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제 2권 제 2편 제 1부 교회의 최고 권위
1990년 6월호 (제 137호)
제4절 교황청 ⑦ 6개의 사무처들 (Officia) (114-131조) 제1절 상서원 (Cancellaria Apostolica)) (...

주일의 말씀
1990년 6월호 (제 137호)
성신 강림 대축일 (전야미사) : 6월 29일 1. 독서의 배경과 주제 제1독서(창세 11,1-9) : 막강한 ...

교회의 정의 활동의 신학적 근거
1990년 6월호 (제 137호)
IV. 복음화와 정의 예수는 교회와 신자들에게 복음을 온 세상에 선포하고 가르치라는 명령과 사명을 주...

복음 선교의 토착화 토착화 관점에서 본 복음 선교 이해의 어제와 오늘
1990년 6월호 (제 137호)
일 시 : 1990년 4월 30일 (월) 오후3시 ~6시 장 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회의실 사 회 : 김정수 (...

해방신학이 남미의 국가 발전과 교회 생활에 기여했는가?
1990년 6월호 (제 137호)
우리의 여러 가지 생각을 모으려 한다. 여기서는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는 계기가 되고 이것을 통하여 자기...

나의 고백
1990년 6월호 (제 137호)
배세영( Marcel Pelisse ) 신부님은 1928년 6월 28일 프랑스 랑작( Langeac ) 태생으로 파리 외방 전교회 ...

사회 정의는 사랑의 표현
1990년 6월호 (제 137호)
이스라엘을 구할 자로 믿었던 스승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사형을 당하였을 때 그를 따르던 제자들은 천...

한국 교회의 냉담자 문제
1990년 6월호 (제 137호)
대 담 : 강형일 (레지오 마리애 서울 세나뚜스 부단장),    윤길래 (수유 1동 천주교회 신...

남아메리카의 선교 역사
1990년 6월호 (제 137호)
서 론 천지가 창조된 후 제일 큰 사건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것이다. 즉 콜룸부스(Cristoba Colon) 가...

남아메리카의 사회 현실 - 경제적 측면을 중심으로
1990년 6월호 (제 137호)
I. 머리말 이 글에서 남미(南美)라고 지칭되는 지역은 사실상 멕시코에서 아르헨티나에 이르는 중남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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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만남 1990년 6월호 (제 137호)

해방신학이 남미의 국가 발전과 교회 생활에 기여했는가?

장용주 (광주대교구청 홍보국장 · 신부)

우리의 여러 가지 생각을 모으려 한다. 여기서는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는 계기가 되고 이것을 통하여 자기의 생각을 점검하는 위치를 제공하련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같은 의견보다는 서로 보완하면서도 대치되는 다른 의견을 가진 이웃을 만나려 한다. 그런 일의 기준은 세계적으로 양분된 정치 상황에서 출발 되겠으나 그 바탕에는 철학적 역사 발전의 근저에 그런 논리가 깔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 내부에서도 자기 자신의 긍정, 부정의 긴장 관계가 도사리고 있음을 느끼며 사는 오늘의 현실에서「사목」은 우리가 겪는 한계와 정반 (正反), 긍정 부정의 자기 상황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려고 고심하는 분들을 위하여 "우리의 만남”을 시작한다.


긍정


장용주 (광주대교구청 홍보국장 · 신부)



최근 교회 내의 일부 신자 모임('평화일치실천회 준비 모임’)에서 배포한 유인물 내용 가운데 “바티칸 교황청은 해방신학을 이단으로 단정하고 이의 창궐을 막는데 주력하고 있으며.”라는 근거 없는 주장이 담겨 있어 우선 사실 유무를 명확히 밝혀 둘 필요성을 느낀다.


해방신학에 대하여 지금까지 바티칸에서 공식적으로 표명한 것은 1984년 8월 6일에 반포된 '해방신학의 일부 측면에 관한 훈령과 1986년 3월 22일 반포된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해방에 관한 훈령’ 등 두 가지가 있다.


첫번째 훈령이 발표되자 당시 우리나라의 제도 언론은 "해방신학,드디어 단두대에 서다"라는 커다란 제목을 달고 교황청 신앙 교리 성성의 훈령을 왜곡하며 해방신학을 매도했던 사실을 필자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사실 검증을 거치지 않고 정부와 제도 언론의 허위 보도를 그대로 믿었던 사람들은 아직도 그 같은 주장을 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교회는 결코 그런 어리석은 과오를 범하지 않는다. 실제로 해방신학에 관한 두 가지 훈령 그 어디에도 해방신학을 단죄하는 문구는 단 한 구절도 찾아볼 수 없다.


1984년의 훈령은 머리말에 그 취지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즉 “해방신학의 어떤 형태에 의해 초래되어,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신앙을 손상시키는 일탈 또는 일탈의 위험에 대해 사목자들,신학자들, 그리고 모든 신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려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곧이어 "그러나 이러한 경고는 결코 진정한 복음 정 신으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입장에 대한 비난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또한 비참하고도 절박한 인간 불행과 불의의 문제에 직면하여 무관심하거나 애매한 태도를 지키는 자들을 위한 변명으로 이용되어서는 안된다”라고 함으로써 교황청 훈령은 이미 해방신학을 매도하는 자들에게 경고했던 것이다.


또한 1986년의 훈령은 "자유의 신장을 저해하고 인간 존엄성을 침해하는 여러 장애에 대한 명확한 인식에서 강렬한 해방의 열망이 일어나 우리들을 세계를 휩쓸고 있다’'고 진단하며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러한 열망을 자기 자신의 열망으로 삼는다”고 밝히고 있다.


해방신학은 전통 교회의 가르침과 무관하게 남미 땅에서 홀로 솟아난 신학이 아니다. 해방신학의 출범에 결정적 동기를 부여한 것은, 특히 교황 요한 23세의 회칙「지상의 평화」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중 '현대 세계의 사목 헌장’ 그리고 교황 바오로 6세의 회칙「민족들의 발전」등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이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현대의 민주적이고 다양한 사화 현실 속에서 구원의 기쁜 소식을 효과적으로 전파하기 위하여 교회의 현대화(aggiomamento)를 추구하기 위해 소집된 회의로서,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군주제적 틀 속에서 획 일적이고 독선적이며 방어적인 교조적 독백의 삶을 살아온 교회관과의 작별을 선언한 역사적 회의였다.


즉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조적 독백의 자리에 인간과의 대화를 강조하고, 권위를 가진 교회가 아니라 봉사하는 교회의 이념을 강력히 천명한 것이다. 이제 교회는 더 이상 자기 중심의 교회가 아니다. 교회는 자기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상실하지 않으면 안되며,인류에 봉사하고 인류를 사랑하기 위하여 인간을 향해 자기 중심으로부터 떠나야 한다. 공의회는 "기쁨과 희망, 슬품과 번뇌, 특히 현대의 가난한 사람과 고통에 신음하는 모든 사람들의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 신도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번뇌인 것이다''(사목 헌장 7항)라고 선언함으로써 교회 선교의 장이 인간 삶의 중심으로 옮겨 온 것이다.


또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한걸음 더 나아가 "교회는 시대의 징표를 탐구하고, 복음의 빛으로 그것을 해명해 줄 의무를 지니고 있다”(사목 헌상4항) 라고 선언함으로써 교회의 사회 개혁에 능동적 참여를 촉구하였다.


남미의 해방신학자들은 다수 민중의 삶이 가난과 착취와 억압으로 점철된 고난의 역사에 대한 ‘시내의 징표'를 진단하기 시작했다. 해방신학은 해방신학자들 자신이 주장하듯 "불의한 사회 체제 하에서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소외된 계층들의 한 맺힌 고통의 실체를 ’신앙의 빛’으로 비추어 보려는 신학적 성찰”이다.


이러한 신학적 성찰을 토대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회 구조、속에서의 교회의 역할에 대해 반성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교회가 지금까지 종교의 비정치성 을 빙자하여 기존의 질서를 묵인함으로써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체제 유지에 기여해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종교가 인간의 실제적 고통에 무감각하고 방관함으로써 인간에게 아편적 기능을 역사 속에서 자주 해왔다는 사실도 상기 하게 되었다.


이려한 바탕에서 처음엔 어떤 체계된 이론 정립도 없이 불의한 사회 체제의 개혁을 부르짖는 그리스도인의 수가 급증했다. 불의한 사회 구조의 쇠사슬에 얽매어 억압받고 있는 민중을 해방하고,이런 현실을 외면한 채 지금까지 무감각 하고 냉담했던 종교심에서·탈피하여 복음의 비판적 힘으로 살아야 한다는 교회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갔다.


1968년 콜롬비아의 메델린에서 열린 남미 주교회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과 남미 신학자들의 산발적인 신학적 작업을 포괄적 개념인 '해방신학’이라 는 이름으로 수용하였다. 메델린 주교회의는 바로 남미의 ‘시대적 징표'를 진단하고, 남미 교회의 진로를 제시한 것이다.


메델린 선언문은 “사회의 빈곤과 불의를 추방하고 소외 계층의 비인간화를 종식시키는 것이 그리스도교인의 결정적 소명이다”라고 천명하였다. 그리고 남미 의 현실을 "불의한 구조요,제도화된 폭력이 지배하는 상황”이라고 규정하며 "남미는 어떤 양상의 회생을 무릅쓰고라도 해방을 실현할 것이다”라는 단호한 결의도 표명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소명의 실천은 교회 안팎에서 기득권자들과 안정 희구 세력들의 강한 반발과 탄압에 부딪치게 되었다. 엘살바도르의 로메로 대주교를 비롯하여 수많은 성직자, 수도자들의 희생도 수반하였다. "선의의 이웃들과 함께 인간적 사회의 건설"을 위한 해방신학자들의 투신적 활동이 커갈수록 수구론자들의 비난과 탄압도 그만큼 커갈 것이다.


그러나 인간다운 사회 건설을 위해 헌신하는 이들은 그리스도 교회가 기존 현실에 대해 아무런 물음도 없는 축제가 아님을 알고 있다. 또는 이들은 그리스도교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인간이 교회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결코 잊지 않는다.


해방신학이 실천적 성격을 띠게 됨으로써 그 실천 방식에 따라 다양한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해방신학의 명분 아래 맑스주의적 노선을 걷는 소수의 무리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순수한 복음적 해방신학자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무리들이다.


해방신학에 대해 논하거나 비판을 가할 때에는 해방신학의 조류들을 구분하여 지적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선의의 해방신학자들까지 덤으로 비난하게 되는 불의한 짓이 되기 때문이다.


해방신학은 오늘의 구체적 삶의 여건을 신앙의 빛으로 비추고, 성서의 말씀을 생활한 말씀으로 전달하려는 노력이다. 특히 삶의 저변에서 고난당하는 계층에게 성서적 희망을 제시하여 그들로 하여금 역사의 주체가 되고,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참된 인간 회복을 위해 해방의 대열께 능동적으로 참여토록 촉구하는 신학이다.


예수께서도 생전에 그의 말씀과 행적이 기득권자들의 귀에 거슬린다 하여 배척당했으며,그의 존재는 지배 권력층으로부터 위협적 존재로 간주되었었다. 해방신학의 목소리도 역시 기득권자들의 귀에 거슬릴 것이며 권력자들에게는 위험스런 경계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해방신학은 '시대적 징표’가 낳은 신학임에 틀림없다.


비판 


엄익채 (평화일치실천회 회장·가정신문사 대표이사)


1. 리오 그란데강 이남의 중남미에 진출한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무력으로 토착민 인디오를 살상,이들의 영역을 정복하고 총독을 두어 오랫동안 식민 통치를 펴왔고 민중의 항쟁으로 공화제로 독립한 후에도 잦은 군부 쿠데타로 인한 권위적인 전제 정치를 펴왔다.


백인 정복자로 지배 계층을 형성하고 인디오와 흑인 또는 혼혈인을 피지배 계층으로 하는 국민층을 형성하였다.


한편 중남미 각국의 지배 계층은 식민지 경영에 있어 재화를 본국이나 해외에 도피시켜 자신의 부 축적에만 혈안이 되었다. 따라서 이들에게 있어 국민이나 경제 활동은 지배층의 축재를 위한 착취의 수단일 뿐 영욕을 함께 하는 민족의 공동 운명체적 연대 의식 따위는 있을 수 없었으며 산업 형태도 특권층에게 고용된 농부, 목부, 광부, 어부 등 1차 산업이 주종이었다.


정복자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가톨릭 선교사를 앞세워 원주민의 교화와 정복을 병행하여 대부분의 국민을 개종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성직자들도 통치자에게 영합하여 국민에게 사랑과 용서하는 마음으로 지배층에게 인종(忍從)할 것을 가르치는 교화 전교를 하여 왔다.


대부분의 이들 국가들은 1940?60년대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전시 특수 경기로 호황을 누렸고 경제 발전도 급속히 이루어졌고 덧붙여 외국 차관과 다국적 기업의 자본 도입으로 개발과 발전을 통한 선진국으로의 희망에 부풀었었다.


그러나 이들 국가에 공여된 외채는 자국 산업의 발전에 유효하게 활용되지 못 했을 뿐 아니라 지나친 토목 건축공사(브라질)나 복지사업(아르헨티나) 등에 탕진되었거나 정책 부재로 인한 시행착오나 독재자 특권층의 독식용으로 유용 되어 경제 부흥에 실패하여 막대한 외채만을 짊어지고 국민 생활은 빈민화 되어 갔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은 외채를 도입,효율적 활용으로 경제 성장을 이룩한 데 비하여 이들 국가들은 경제 부흥에 실패,외채만 늘어나고만 사례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의 실패 규명보다 그 원인을 밖으로 돌려 발전 장애 요인이 선진국가와의 예속 관계에 있다는 이른바 종속이론을 대두 시켰다.


종속이론이란 첫째, 후진국은 선진국을 위한 원료 공여국이며 선진국의 상품 소비국으로서 예속 관계를 벗어날 수 없고, 둘째, 후진국을 돕는다는 선진국의 경제 원조나 차관은 위와 같은 예속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족쇄에 불과하며, 셋째, 선진국의 기술과 산업의 독점으로 주변 후진국과 종속국은 영원히 선진국이 될 수 없으며, 넷째, 선진국은 예속 관계를 강화하기 위하여 종속국 내의 정치 경제에 깊숙이 개입하는 공작 정치를 편다는 이론이다. 실제로 중남미에서는 위와 같은 결론을 창출하기에 족한 실례가 많았다. 그러나 그들의 이론이 옳다고 한다면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 발전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2, 교구 내의 인디오 등 가난하고 압박받는 신도들의 비참한 생활을 체험한 젊은 사제들은 이들에게 군림하여 고통을 주는 독재자와 특권층 등 지배자들에게 강한 저항감을 갖게 되었고 이들에게 영합하였던 종래의 교회 역할에 대하여 깊은 회의와 성찰을 하게 되었으며 그리스도의 가르침인 사랑과 해방, 용서,구원 등의 의미를 재음미하고 성서에서 그 답을 얻으려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이들은 신구약을 통하여 도처에서 하느님은 확실히 불의를 배척하시고 억압받는 이,버림받는 이,소외된 이들에게 구원의 손을 뻗치셨으며 특히 출애굽의 의미를 조명시켜 거기서 심오한 해방하시는·하느님의 모습을 재발견하게 되었다.


특히 예수는 마굿간에서 탄생하시어 가난한 목수의 집안에서 자라셨고 평생을 가난한 가운데 살으셨고 그 속에서 제자를 뽑으시고 그들에게 복음 전파의 대임을 맡기셨으며, 부자와 권세를 가진 자들을 미워하신 반면, 가난한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시고 그들과 고통을 같이할 것을 호소하신 것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재확인했다.


여기에 확신을 얻은 이들은 빈곤과 억압,착취와 종속 등 고질적인 중남미의 병인을 도려내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복음 정신에 따른 사회주의 혁명뿐이라고 단정짓고, 현실 분석은 성서를 근거로, 사회 분석이나 혁명 이론은 맑스주의를 원용하여 해방신학을 체계화시켰다.


이와 같은 해방신학은 복음 지향 해방신학으로부터 혁명 신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파가 있으나 기본 인식은 아래와 같다고 하겠다.


1) 이 세상은 민중을 억압하는 계층과 억압받는 계층으로 양분되며 계층간의 갈등은 필연적이다.


2) 생산 수단의 사유는 약탈과 폭력으로 이룩된 것이며 자유 자본주의는 착취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기에 죄악이다.


3) 민중은 자본주의의 일체 제도를 타파하여 민중을 위한 정부를 세워야 하며 따라서 혁명을 위한 폭력온 정당하다.


4) 혁명으로서 계급 없는 사회를 건설한 민중은 자유와 해방을 얻고 스스로를 ‘새로운 인간’으로 만든다.


이를 보면, 표현은 다소 다르지만 혁명 이론은 맑스주의를 원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이 시대의 후진 개발국에 살고 있는 지성인이나 가톨릭인의 고뇌가 있는 것이다.


소수의 특권층은 부도덕한 방법으로 측적된 부와 권세와 영화를 누리는 반면 기아와 무지와 빈곤으로 신음하는 다수의 민중이 있는 사회에서 양심과 그리스도의 복음 정신으로 살아가려는 그리스도인온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하는가?


이 점에서 이 지역의 많은 가톨릭인은 해방신학을 택했고 지식층 인사들은 맑스주의를 택했다고 보겠다. 그러나 이들은 정치 경제의 전문가는 아니었으며 민중 속에 투신하여 민중을 의식화 시키는 데는 성공했으나 혁명 후의 사회 건설이나 경제 부흥의 방법은 갖고 있지 못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그의 회칙「사회적 관심」에서 "교회는 저개발 문제의 기술적 해결 방안은 갖고 있지 않지만 인간 문제 전문가로서 발전의 조건 성격 요건 목표 등을 도덕적이고 복음적으로 설정할 것을 발언할 수 있다"고 선언하신 바와 같이 교회는 정의의 제시에 그쳤어야 했다. 그러나 이들은 종교의 구원의 대상을 인간의 영혼 구원에 앞서 사회 개혁을 위한 투쟁을 선행시킴으로써 신학상의 오류를 범하고 교회의 교도권과 교계 질서를 붕괴시키고 교회의 분열을 조성하였다. 그리고 혁명을 위한 폭력을 정당화시킴으로써 중남미 각국을 동족 상잔 내란의 참극으로 몰아 갔고 이들 국가의 경제를 파탄으로 이끌어 국민을 더욱 빈곤으로 신음하게 하였다.


해방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생애와 교훈과 십자가상의 죽음의 의미를, 가난한 이를 정치적, 경제적 억압으로부터 구원을 위해 모신 해방자로 규정하고 이러한 해방이 죄로부터의 해방에 우선한다고 규정하고 개신교조차 수용하고 있는 전통 신학을 부르주아 신학이라고 규정, 이의 결별을 선언하였다(1979. 푸에블라 선언)


그리스도의 복음 정신으로 볼 때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은 확실히 그리스도의 구원의 대상이며 그리스도인은 이들의 구원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그렇다면 당시 사회의 구원의 대상은 누구였던가? 당연히 특권층에게 억압당하였던 노예들이었다. 그러나 신약성서의 어느 구절을 찾아보아도 주님이나 제자들이 이들에게 대해서만 구원이나 해방을 요구하신 것을 발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주께서는 학대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할 것을 가르치셨고(루가6,28) 사도들은 제왕이나 총독에게 순종할 것과(1베드2,13ㅡ14) 자기를 지배하는 권위에 복종할 것을 가르쳤다(로마13,1ㅡ2)


물론 이런 성서 구절을 인용하여 폭군과 부자들을 변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의미는 분명히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한 것이라고 주의 천사는 알려 주었고(마태 1,22)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도 “죄를 용서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을 위해 내가 흘리는 계약의 피”임을 분명히 하셨고(마태 26.28) 제자들도 “그리스도께서는 ‘죄인’ 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1디모1.15)고 확인하였다.


해방신학의 예수님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교회의 신앙으로부터 크게 일탈하여 있으며” 심지어는 이를 실천적으로 거부하기도 하였다.


사람이 교회를 찾는 이유도 죄로부터의 구원을 얻기 위한 것이고 예수께서 성령을 보내시어 제자들에게 사죄권을 주시고 복음 전파를 위해 파견하신 것도 죄인들의 죄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것이다(요한 20,23).


따라서 교회와 사제의 역할과 구원의 대상은 죄인이며,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위한 교회의 관심도 그리스도의 사랑과 정의와 연대의 나눔의 정신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전통 신학과 맑스주의적 신학상 해석 방법의 인식의 차이는 필연적으로 격한 논쟁을 교회 내에 유발시켰다. 이들은 성서나 신학,신앙, 현실 문제 등 일체의 사물을 맑스주의적 계급 투쟁의 틀 안에서 비판 평가하고 교도권의 구성원은 지배 계급의 객관적 대표자로서 배척되어야 한다고 규탄하고 성직자는 바닥 공동체(본당)에서 필요에 따라 민중 스스로가 선택해야 하고 교회 사목권도 이들로부터 올라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들은 바닥 공동체에 소속된 신자들을 억압자(정부 관리,기업인, 부자)와 억압자에게 속하는 자(군인,경찰, 공무원)와 이들의 의식화 계몽에 동조 하지 않는 신도들을 분류하여 적으로 규정한다. 또 전통신학을 수호하는 성직자와 평신도들과 고급 성직자들은 억압자의 계급에 속한다고 불신 배척을 하 며 심지어는 로마 교황청까지도 억압자의 계급으로 또는 제도권으로 규정한다. 그로 인해 중남미 교회의 일치는 근본적으로 부인되고 일치,화해,사랑의 친교는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은총”으로 인식되지 않고,계급 투쟁에 동참하는 동지적 유대만이 일치를 이루는 길이라고 인식한다.


그 결과 필연적으로 교회 내에 신도와 성직자 간의 분열을 조성하였고, 가톨릭 교회의 특성인 교계 제도와 교도권에 저항으로 나타나 교계 질서를 근원적으로 뒤엎어 놓았다.


교황 비오 13세는 "폭력이나 폭정에는 무저항 비폭력으로 대응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복음 정신”이라고 교시하셨다. 그러나 교황 바오로 6세는 "현실의 악을 거슬러 혁명과 폭동을 하는 것은 새로운 부정과 불균형을 초래하는 악순환을 초래한다”고 경고하시면서도 "인간의 기본권을 유린하고 국가의 공동선을 극도로 해치는 명백한 폭군적 압제가 오래 지속될 때에는" 폭력도 정당하다는 것을 시사하셨다.


해방신학은 맑스주의를 원용하면서 혁명의 방법으로 폭력을 정당화 시켰으며 민중의 반정부 혁명 세력에 투신하여 총을 들고 싸우다 전사한 콜롬비아의 '까밀로 토레스' 신부를 성인시하여 그리스도인의 양심을 호도하여 민중을 공산화 혁명을 위한 싸움터로 몰고 갔다.


해방신학의 대부인 브라질의 헬다 까마라 대주교는 제44차 세계성체대회에 참석차 서울에 왔다가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강대국들은 군축을 통하여 막대하게 낭비되고 있는 군비를 절약, 빈곤과 질병으로 신음하는 후진국 빈민을 구제하고 평화를 정착시켜라"는 요지의 강론을 하셨다.


그리스도의 복음 정신을 나타내는 극히 타당한 제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보자.


근래 지구상에는 강대국과 약소국을 가릴 것 없이 경쟁적으로 군비를 증강하고 세계 도처에서 젊은이를 전쟁터로 몰아넣어 왔다. 이들 전쟁은 대부분이 이데올로기(특히 공산주의) 때문에 일어난 전쟁이었으며 최근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이 맑스주의를 버리고 체제 변혁을 위한 진통을 겪으면서 동서간의 군축과 평화의 가능성마저 보이기 시작했다.


까마라 대주교는 폭력을 정당화한 해방신학을 제창하여 중남미를 내란의 와중에 몰아넣은 사람인데 강대국의 군축과 평화를 촉구하는 모순을 인식하지 못하였을까?


중남미 가톨릭은 무저항 비폭력으로 독립과 민주화를 쟁취한 인도의 힌두교도인 간디를 배워야 할 것이다.


민중의 해방을 표방한 중남미의 해방신학자들은 혁명 와중에 투신,필연적으로 공산 게릴라와 연대하여 인민 해방 전선을 구성,내란의 폭풍을 각처에 일으켰다고 하겠다. 그 결과 쿠바와 니카라과에서 공산 독재 혁명을 성공시켰고 엘 살바도르, 칠레, 과테말라, 콜롬비아, 아르헨티나,브라질 등 각 처에서 내란과 분규를 조성시켰다. 극우 독재나 군부 독재에 의한 탄압과 폭정은 상대적으로 더 큰 저항과 반란을 유발시키며 좌우 이데올로기가 충돌하는 곳에는 언제나 피 비린내 나는 살육이 수반된다는 것을 25의 동족 상잔의 비극에서 그리고 중국과 월남,캄보디아의 혁명 와중에서 있었던 동족 학살의 참극을 통해 우리는 뼈저리게 알고 있다. 해방신학이 몰고 온 비극도 예외는 아니었다.


엘살바도르의 로메로 대주교는 극우와 극좌 간 살육의 현장에서 공산 게릴라와 연대하는 해방신학 사제들을 보호하기 위한 자유와 인권을 주장하셨기 때문에 좌익 성직자로 오인되어 극우 세력으로부터 피살되셨다.


앞에서 말한 까마라 대주교가 "내가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구제 사업을 펼 때에는 나를 성자라고 부르더니 내가 그들 스스로 살아갈 방법을 가르쳤더니 나를 공산주의자타고 부르더라"고 말한 적이 있다. 까마라 대주교는 그들에게 어떤 방법을 가르쳤던가? 반역과 저항을 통한 혁명을 가르쳤기 때문에 공산주의자라고 불리운 것이다.


결국 해방신학자들은 성찰과 탐구와 정의의 제시에 머물지 않고 투신과 실천으로 옮겼기에 중남미에 피의 선풍을 몰고 왔으며 정치를 더욱 혼란으로 몰아붙였다.


3. 중남미 해방신학자와 공산주의자들은 분배의 평등이 이뤄지는 혁명 정부만 수립되면 금방 지상 낙원이 출현될 것처럼 선전하고 민중을 의식화시켜 반역과 저항과 항쟁을 선동하여 파업과 폭동이 중남미 도처에서 일어났다. 공장은 폐쇄되고 생산은 중단되자 자본은 해외로 대량 유출되고 실업자는 격증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기업의 신규 투자는 자취를 감추고 물가는 연평균 2,000? 6,000%의 천문학적으로 올라가 국민의 생활은 더욱 비참의 극에 달하여 이른바 중남미형 경제 형태라는 경제 파탄을 몰고 왔다.


공산독재 혁명을 성공시킨 쿠바와 니카라과의 경제도 사회주의 국가의 특성인 중앙 집권적인 통제 경제의 비능률성을 그대로 나타내 혁명 몇 십 년이 지난 오늘도 한결같이 가난의 평등에는 성공했으나 만성적인 물자 부족과 살인적인 인플레의 중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풍부한 천연 자원의 혜택을 가진 농업 국가였던 칠레가 빵 한 조각을 사기 위해 긴 줄을 서서도 허탕을 치기 일쑤였으니 그는 다시 말할 필요조차 없다.


이같은 사정은 1960년대에 좌익 출신의 굴라(브라질 노동자당 책임자)가 집권한 브라질이나 1970년대에 페루형 인간적 사회주의로 집권한 벨라스코 좌익 정권을 경험한 페루도 사정은 별로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이들 나라의 민중은 1900년대를 보내는 현시점에서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의 체제 전환 등에 자극되었을 뿐 아니라 그 간의 군부 독재의 포악성과 해방신학이나 맑스주의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의 실체를 톡톡히 체험한 결과를 바탕으로 극우와 극좌께 다 같이 강한 저항을 느끼게 되었다. 가톨릭 해방신학 사제가 두 명이나 입각했던 좌익 산디니스파 정권을 몰아낸 니카라과의 최근의 정변은 이들의 각성의 심도를 여실히 증명하는 사례라 하겠다.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고 발전이 약속된 사회에서 분배의 평등으로 번영을 누리는 것은 인류의 영원한 꿈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회는 투쟁이나 변혁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이고 민주적인 정치와 자율적인 기업 경영과 단합된 국민적 노력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제창하신 교회의 “사회 교리"는 인류의 공동의 번영을 위한 도구로서 합당한 원리이며 가톨릭 성직자들이 해방신학에 대처하여 연구하고 실천 지침으로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