 또한 실제로 도와주고 있으나 주님의 원외를 채우고 또 주는 증거가 믿을 만해지기 위해서 교회 자신도 가난해져야 된다. 밖에서 보면 교회는 커지기만 하는 주식회사와 같은 인상을 준다. 내부로부터 복음화 되어야 온 백성의 복음 선교에 이바지하게 된다. 또한 노동 사목 담당 주교가 없다는 것도 지적할 수 있다. 부주의로 노동계에 있는 사람들이 교회와 멀어져 가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서양 교회가 한 실수를 이곳 교회도 반복할 우려가 있다. 교회는 성장을 위하여 온 힘을 기율이고 있고 모든 신자들의 단체도 교회의 운영을 위하여 힘쓰고 있으나 교회는 자기를 위하여 있는 존재가 아니고  온 국민을 위하여 있는 공동체이다. 이것 때문에 교회가 현재 드러내고 있는 그 모습은 덜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51. 한국 천주교회가 민족을 위하여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역사를 보면 불교가 정치를 많이 했기 때문에 망했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한다. 교회 이름으로 정치에 관여하면 개인으로 잘못했을 때에 언제나 전체 공동체가 손해를 본다. 교회는 사회에 윤리 도덕, 복음적 가치관을 갖다 주는 역할을 해야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교회 자신이 나무랄 것이 없어야만 한다.


52. 2천년 한국 천주교회가 가장 힘써야 할 사목의 과제는?


복음 선교다. 가톨릭 신자들이 5%밖에 안되고 인구의 80% 이상이 비신자들이다. 한국은 전교의 황금 어장이라 하겠다. 주일에는 성당마다 신자들로 가득차기만 한 나무가 산 전체를 못 보게 하는 것과 같고 한 나무가 큰 산을 가린다는 속담이 우리 현실을 말해준다: 복음 선교는 이 땅에 하느님 나라가 임하게 하는 것이다. 교회는 자기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하늘 나라의 봉사자이다. 또 교회는 하느님 계획 안에 위치하며 모든 이들과 함께 걸어가고 있으며 양떼처럼 치는 백성(신자와 비신자)의 필요를 하느님과 함께 들어가면서 인간의 길을 걷고 있다.


53. 당신 삶에서 이론적인 설명이 불가능한 신비로운 체험이 있다면?


주의 기도에는 일용할 양식을 주십사고 기도하는데 하루 밥 세끼를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이만큼 나를 아시고 사랑하시며 돌보아주신다는 것을 믿는다는 고백이다. 사제로서의 처지에 따라 내리는 하느님의 은총이 신비스럽다.


54, 현재 당신의 삶에 만족하는지? 만족 못 한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올해로 만 62세다. 나이가 많아짐에 따라 확실히 알고 있다는 것이 모르는 것이다. 오늘까지 해놓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느낀다. 나의 삶에 만족 못해서가 아니라 교구 신부로서 봉쇄 수도원에 들어갔으면 한다. 그러나 모순인 줄도 안다.


55. 당신이 다음 세대에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없다. 후배들이 선배들의 말을 잘 믿으려 하지 않고 직접 체험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56. 사후의 세계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부활은 죽는 순간부터 시작되어 종말에 가서 완성된다. 바오로 사도께서 모든 이들 가운데 제일 먼저 태어나신 분이라고 불리우는 예수님이 묵시록(1, 6)에 죽음으로부터 제일 먼저 살아나신 분이시라고 했다. 피하지 못하는 죽음은 생명의 어떤 형태의 끝인 동시에 생명의 다른 형태의 시작이다. 죽는 순간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다. 피조물로서 죽음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상상하지 못한다. 신앙의 확고부동한 확신은 믿는데 캄캄하다는 것을 없애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 안에 제일 먼저 죽는 순간부터 살아나는 것이 남과의 관계(부모,친적, 친구, 은인) 등이다. 이 세상과의 관계도 노동과 미술과 문화 등으로써 나의 몸이 얻는 것들도 살아날 것이다. 나의 생명이었던 여러 관계들이 생활하신 그리스도의 전능으로 말미암아 살아날 것이다. 그때 나의 기쁨은 사랑의 기쁨이다. 영육과 함께 새로 존재하는 형태이다. 그리고 인간이 신성화될 성소가 없었다면 육신의 부활도 없을 것이다. 하느님과 비슷하게 될 성소 때문에 예수님이 강생하셨고 영육과 함께 행복하기 위한 조건이다. 정신이 육신의 지배를 받지 않고 완전한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자유로운 몸은 온갖 이기심을 포기한 몸이다. 홀로 성자이신 예수님을 닮는 것이다. 하여간 교회는 육신의 부활을 믿고 고백한다. 한 가지 예를 들어서 말하면 (감이 있고 감나무도 있는데 감밖에 보지 못한 사람이 감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부활한 몸을 상상하지 못하나 감나무를 보는 사람 이 감씨 안에 어떠한 형태로 감나무가 있는지·물어보지 못한다.". 감나무가 감씨 안에 감나무로 현존하기 때문이다.


57. 당신은 어떤 좌우명을 가지고 살았는지?


씨앗 모양으로 이미 받은 영생을 만드는 것이다. 모두 다 이기심과 죄를 빼 놓고 살아날 것이다. 더욱더 주님과 가까이 하여 산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