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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권 제 2편 제 1부 교회의 최고 권위
1990년 6월호 (제 137호)
제4절 교황청 ⑦ 6개의 사무처들 (Officia) (114-131조) 제1절 상서원 (Cancellaria Apostolica)) (...

주일의 말씀
1990년 6월호 (제 137호)
성신 강림 대축일 (전야미사) : 6월 29일 1. 독서의 배경과 주제 제1독서(창세 11,1-9) : 막강한 ...

교회의 정의 활동의 신학적 근거
1990년 6월호 (제 137호)
IV. 복음화와 정의 예수는 교회와 신자들에게 복음을 온 세상에 선포하고 가르치라는 명령과 사명을 주...

복음 선교의 토착화 토착화 관점에서 본 복음 선교 이해의 어제와 오늘
1990년 6월호 (제 137호)
일 시 : 1990년 4월 30일 (월) 오후3시 ~6시 장 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회의실 사 회 : 김정수 (...

해방신학이 남미의 국가 발전과 교회 생활에 기여했는가?
1990년 6월호 (제 137호)
우리의 여러 가지 생각을 모으려 한다. 여기서는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는 계기가 되고 이것을 통하여 자기...

나의 고백
1990년 6월호 (제 137호)
배세영( Marcel Pelisse ) 신부님은 1928년 6월 28일 프랑스 랑작( Langeac ) 태생으로 파리 외방 전교회 ...

사회 정의는 사랑의 표현
1990년 6월호 (제 137호)
이스라엘을 구할 자로 믿었던 스승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사형을 당하였을 때 그를 따르던 제자들은 천...

한국 교회의 냉담자 문제
1990년 6월호 (제 137호)
대 담 : 강형일 (레지오 마리애 서울 세나뚜스 부단장),    윤길래 (수유 1동 천주교회 신...

남아메리카의 선교 역사
1990년 6월호 (제 137호)
서 론 천지가 창조된 후 제일 큰 사건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것이다. 즉 콜룸부스(Cristoba Colon) 가...

남아메리카의 사회 현실 - 경제적 측면을 중심으로
1990년 6월호 (제 137호)
I. 머리말 이 글에서 남미(南美)라고 지칭되는 지역은 사실상 멕시코에서 아르헨티나에 이르는 중남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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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 자료 1990년 6월호 (제 137호)

주일의 말씀

장인산 (청주교구 교현동 천주교회 신부)

성신 강림 대축일 (전야미사) : 6월 29일


1. 독서의 배경과 주제


제1독서(창세 11,1-9) : 막강한 바벨 도시는 인간의 교만을 상징한다. 그곳에 바빌로니아의 마르둑이라는 신의 전당이 서 있었는데 그 신전은 칠층탑의 모양을 갖추고 있었다. 소위 ‘천지의 기초'라는 이름을 가진 신전이었다.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깨닫지 못하고 우월감에 빠질 때 인간의 위대함은 거짓이 되고 권세는 패망하게 된다. 일치와 통일은 인간이 진리를 찾을 때에만 가능하다.


제2독서(로마 8,22-27) : 우리 인간과 만물은 매일 나약함과 죄로 인한 괴로움을 체험한다. 그러므로 신음하며 희망을 가지고 또 꾸준히 구원을 기다린다. 우리가 영세 때 받은 성신은 우리의 약함을 아시고 도와주신다. 기도도 제대로 옳게 바치지 못하는 우리를 위해 대신 기도해 주시고, 믿고, 희망하고, 기도할 수 있는 힘을 주신다.


복 음(요한 7,37ㅡ39) : 일년 중 세 가지 대축일의 하나로 꼽히던 초막절 마지막 날인 칠일에 예수께서는 자신을 일컬어 생명수의 원천이라고 계시하신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서의 말씀대로 그 속에서 샘솟는 물이 강물처럼 흘러 나올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옛날 광야에서 지낼 때 하느님이 마시게 해주신 시원하고 맑은 물과 이스라엘 백성이 초막절 동안 매일 아침마다 실로아 샘에서 길어온 물은 바로 하느님이 이제 주실 선물,즉 성신을 가리켜 의미한다. 성신을 상징하는 데는 물 외에도 숨, 바람(폭 풍), 불이 묘사되었다.


2. 강론 핵심


하느님은 우리의 생활을 충만케 해주시는 분이시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선물은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사는 생명이다. 즉 당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신다. 우리가 세례 때 받은 성신은 우리가 하느님과 누리는 이 영생의 시작이며 보증이 되신다.


3. 교부들의 가르침 : 여러 명칭을 지니신 한 분의 성신


성신은 한 분뿐이십니다. 성신께서는 원하시는 대로 각자에게 당신의 여러 가지 은혜를 부여하십니다. 그렇게 하시면서도 한 분으로 머물러 계십니다. 위로 자신 분도 같은 성신이시고 단지 이름이 여러 가지 있는 것입니다. 즉 살아 계신 분, 인격체이신 주님, 말씀하시는 분, 능력을 갖추신 분, 창조물 가운데 지성을 갖춘 존재인 천사와 인간을 성화시키는 분이라 일컬어집니다. 가톨릭 교회는 성신의 이름이 여럿인 것을 혹 신들이 여럿인 것인 양 생각하지 않도록 한 분 뿐이신 성신의 존재를 가르치기 위하여 신앙 고백 기도문에 “위로자이시고 예언자들 을 통하여 말씀하신 한 분의 성신을 믿나이다''라고 믿도록 인도하십니다. 여러분은 그러므로 성신을 지칭하는 이름은 여럿이지만 성신은 한 분 뿐이심을 믿어 야 합니다. 이제 그럼 여러 가지 이름 중에서 몇 가지만 언급하겠습니다.


지금 방금 읽은 성서 귀절에서는 “어떤 사람은 성령에게서 지혜의 말씀을 받았다''(1 고린 12,8)고 되어 있습니다. 성신은 여기서는 지혜의 성신이라고 일컬어집니다. 주님께서는 또한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너희를 이끌어 진리를 온전히 깨닫게 하여 주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성신은 위로자라고 도 불리우십니다. 주님께서 “내가 떠나가지 않으면 그 위로자가 너희에게 오시지 않을 것이다“(요한 16,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성신은 하느님의 성령이라고 불리웁니다. 성서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시자 홀연히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당신 위에 내려오시는 것이 보였다“(마태 3.16). 또 다른 귀절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입니다“(로마8,14), 성신께서는 또한 아버지의 성령이라는 이름도 갖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성령이시다“(마태 10.20). 바오로 사도께서도 성신을 그와 같이 부르십니다. “나는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가족에게 이름을 주신 하느님 아버지 앞 에 무름을 끓고 기도드립니다..넘쳐흐르는 영광의 아버지께서 성령으로 여러분의 힘을 돋워 내적 인간으로 굳세게 하여 주시기를 법니다“(에페 3,1≪6), 성신 깨서는 또한 주님의 성령이라고도 불리웁니다. 베드로 사도는 (거짓말을 하던 아나니아와 삽피라에게) “어쩌자고 당신들은 서로 짜고 주의 성령을 떠보는 거요?”(사도5,9)타고 물었습니다. 성신께서는 또한 하느님의 성령, 그리스도의 성령이라 불리우십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쓰셨습니다. “사실 하느님의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면 여러분은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성령을 모시지 못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로마8,9), 성신은 또한 하느님의 아들의 성령이라고도 불리우십니다. 이렇게 성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의 마음속에 당신의 아들의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갈라 4,6). 이외에도 성령에 대한 다른 많은 명칭들을 찾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성신의 명칭은 여러 가지이지만 성신께서는 한 분 이시며 같은 분이십니다. (치릴로, 세례자들을 위한 교리, 17장 성신에 관하여3-5)


4, 예화 : 그리스도 신자의 생물


이슬람교도들이 살고 있는 한 동네에 한 작은 그룹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살고 있었다. 이슬람교인들은 그리스도 신자들을 동네에서 쫓아내고, 공동체에 끼어 주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그래서 남자 신자들은 이제는 더 이상 둥글게 모여 앉아 이야기 나누는 데에도 못 가게 되고 담배도 함께 피울 수 없게 되었고, 여자 신자들은 동네 우물에서 물을 길을 수 없게 되었다,그리스도 신자들은 하는 수 없이 힘을 모아 우물 하나를 새로 팠다. 얼마 후 마을의 우물이 메마르게 되었을 때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동네 사람들에게 물을 길어 가라고 초대하였다. 그들은 물을 길으러 오면서 신자들의 집 문마다 붙여 놓은 십자표를 보게 되었다. 그 십자가 표시 안에는 ‘그리스도 신자의 집'이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동네 사람들 은 그리스도교 신자가·사는 집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5. 마무리 묵상


참된 생활은 하느님과 일치하고 이웃과 사랑을 나누는 생활이다. 하느님과 일치하지 못하면 마음에 기쁨이 없고 기운이 빠져 이웃에게 눈을 돌릴 수도 없게 된다.


성선은 우리를 하느님 아버지께로 향하도록 이끌어 주신다. 흘어지게 하는 죄를 사해 주시어 하느님께로 모아 일치를 이루어 주시는 분이시다. 바벨로 흩어진 우리를 성신께서 모아 주신다.


성신 강림 대축일 : 6월 3일


1. 독서의 배경과 주제


제1독서(사도2,1ㅡ11):예언자 요엘의 예언이 오늘 이루어진다. “나는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너희의 아들과 딸은 예언을 하리라. 늙은이들은 꿈을 꾸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리라. 그 날, 나는 남녀  종들에게도 나의 영을 부어 주리라” 또 예수께서 약속하신 것이 오늘 이루어진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면 다른 협조자를 보내 주셔서 너희와 영원히 함께 계시도록 하실 것이다. 그분은 곧 진리의 성령이시다,'(요한 14-16). 이 말씀들은 또한 앞으로도 교회 안에서 항상 이루어질 것이다. 성신께서 머무실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드리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다. 또한 성신께서 이루어 주시는 능력대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세계 만방에 여러 언어로 전파해야 한다.


제2독서(1 고린 12,3ㅡ13) : “예수는 주님이시다“라는 신앙 고백으로 사도 시대의 교회는 예수께서 부활하시어 성부 오른편에 앉으셨음을 고백하곤 하였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이 예수의 이름을 받들어 무를을 꿇고 모두가 입을 모아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라 찬미하며 하느님 아버지를 찬양하게 되었습니”(필립 2.9-11)


성신께서는 신앙의 일치를 도모하시고 다양한 선물로 여러 직책을 수행하도록 교회 생활을 도와주시는 분이시다.


복 음(요한 20,19-23) : 부활하신 주님의 첫 인사는 ‘평화’고 첫 선물은 '기쁨'이었다. 이 두 가지는 성신의 선물이다(갈라5,22참조). 성신은모든 선물을 포함하는 큰 선물 자체이시다. 성신께서는 제자들을 부활하신 주님과 일치시키시며 제자들 간을 서로 하나 되게 하신다. 성신은 또한 죄의 용서로 세상을 새롭게 만들어 주시는 분이시다.


2, 강론 핵심


오순절은 구약시대에는 추수 감사절로 큰 축제였는데 이제 우리에게는 성신 강림의 대축일이 되었다. 부활의 완성의 뜻이 포함되어 있다. 성신께서는 우리에게 예수께서 살아계시고 그리스도이시며 주님이심을 깨닫고 믿도록 도와주신다.


3. 교부들의 가르침 : 성신을 받은 사도들


사랑하는 신자 여러분! 오늘 복음의 말씀은 성신 강림 대축일인 오늘의 외적, 내적 이유를 분명히 보여 줍니다. 성신께서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지 50일째 되던 날,예수께서 승천하신 지 10일째 되던 날에 제자들 위에 내려오셨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약속대로 성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복된 제자들은 주님께서 수난당하시기 전부터 성신을 받았습니다. 구세주의 업적 안에는 이미 성신의 활동하심이 강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병을 고치고 마귀를 쫓아낼 수 있는 권능을 주셨을 때(루가 10.17.20)이 이미 그들에게 성신의 능력을 주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마귀에게 명령을 내리셨을 때 성신의 힘으로 하셨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던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이 권능을 인정하지 않았고 주님이 갖고 계시는 하느님의 전능을 사탄의 힘을 빌려 행한다고 배척하였던 것입니다(마태 9,34). 바로 이 독성죄 때문에 그들은 주님의 판결을 받았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죄를 짓거나 모독하는 말을 하더라도 그것은 다 용서받을 수 있지만 성령을 거슬러 모독한 죄만은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또 사람의 아들을 거역해서 말하는 사람은 용서받을 수 있어도 성령을 거역해서 말하는 사람은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마태 12,31-32).


이상의 말로써 분명한 것은 성신을 부르지 않으면 아무런 죄의 사함도 이루어 질 수 없고, 아무도 제대로 죄를 뉘우칠 수도 없으며, 하느님께도 제대로 기도드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께서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모르는 우리를 대신해서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깊이 탄식하시며 하느님께 간구해 주십니다”(로마8,26), “또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는 주님이시다' 하고 고백할 수 없습니다”(1 고린 12,3), 성령이 떠나는 사람은 타락하고 죽음에 이릅니다. 왜냐하면 선구자이신 성신께서 떠나면 아무도 죄를 용서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를 믿던 모든 제자들은 그러므로 성신을 이미 받았던 것입니다. 죄를 사해주는 권한도 사도들은 이미 주께서 부활하신 후 그들에게 숨을 내쉬시며 “성령을 받아라.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2)라고 말씀하셨을 때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들이 이루어야 할 완덕에 도달하도록 필요한 은혜와 봉사를 위한 더 강한 영감을 주시려고 성신의 은혜를 내려보내신 것입니다. 이 은혜를 받은 후 제자들은 높은 단계에 올라서서 받은 것을 더욱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뜻에서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아직도 나는 할 말이 많지만 지금은 너희가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너희를 이끌어 진리를 온전히 깨닫게 하여 주실 것이다. 그분은 자기 생각대로 말씀하시지 않고 돌은 대로 일러주실 것이며 앞으로 다가올 일들도 알려 주실 것이다. 또 그분은 나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전하여 주실 것이다“ (요한16.12-14), (레오, 강론76〈성신 강림 대축일 강론〉, 4)


4, 예화 : 생명을 주시는 아버지의 숨결


사람이 죽으면 숨을 쉬지 못한다. 잠자는 사람과 죽은 사람이 나란히 누워 있을 때 겉으로는 비슷하게 보일지라도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즉 살아 있는 사람은 숨을 쉬고 죽은 사람은 숨결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한 번은 한 아버지가 아들과 딸을 데리고 모터보트에 올라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고요한 곳에 이르러 물속에 헤엄쳐 다니는 여러 가지 물고기를 들여다보며 잠시 쉬었다. 그런데 갑자기 딸아이가 보이지 않아 아버지는 불길한 생각이 들어 물속으로 뛰어 들어가 찾아보니 딸아이가 물 속에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딸을 잡아당겨보니 딸아이의 스웨터가 프로펠러에 감겨 있어 끊어지지 도 않고 벗겨지지도 않았다. 딸아이는 숨을 쉬지 못하고 버둥질치며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 아버지는 깊이 숨을 들이쉬고는 딸아이의 입 안에다 숨을 몰아쉬곤 하면서 배 위의 아들이 건네 준 칼로 스웨터를 베어 끊어버릴 수 있었다. 그 아버지의 입에서 전달된 숨결 덕분에 다 죽어가던 딸이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이와 같이 하느님의 숨결이신 성신께서 죄 속에서 숨이 막혀 다 죽어가는 우리 영혼에게 새 숨을 쉬게 하여 살려 주신다. 성신이 계시면 생명이 보존된다.


5. 마무리 묵상


성신 강림 때 있었던 바람과 불은 성신의 상징인 두 가지 표시이다. 이 두 가지 요소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바람이나 불,둘 다 사물을 그냥 놔두지 않는 것 이다. 위치를 옮기고 불살라 버리며 변화시킨다.


성신이 하느님의 창조력의 힘이심을 믿는 누구에게나,또 성신의 오심을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하느님의 힘이신 성신께서 그냥 놔두시지 않는다. 그의 습관이나 지난 동안의 생활, 사고 방식, 소유 등 여러 가지를 키로 까불어 대듯 이 성신께서 뒤흔들어 놓으시어 불필요한 것은 다 불살라 버리시고 진리만 남도록 마련해 주신다. 그러므로 “오소서 성신이여!” 하며 기도하는 사람은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성신의 정화 운동이 그를 사로잡고 그냥 놔두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더러운 것은 다 없애시고, 굽은 것은 바로잡고, 찬 것은 뜨겁게, 병든 것은 낫게 하시고, 마른 것은 젖게 하시며, 죽은 것은 살아 움직이게 만드신다.


삼위 일체 대축일 : 6월 10일


1. 독서의 배경과 주제


제1독서(출애 34,4ㅡ9):이스라엘 백성이 에집트에서 빠져 나올 때와 시나이 산에서 야훼께서는 당신이 살아 계시고 함께 생활하시는 하느님이심을 모세에게, 또 이스라엘 백성에게 분명하게 보여 주셨다. 하느님은 거룩하시고 가까이 할 수 없는 분이시면서도 동시에 자비로우시고 우리와 가까이 계시는 분이시다. 구약 시대에 사람들은 죄를 지었을 때 또는 곤경을 당할 때마다 하느님의 자비하심과 성실하심을 굳게 믿고 의탁하곤 하였다. 불충한 백성에게도 하느님은 충성스럽게 대해 주시고 그 백성과 함께 동행해 주셨다.


제2독서(2고린 13,1143):오늘 독서의 마지막 말씀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세 가지 선물을 나타낸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께서 이루어 주시는 친교를 여러분 모두가 누리시기를 법니다.” 하느님의 사랑, 성자의 은총, 성령의 친교(일치),이 세 가지 선물은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주어진다. 하느님의 사랑이 성자의 은총 안에서 나타나고 성령 안에 친교를 이루는 교회를 통하여 우리에게 내리신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은 멀리 계신, 비밀에 싸여 계신 동떨어진 존재로 계시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은 자신을 보여 주시어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심을 깨닫게 하신다.


복 음(요한 3,16ㅡ18) : 하느님, 아들,사랑, 이것이 요한복음에 나타나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계시이다. 예수의 구속 사업은 성부와 성신의 섭리로 완성되었다. 예수 안에 나타난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구원을 받게 된다.


2. 강론 핵심


구약 시대에 감추어져 큰 신비로 여겨지던 하느님을 신약 시대에는 우리와 가까이 계시기 위하여 내려오시는 하느님, 자신을 여시고 자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의 하느님으로 체험하게 되었다. 우리가 받은 성신은 우리를 사랑의 하느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신다. “그래서 우리는 그 성령에 힘입어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부릅니다. 바로 그 성령께서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명해 주십니다”(로마 8.16)


3. 교부들의 가르침 :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뜻


“나는 무슨 일이나 내 마음대로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고자 한다“(요한5,30), 강생하신 아드님은 자신의 뜻을 채우려 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시는데 인간들은 그들의 뜻을 이루려고 합니다. 성부와 같으신 분이 자신을 낮추시는데,먼지 속에 사는 인간은 손잡아 일으키는 분이 안 계시면 일어날 수도 없으면서도 자신을 얼마나 내세웁니까!


이제 우리는 성부의 뜻,성자의 뜻, 성신의 뜻을 따릅시다! 삼위일체 안에는 뜻도 하나,권세도 하나, 주권도 하나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성자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나는 내 뜻을 이루려고 온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려고 왔다.“ (아우구스티노, 요한 복음 주해서 22,15)


4. 예화 : 신자의 몸은 하느님이 계시는 궁전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오리게네스의 아버지 레오니다스에 대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그의 아들 오리게네스가 유아 세례를 받고 잠이 들어 잠자고 있을 때 레오니 다스가 조용히 방에 들어와 잠자고 있는 아들에게 다가와서는 무릎을 꿇고 경건 하게 아들의 가슴에 입을 맞추었다. 그것을 본 부인이 왜 그렇게 하는가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우리 아이의 마음이 하느님께서 거처하시는 궁전이 되지 않았습니까? 이 안에 하느님께서 친히 살아 계십니다.”


5. 마무리 묵상


하느님께서는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당신 자녀로 삼아주셨다(1 요한 3,1). 자녀가 되었으니 하늘나라의 상속자가 된 것이다(로마88.17) 그러므로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 본분도 생겼다. 모든 악을 끊어버리고 새로운 삶에 익숙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모든 악의와 기만과 위선과 시기와 온갖 비방을 버리십시오. 그리고 갓난아이처럼 순수하고 신령한 젖을 구하십시오. 그러면 그것으로 자라나서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1베드 2.1-2), 하느님의 자녀면 아버지의 계명을 잘 따를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또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면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온 세상에 보여 주게 되고, 이것이 빛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구원의 길로 인도해 주는 역할을 도울 것이다. 사람들이 신자들의 행실을 보고 하느님을 알게 될 때 그 신자들은 참된 자녀들인 것이다. 자녀는 부모의 이름을 빛내는 법이다. 세례의 은혜를 전교로 열매 맺게 하자.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 : 6월 17일


1. 독서의 배경과 주제


제1독서(신명 8,2-16):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40년 동안 헤매면서 여러 가지 체험과 깨달음을 얻었는데, 그것은 그 후에도 그 백성이 가는 길에도 적용 되는 것들이었다. 그중에서도 무엇보다도 하느님께 속한 백성이라는 체험과 깨달음이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뼈 속에 새겨진 것이 되었다.


만나는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께 속해 있는 것을 나타내는 표이다. 또한 하느님이 그들을 사랑하신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더듬어 생각해 보아라“, “이를 마음에 새겨 두어라“, “너희 하느님 야훼를 잊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등의 경고 말씀은 행여나 이스라엘 백성이 사는 것이 편해질 때 하느님께 속해 있는 백성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주지시켜 주는 말씀이다.


제2독서(1고린 10,16-17) : 주님의 몸과 피를 함께 나누어 모심으로써 많은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한몸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상징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체를 함부로 모시거나, 교회나 신자 각자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여기지 않고 함부로 대하면 심판받을 죄를 범하는 것이다. “그러니 올바른 마음가짐 없이 그 빵을 먹거나 주님의 잔을 마시는 사람은 주님의 몸과 피를 모독하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각 사람은 자신을 살피고 나서 그 빵을 먹고 그 잔을 마셔야 합니다. 주님의 몸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사람은 그렇게 먹고 마심으로써 자가 자신을 단죄하는 것입니다“(1고린 11,27-29).


복 음(요한 6;51-58) : 예수께서는 신앙을 요구하시는 것 외에 당신 자신이신 생명의 빵을 받아 먹으라고 말씀하신다. 최후 만찬 때에 제자들은 이 말씀의 뜻을 이해하게 된다.


2. 강론 핵심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빵으로 받아 먹는다. 그리스도의 빵을 먹을 때에 그 분과 한 몸이 되어 그분께 속하는 백성이 된다. 예수와 함께 식사를 원하는 사 람, 예수와 한 몸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사랑을 베풀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 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나는 사랑 못하겠다”, “그를 도저하 용서 못하겠다”, “내 생각만 하겠다“, “남이야 내겐 상관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고립되고 범죄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성체를 영하여도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될 수 없다. 또 이웃과도 한 몸을 이룰 수 없다.


3. 교부들의 가르침 : 성체를 자주 영하는 것은 매우 유익한 일


이교도들이 가지고 있는 예식에 쓰이는 음식물과는 전혀 다른 음식을 우리는 가지고 있으니, 이 음식은 우리에게 구원과 생명을 베풀어 줍니다. 이 음식은 인간을 지존하신 하느님께 가까이 가게하고 화해시키는 음식이며, 지쳐 있는 사람들에게는 기운을 되돌려주고 길을 잘못 들은 사람들을 옳은 길로 불러 내며 넘어진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고 죽어가는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의 은혜를 내려 줍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빵과 그리스도의 성혈을 찾으십시오! 그리하여 인간의 본질이 변화되어 잠시 지나갈 세속은 경시하고 영생의 음식으로 배부르게 되어야 합니다.


솔로몬은 큰 소리로 이 빵과 잔에 대하여 어떻게 전하는지 들어봅시다. “와서 내가 차린 음식을 먹고 내가 빚은 술을 받아 마시십시오”(잠언 멜키세덱은 살렘의 왕이며 지존하신 하느님의 대사제였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빵과 포도주로 먹여서 은총의 축복을 받게 하였던 것입니다(창세 14.18). 이와 같이 볼 때 분명한 것은 이 빵이 특별한 빵이라는 것입니다. 이 빵을 먹을 때 비참한 죽음의 멸망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거룩하고 찬미받을 입으로 확실히 말씀하셨습니다. 그 확실한 말씀으로 인간에게 주신 희망은 그 어떤 잘못된 해석으로도 혼동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요한복음 성경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6.35) 이와 비슷한 말씀을 주님은 또 다른 곳에서도 들려주십니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요한7,37). 주님은 또 신자들에게 당신 권능의 본질을 깨닫게 말씀하십니다. “만일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너희 안에 생명을 간직하지 못할 것이다”(요한 6,53),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유익한 음식의 은혜를 추구하십시오. 죽지 않는 생명을 주는 잔을 받아 마시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을 당신의 음식을 통하여 빛으로 불러 주시고 위험한 독약으로 타들어간 부분과 굳어진 지체를 다시 재생케 해주십니다. 하늘 나라의 음식으로 타락한 인간을 새롭게 해주셔서 여러분 안에 죽어 있던 부분이 다시 하느님의 은혜로 살아나게 해주십니다. 여러분은 이제 해야 할 것을 깨달으셨으리라 믿습니다. 이제는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선택해야 할 시간입니다. 이교도들의 음식은 죽음을 가져다주고, 여기 우리의 음식은 영생을 선물합니다. (피르미치우스 마테르누스, 이교도 신앙의 오류에 판하여 18)


4. 예화 : 영성체 후에는 감사드려야 한다


주일 미사 때에는 특히 영성체하기가 무섭게 자리를 떠 집으로 돌아가는 신자들이 많다. 5분, 10분 먼저 가서 얼마나 많은 일을 할지는 몰라도 성체 안에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께 감사드리지 않는 것은 고쳐야 할 시급한 문제이다.


한 번은 성 필립보 네리 사제가 영성체하자마자 자리를 뜨곤 하는 신자의 버릇을 고쳐 주기 위하여 촛불을 든 복사 두 명을 뒤따라 쫓아가게 보냈다. 복사 두 명이 그를 따라잡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신부님께서 우리들을 보내시면서 당신의 마음 안에 계신 주님을 동행해 드리라고 명하셨습니다.” 그 신자는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즉시 다시 성당으로 돌아와 감사의 기도를 드린 뒤에 집으로 돌아갔다.


5. 마무리 묵상


마리아의 방문을 받은 엘리사벳은 “주님의 어머니께서 나를 찾아 주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루가 1.43) 하며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였다. 우리도 성체 안에 계신 주님을 모신 후에는 “주님께서 나를 찾아 주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 하며 큰 행복을 얻게 된 은혜에 마땅히 감사드려야 할 것이다. 늘 습관처럼 영성체 한 후에 아무런 기도도 드리지 못하고 성당을 떠나는 일이 없어야겠다. 우리를 찾아오신 주님 앞에 사랑의 약속을 새롭게 해드리는 것이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좋은 선물일 것이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누구도, 아무것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다고 말씀드리곤 하자(로마8,35), 낡은 우리의 모습을 늘 새롭게 창조해 주시는 주님께 계획과 결심을 바쳐 드리고 축복해 주시기를 기도드리자.


예수 성심 대축일 : 6월 22일


1. 독서의 배경과 주제


제1독서(신명 7,6-11) : 무슨 이유로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특별히 간택하셨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한 가지밖에 없다. 즉 하느님께서 그렇게 원하셨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왜 이스라엘 백성을 원하셨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데 여기에 대한 대답은 오직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셨기 때문이라는 답밖에는 없다. 하느님의 사랑, 이 사랑을 체험한 백성과 사람의 생명은 얼마나 성실히 하느님 사랑에 순응하는지에 달려있다. 하느님 사랑에 완전히 순응하신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시다.


제2독서(1요한4,7ㅡ16):사람이 되신 아드님을 통하여 하느님은 우리에게 당신 사랑을 전적으로 베푸셨다.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지는 우리가 이웃을 형제로 우리 생활 안에 끌어들이는 데서 보여진다. 이웃을 타인으로 밖에 내버려 두는 식의 생활은 하느님의 사랑을 거절하는 표시이다. 예수를 믿는 다는 말의 참뜻은 사랑을 믿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만이 믿을 수 있는 것이다.


복 음(마태 11,25-30) : “안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존경받는 위치의 사람들로 자신에 만족하였기에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들은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없을 정도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아셨다. 즉 아버지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이시고 배고파하고 지쳐 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시어 간택하시고 도움을 약속하셨다.


2. 강론 핵심


구약의 예언자들에게는 어찌하여 하느님께서 당신 사랑을 자꾸만 거역하는데도 이스라엘 백성을 극진히 사랑하시는가가 큰 수수께끼였다. 이 질문의 답으로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느님의 이 사랑이 예수를 통하여 볼 수 있게 나타났고 고통과 나약한 우리들에게 큰 희망을 베풀어 주신다. 하느님의 사랑은 조건 없고 무한한 사랑이시다. 그러기에 부족하고 죄 많은 우리들도 그 사랑에 희망을 가질 수 있다.


3. 교부들의 가르침 : 주 예수의 선한 마음


몇몇 사람들은 유다가 건방져서 주님께 대한 존경심이 없이 동시에 잔에 손을 넣었다고 말합니다. 제 생각엔 그리스도께서 일부러 그렇게 하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유다를 뉘우치게 하시고 달리 생각하게 움직여 보시려고 그렇게 하셨다고 봅니다.


우리는 모든 일을 간단히 판단할 것이 아니라 깊이 마음속에 헤아려 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분노가 우리 마음속에 자리잡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후 만찬의 장면을 생각할 때 배반자가 세상의 구세주와 식탁에 함께 앉아 있음을 봅니다. 또 주님께서 침착하게 당신을 팔아먹을 장본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계심을 봅니다. 우리도 분노와 복수심외 독약을 우리 마음에서 뽑아 던져 버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 얼마나 양순하게 대답하시는지 들어 보십시오. “사람의 아들은 성서에 기록된 대로 죽음의 길로 가겠다”(마태 26,24). 이 말씀은 한편으로는 제자들을 일으켜 세워 놓는데 그 목적이 있었으니 그렇지 않으면 제자들이 주님이 힘이 없으신 분이라 잡혀 가신 것같이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었고, 또 다른 편으로는 배반자를 고쳐 주시고자 함에서였습니다. “사람의 아들을 배반한 그 사람은 화를 입을 것이다. 그는 차라리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을 뻔했다“(마태 26,24),


다시 한번 이 말씀을 관찰해 보시고 주님의 양선한 마음이 이 꾸짖는 말씀 속에서도 나타남을 깨달으십시오. 주님은 말씀을 격하게 하시지 않고 자비와 예의를 갖추시고 말씀하십니다. 유다는 결국 이 말씀을 듣고는 자기냐고 묻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마태 복음 주해서 81번째 강론, 2)


4, 예화 : 마리아 말가리다 알라꼭 성녀의 예수 성심께 대한 말씀


자서전에서 알라꼭 성녀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제가 한 번은 주의 성체 성혈 대축일의 팔부 기간 동안(1675년 6월 13일-20일) 성체 앞에서 조배하는테 주님께서는 저에게 당신의 마음을 보여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 이 내 심장을 보아라! 이 심장은 사람들을 극진히 사랑하였다. 그래서 자기를 아끼지 않고 다 내어주고 사랑을 베풀었다. 그 대가로 나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배은망덕을 받고 있다. 그들은 존경심이 없고 모독하며 냉냉하고 성체 안에 있는 나를 천히 여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내게 봉헌된 사람들마저 나를 그처럼 대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주님께서 속죄의 날을 정해 지킬 것을 명하셨고 그렇게 하는 사람에게 당신의 사랑을 풍성하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알라꼭 성녀는 예수 성심을 공경하는 사람들에게 하신 약속을 다음과 같이 일러주었다. “1. 나는 그들에게 각각 처해있는 상태에 필요한 은혜를 주겠다. 2. 나는 그들의 가족들에게 평화를 주겠다. 3. 그들이 당하는 고통 중에 위로를 줄 것이다. 4. 그들이 살아 있을 때와 특별히 죽을 때에 안전한 피난처가 되어 주겠다. 5. 그들이 시작하는 모든 사업에 강복하겠다. 6. 죄인들도 내 성심 안에서 풍성한 자비의 샘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7. 냉담한 영혼들도 열심을 되찾게 될 것이다. 8. 열심한 신자들은 빨리 완덕의 경지에 오르게 도와줄 것이다. 9. 내 성심 상본을 모시고 공경하는 집을 친히 축복해 줄 것이다. 10. 사제들에게는 딱딱해진 영혼들을 부드럽게 만드는 특권을 베풀 것이다. 11. 예수 성심 공경을 전파하는 사람의 이름을 내 성심 속에 새겨 넣어 영원히 지우지 않을 것이다. 12. 내 성심 안에서 은혜를 청하는 사람들에게 한없이 무한한 은혜를 내려 줄 것이다. 끝으로 아홉 달 동안 첫 금요일에 영성체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어 그들이 죽는 날까지 항구하게 살도록 도와줄 것이고, 결코 죄 중에 죽지 않도록 성사를 받고 죽도록 도우겠다. 나의 성심은 그들이 죽는 순간에 안전한 피난처가 되어줄 것이다.


5. 마무리 묵상


예수 성심 대축일은 일년에 한 번만 지내는 축일이 되어서는 안되고 사실은 매일 지내는 것이 옳다. 우리가 매일 주님의 초대,“모두 나에게로 오라!”는 말씀에 순종할 때 가능한 것이다. 우리도 아우구스티노 성인과 함께 꺼지지 않는 성심의 불꽃과 식지 않는 성심의 사랑의 불을 청하자! 나를 불태워 당신의 사랑으로 당신만을 사랑하게 하소서! 성녀 대 데레사(아빌라)도 “내게는 오직 주님만이 족하다“고 예수 성심께 대한 사랑을 고백하였다.


예수 성심의 사랑은 조건이 없고 한이 없는 사랑이시다. 예수 성심 안에 머무는 사람도 예수 성심의 양선과 자비를 배우게 되어 넓은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게 된다. 주님께 깊이 뿌리내리는 신자는 가지도 많이 뻗게 되는 것이다.


성 요한 세자 탄생 대축일(전야미사) : 6월 23일


1. 독서의 배경과 주제


제1독서(예레 1,4-10) : 기원전 626년 예레미아를 하느님께서 예언자로 부르실 때 그는 아직 나이가 많지 않은 수줍어하는 청년이었다. 예언직은 그에게 그 후 40년 동안에 점점 더 어려운 직무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하느님의 성소는 이미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결정된 것이었다. 이 사실은 세자 요한에게도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하느님은 예레미아를 파견하실 때 또한 굳게 약속하여 주셨다.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고, 너를 구해 주겠다”


제2독서(1 베드 1,8-12) : 구약 시대의 예언자들은 구세주께서 오시는 때에 대하여 생각하였고 예언을 하였다. 세자 요한은 이미 오신 구세주를 소개하였다. 바로 이 분이 구세주이시다.


복 음(루가 1,5-17) : 복음사가 중에 유일하게 루가만이 요한의 탄생과 예수의 탄생을 함께 기록으로 남겼다. 선구자 요한과 뒤에 오시는 위대한 분, 구세주 사이에는 루가가 강조하는 바와 같이 적개심이 아닌,밀접한 관계가 생긴다. 말라기 예언서 3,23-24의 말씀, “이 야훼가 나타날 날을 앞두고 내가 틀림없이 예언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엘리야가 어른들의 마음을 자식들에게, 자식들의 마음을 어른들에게 돌려 화목하게 하리라”는 말씀대로 세자 요한은 오시는 주님께 길을 준비해 드리는 사자요 예언자로 나타난다.


2. 강론 핵심


세자 요한의 탄생은 성모 마리아 외에는 유일하게 축일로 전례서에 들어있다. 예수의 탄생 6개월 전에 그 축일을 지내고 있다. 루가 복음에는 세자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을 마리아께서 방문했을 때 요한이 축성되었음을 나타낸다. 그의 특별한 출생은 그가 장차 구세사에서 담당할 특별한 사명을 암시해 주고 있다. 요한은 구약과 신약의 교차점에 서 있고, 그의 제자 중에서 예수의 첫 제자들이 생겨났다.


3. 교부들의 가르침 : 세자 요한은 모든 예언지·들보다 더 위대한 분


구약의 끝이며 신약의 시작인 것은 바로 세례입니다. 세례를 제일 먼저 베푼 사람은 바로 세자 요한이었는데, 그는 여인의 몸에서 난 사람들 중 가장 훌륭한 사람이었고(마태 11,11) 예언자들의 맨 마지막 예언자였습니다. “모든 예언서와 율법이 요한에게서 끝나기“ 때문입니다(마태 11.13) 그는 복음 역사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서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의 시작……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 나타나 세례를 베풀었다“(마르 1,1.4),


당신은 아마 테스벳 사람인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갔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래도 그는 요한보다 훌륭하지 않습니다. 에녹이 하늘로 들려 올라갔을지라도(창세 5,24) 요한보다는 위대하지 못합니다. 모세가 최고의 율법가이며 예언자들이 모두 칭찬받을 뿐이라도 그들은 요한만큼은 못합니다. 저는 감히 요한을 예언자들과 비교할 생각도 못합니다. 예언자들의 주님이시며, 우리 주님이신 주 예수께서 분명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일찍이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었다”(마태 11.11. 이제 당신은 하느님께서 누구에게 처음으로 세례성사의 은혜를 베풀도록 선택하셨는지 아시겠지요? 요한은 소유한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광야를 좋아하였습니다. 그렇다고 사람들을 미워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메뚜기를 먹고 살았습니다. 그의 영혼은 높은 곳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꿀로 양식을 삼았습니다. 그의 말은 꿀보다 더 달고 영양분이 많았습니다. 그는 낙타 털옷을 입고 살았습니다. 그의 생활은 은수자와 극기하는 사람들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그가 아직 어머니의 품속에 들어있을 때 그는 성신으로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예레미아도 거룩하게 되었지만,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예언자가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기뻐 춤춘 사람은 요한뿐입니다(루가1,44). (예루살렘의 치릴로 주교, 영세자를 위한 교리 3,6)


4. 예화 : 세자 요한의 죽음


성인들 중에 오직 두 분,성모 마리아와 성 요한만 돌아가신 날 뿐 아니라 탄생하신 날을 축일로 지내며 공경해 드린다. 마르코 복음 6장에는 세자 요한의 치명 사실과 그 이유가 기록되어 있다. 요한은 옳은 말을 한 죄로, 정의를 위하여 일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장차 구세주의 죽음을 미리 암시하였다고 볼 수 있다. 요한의 머리는 시칠리아와 콘스탄티노플 등을 경유하여 프랑스의 아미앙 성당에 모셔져 있다. 세자 요한의 무덤은 사마리아에 있었는데 362년에 이교도들에 의 해 파괴되었다. 유해들은 아직도 로마의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당에 모셔져 있다. 요한이 주님을 가리키며 구세주이심을 알려 주었던 그의 손가락은 오늘날까지 전해져 온다. 성녀 테끌라가 그 유해를 얻어 알프스를 넘어 노르만디로 모셔온 것이라고 한다.


세자 요한은 태어날 때부터 죽음의 위험을 맞이하였다. 예수 아기를 죽이려고 헤로데가 군인들에게 어린 남자 아이들을 다 죽이라고 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장차 요한이 해야 할 중요한 과제를 위해서 그를 보호하시어 숨겨 주셨다. 지금도 그의 탄생지에 있는 성당 안에는 바위 덩어리 하나가 기념물로 보존되어 있는데 그 바위 속에 난 구멍 안에 세자 요한을 숨겨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전해져 온다. 그가 훗날 구세주로 오신 천주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민에게 선포해야 할 중대한 과제를 성실히 이행하였던 것이다.


5. 마무리 묵상


요한의 일생은 하느님의 진리를 전하고 증거하는 생활이었다. 그 일 때문에 세자 요한은 살았고, 그 일 때문에 죽었던 것이다. 세상의 죄를 없애러 오신 구세주를 증거하는 생활을 하신 분이다. 견진성사를 받은 우리들도 요한과 같이 구세주를 이웃에게 알리고 우리 생활로써 그 분을 증거해야 할 것이다. 세자 요한의 이름이 일러주듯이 “하느님은 은혜를 베푸신다”는 사실을 용감하고 기쁘게 선포하는 것이 우리 생활의 목표여야 한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자신의 영혼을 구함에 있는데, 이 목적을 매일 아침마다 새롭게 생각하고 빛의 자녀로 만들어 주신 하느님께 은혜를 청하자.


성 요한 세자 탄생 대축일 : 6월 24일


1. 독서의 배경과 주제


제1독서(이사 49,1ㅡ6) : 예언자 이사야는 성공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말씀으로 살며 자신을 부르시고 선택하신 하느님을 굳게 믿는 신앙으로 살아간다. 하느님께서도 그를 버려두지 않으신다. 오히려 그에게 더욱 중요 하고 큰일을 맡기셨다. 즉 모든 백성들에게 하느님은 구원하시는 분이시며 도와주시는 분이시라는 소식을 전하는 일을 맡기셨다.


제2독서(사도 13,22-26) : 사도 바오로는 가는 곳마다 먼저 그곳에 살고 있던 유다인들을 대상으로 설교하곤 하였다. 바오로는 그들에게 성서 전체의 흐름과 그 핵심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하였고,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가 구세주이신 예수님 안에서 그 본래의 완성을 찾았음을 강조하였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세자 요 한에 대해서도 언급하면서 그가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로서 예수님을 미리 약속된 구세주로 알리는 사명을 가진 분이라고 일깨워 준다.


복 음(루가 1,57“66) : 세자 요한의 출생과 그의 할례에 관한 기록은 그의 이름을 짓는 데에서 그 정점을 이룬다. 요한이라는 이름의 뜻은 “하느님은 자비로우신 분”이라는 뜻과 “하느님은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뜻이다. 그의 부모와 친척들은 하느님께서 아이를 어떻게 하실 계획인지 잘 모르고 있었다. 그냥 짐작하기로는 무엇인가 하느님을 위하여 큰일을 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2. 강론 핵심


세자 요한은 그의 사명을 철저히 수행한 분이었다. 청빈과 순명의 정신으로 광야에서 살며 하느님의 뜻에 따라 행동하였다. 그는 구세주의 오심을 깨닫고 구세주를 모든 사람들게게 구세주로 소개하며 구세주를 ale으라고 선포하였다.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인 요한이 복음 선포의 선구자가 된 것이었다. 오늘날도 우리는 미사 때마다 세자 요한의 외침을 듣는다. “보라,천주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요한은 구세주의 심부름을 훌륭하게 완수하였다. 자기를 따르던 제자들에게도 구세주의 제자가 될 것을 명하였다. 하느님이 자비로우신 분이라고 외치던 요한에게 과연 하느님은 자비를 베푸셨다.


3. 교부들의 가르침 : 벙어리된 즈가리야와 요한의 이름


즈가리야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하지 못하여 성소에서 나와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손짓으로 시늉만 하였습니다(루가 1.22). 손짓은 몸짓으로 원하는 바를 나타내려고 노력할 때 하는 것입니다. 죽어가는 사람이 말을 못할 때 말 대신 손짓으로 자신의 심정을 표현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생각에 유다인 백성이 바로 그 죽어가는 사람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유다인은 지력이 모자라 그들 행동에 대하여 충분한 해명을 못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마지막 숨을 내쉬면서 말은 못하고 살기는 바라면서 손짓으로써 말 대신 표현하고 있으니 유다인은 벙어리 민족이요 어리석은 말 못하는 백성인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이라는 이름이 발표됐을 때 즈가리야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말씀이 전파되면서 율법이 끝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룰 믿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께도 말씀드리지 못하게 말을 막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말할 수 있도록 믿읍시다! 유다인도 믿으면 말할 수 있습니다.성서를 못 깨닫는 사람은 곧 벙어리입니다. 우리의 말은 곧 믿음입니다. (암브로시오, 투가 복음 주해서 1,41-42)


4. 예화 : 복음 전에 하는 십자 표시


신기 복음 성경 말씀을 듣기 전에 먼저 이마와 입과 가슴에 작은 십자 표시를 한다. 거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예전에 엠메리크라는 신심이 깊은 부인이 있었다. 그 부인은 매일 자신의 이마와 입과 가슴에 십자표를 하는 이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십자 표시는 열쇠와 같아서 악한 생각과 말과 행동이 몸속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 주고 오직 주님만이 이 열쇠를 열고 들어오셔서 좋고 유익한 생각,남에게 도움이 되는 말, 이웃을 사랑하는 선행을 하도록 힘을 주신다고 설명하였다. 아무렇게 쓰지 않고 하느님의 영광과 이웃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우리 몸과 마음을 옳게 쓰는 것이 세자 요한의 모범을 따르는 생활이 될 것이다.


5. 마무리 묵상


즈가리야는 완전히 믿지 않고 의심하는 바람에 벙어리가 되었다. 천사의 말을 믿고 순종한 마리아는 대신 영혼의 찬가를 부르셨다. 믿음이 없으면 말문이 막히고 믿음이 많아지면 말로써 전교도 행하게 된다.


복음 말씀을 들을 때마다 이마에 십자표를 그으면서 주님께 머리로 주님의 말씀을 잘 깨닫고, 입에 십자표를 하면서 입으로는 들은 말씀을 용감하고 기쁘게 전파하고, 가슴에 십자표를 하면서 복음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겨 행동으로 실천하게 도와주실 것을 기도드리곤 한다. 세자 요한의 이름이 모든 이에게 큰 기쁨이 되었듯이 우리의 이름도, 우리의 존재도 이웃에게 큰 기쁨이 되기 위해서는 주님을 마음속에 모시는 생활이 이루어져야 한다.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 6월 29일


1. 독서의 배경과 주제


제1독서(사도 12,1-11) : 헤로데 아그립빠 왕은 자신의 체면을 내세우기 위하여 사도들을 박해하였다. 야고보를 처형시켰고 베드로도 잡아 가두게 하였다. 위기에 처한 교회는 다른 무기가 없었고 오로지 기도로써 주님께 의탁하였다. 베드로가 풀려 나은 것은 하느님의 전능을 잘 나타내준다. 베드로의 해방은 구약 시대에 보여 주신 하느님의 위력으로 구출된 사람들의 이야기와 맥을 같이 한다.


제2독서(2 디모 4,6ㅡ18) : 사도 바오로는 많은 일을 하였다. 그의 강론, 서간문은 바오로가 생업을 유지하면서 이루어 놓은 훌륭한 업적들이다. 이제 그는 옥에 갇혀, 외롭고 힘든 인생의 마지막 고비를 보내지만, 조금도 슬퍼하거나 실망 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와 희망으로 가득 차 권고한다. 주님과의 만남을 간절히 기다리며 자신의 생명의 마지막 부분을 희생 제물로 하느님께 바치신다.


복 음(마태 16.13ㅡ19) :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예수님은 질문 하신다. 이 질문에 우리 각자도 대답해야 한다. 마르코 복음에서는 베드로의 대답이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되어 있다(8,29), 즉 구세주이심을 고백 한 것이다≫ 오늘 마태오 복음에서는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이시라고 덧붙여 대답한다. 예수께서는 바로 이 베드로의 신앙 고백의 기초 위에 당신 교회를 세우셨다.


2. 강론 핵심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는 두 분 다 네로 황제 시대에 치명하셨다. 베드로의 원래 이름은 시몬이었고 갈릴래아의 베싸이다 출신이었다. 예수께서 그에게 새 이름으로 게파, 즉 반석(베드로)이라는 사명을 주셨다. 사도들 이름 중에 항상 베드로의 이름이 먼저 불리우는 것은,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그가 제자들의  으뜸으로 예루살렘 교회를 이끌어 나갔기 때문이다. 교회에 첫 이방인을 받아들인 사람도 베드로였다(사도 10,11)


바오로 사도의 원래 이름은 사울이었다. 그는 가물리엘 선생의 제자로서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박해하던 장본인이었다. 주님께서는 그에게 새 이름과 더불어 새로운 사명을 맡겨 주셨다. 그를 개종시키신 하느님은 이제 그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을 오류의 길로부터 진리의 길로 안내하여 하느님께 개종시키는 임무를 맡기셨고 바오로는 그 임무를 죽는 날까지 성실히 이행하였다. 베드로와 바오로는 천주교회의 두 기둥이 되었다.


3. 교부들의 가르침 : 사도들의 활동과 이루어 놓은 업적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은 세상 방방곡곡으로 파견되어 나갔습니다. 그들은 겸손한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갔습니다. 그들은 소금으로서 온 세상을 소금으로 간을 맞추었습니다. 성자께서는 12명의 일꾼들을 보내셨는데 그들은 세상을 다시 재건하는 임무를 부여받았습니다. 그들은 열심한 건축가들로서 모든 것을 질서 정연하게 정돈하였습니다. 주님은 가난하고 지식도 별로 없는 그들을 세상에 파견하셨습니다. 사도들은 가서 부자들도 박학한 사람들도 가르쳤습니다. 사도들은 허영의 궁전을 헐어 버리고 그 대신 온 세상에 교회를 훌륭한 건축가로서 세웠던 것입니다. 온 세상이 사도들에게서 진리를 배웠고 하느님을 공경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우상들을 부수어 버리고, 빛을 받아 빛의 눈으로 우상들이 헛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들을 비추어 우상이 단순히 나무나 돌조각임을 알게 해주었고 참된 신이 아님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온갖 우상을 치워버리고 파괴해 버렸습니다.


마귀는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어디서나 보는 곳마다 십자가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우상들이 파괴된 로마에서 도망쳐 나와 에페소로 옮겨 가지만 그곳에서도 마귀의 여인인 아트데미스(다이아나)가 파괴되었으니 어쩔 줄을 몰라합니다. 교회가 들어섰을 때 사탄은 시몬 베드로에게 쫓겨났습니다. 바오로는 사탄을 소아시아에서 몰아내어 쫓아내니 인도로 도망치는데, 거기에도 진리의 건축가인 토마 사도가 와서 교회를 건설하고 있는 바람에, 다시 이디오피아로 피신하였으나 거기서도 예수의 제자가 그를 몰아내어 마귀는 에집트로 건너갔지만 그곳에서도 모든 우상들이 다 파괴된 것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사탄은 오갈 데가 없이 되었으니 사방에서 진리에게 추방당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가 사탄의 왕관을 빼앗아 버렸고 그를 조롱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렸던 것입니다. 세상은 잡신들을 끊어 버리고 하느님의 아들이신 주님 안에 피난처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주님 외에 다른 신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룩의 야곱 바트내, 우상들의 멸망에 관하여, 10,310ㅡ360)


4. 예화 : 사도 베드로와 요술장이 시몬


황금 전설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사도 베드로가 사람들에게 예수에 관하여 가르치고 있을 때 예루살렘에 시몬이라는 요술쟁이가 있었다. 그는 자신을 최고의 진리 자체라고 일컬으면서 자기를 따르는 자에게는 영원히 살 수 있게 해주겠노라고 약속하였다. 자기에게 기도하면 원하는 것은 다 주겠노라고도 하였다. 그는 낫에 손을 대지 않고서 낫이 스스로 곡식을 베게 하여 사람의 손보다 10배나 더 빨리 추수할 수 있노라고 장담하였고, 쇠로 만든 뱀을 움직이게 하고 돌에 새긴 사람의 얼굴이 웃게도 하며 개들이 노래를 부르게도 하였다. 그는 베드로와 대결하기로 마음먹었다. 자기가 신이라고 주장할 속셈이었다. 베드로 사도는 그 장소에 도착하자, 모여 있던 사람들에게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 하고 인사하였다. 그러자 시몬이 대꾸하였다. “우리는 네가 주는 평화와 일치가 필요 없다. 평화와 일치가 이루어지면 진리를 찾지 못한다. 양쪽에서 다투어서 한쪽이 승리해야만 평화가 오는 법이다.” 베드로는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싸움은 죄에서 오고, 죄가 없는 곳에는 평화가 있다.” 시몬은 자신 의 실력을 과시하고 싶어 다음과 같이 베드로에게 도전하였다. “내가 반드시 너를 굴복시켜 내 앞에 무름을 꿇게 만들겠다. 나는 공중을 날아다닐 수도 있고 나무가 솟아나게도 하고 돌을 빵으로도 변화시킬 수 있다. 불 속에서도 타지 않으며,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다할 수 있다.” 그러자 베드로는 입을 열어 그 요술장이의 거짓됨을 일일이 지적하였고, 시몬은 도저히 베드로를 당해낼 수 없게 되자 사마리아를 떠나 로마로 도망쳤다. 곧 네로 황제의 총애를 받게 된 시몬은 네로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보여 줄 터이니 내 목을 자르라, 내가 삼일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그대로 실행되어 희광이가 칼로 시몬의 목을 잘랐는데 요술을 부려 시몬은 숨고 대신 산양의 목이 잘려졌다. 시몬은 삼일 동안 숨어 있다가 네로 앞에 나타나니 네로는 그것을 믿고 그의 초상화를 그리게 하고 그 밑에 “거룩한 신 시몬“이라고 써붙이게 하였다.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가 로마에 왔을 때 그의 거짓됨을 폭로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그리스도 안에 천주성과 인성이 같이 계시고,요술장이 시몬 안에는 사람 과 마귀 두 가지 요소가 들어 있다.” 시몬은 교만에 빠져서 죽은 사람을 살리겠노라고 장담하였다. 그때 한 젊은이가 죽었는데 사람들은 베드로와 요술장이 시몬을 불러서 죽은 이를 살리지 못하는 편을 죽이겠노라고 선언하였다. 시몬은 주문을 외우며 죽은 사람 곁에 섰다. 그러자 사람들 눈에 그 사람의 머리가 움직이는 것 같이 보였다. 사람들은 베드로를 돌로 쳐 죽이려고 덤볐는데, 베드로는 그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명한 뒤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죽은 사람이 분명히 살아났다면 일어나서 걸어 보게 하고 말을 하는지 봅시다. 그렇지 않다면 속임 수에 불과합니다.“ 시몬을 죽은 사람 곁에서 떼어 놓자,죽은 사람은 꼼짝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그때 베드로가 나서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젊은이여 일어나라!“ 하고 외치자, 죽었던 사람이 벌떡 일어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걷게 되었다. 사람들이 시몬을 돌로 치려고 하자, 베드로는 말리면서 그가 요술을 부리다가 패배한 것으로 충분하니 놔두라고 하면서 악을 선으로 갚으라고 가르치신 구세주의 선하심을 강조하였다.


5. 마무리 묵상


예수께서 당신의 도구로 간택하신 베드로와 바오로 두 분 사도의 생활에서 주님께서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전혀 다른 기준으로 사도들을 선택하셨음을 깨닫게 된다. 고기를 잡던 어부에게 이제는 사람을 교회의 품으로 인도하는 제자가 되게 하셨다. 지위나 학식이나 말재주보다 주님의 말씀에 성실한 자세로 따르는 것을 기준으로 삼으셨다. 바오로도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었지만 변화 되어 죽음을 무릅쓰고 주님께 충성을 바치셨다.


두 분 성인들께 우리의 생활을 잘 이끌어 주시도록 전구를 청하자. 두 분 안에서 활동하시던 성신께서 우리 안에서 같은 활동을 하실 수 있도록 기도하며 자신을 봉헌해 드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