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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3월호 (제 134호)
제3절 거룩한 로마 교회의 추기경 5. 추기원 회의 제353조 제1항 : 추기경들은 주로 교황의 명령...

주일의 말씀
1990년 3월호 (제 134호)
사순 제1주일 : 3월 4일  1. 독서의 배경과 주제 제1독서(창세 2,7-9 ; 3,1-7) : 오늘 독서에는...

교회의 사회 교리의 연원과 전거
1990년 3월호 (제 134호)
I. 사회 교리의 연원 흔히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은 1891년 5월 15일 발표된 레오 13세의 회칙「노동 헌...

동유럽의 민주화 과정을 보면서 남북한의 통일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1990년 3월호 (제 134호)
우리의 여러 가지 생각을 모으려 한다. 여기서는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는 계기가 되고 이것을 통하여 자기...

나의 고백
1990년 3월호 (제 134호)
원로 시인 구상 씨는 1919년 9월 16일 함경도 원산 태생으로 천주교 신자이며 일본 니혼 대학 종교학과를 ...

깊은 구렁에서 벗어나는 길
1990년 3월호 (제 134호)
시편 130장(깊은 구렁 속에서 주께 부르짖사오니)은 악의 수렁에 빠진 죄인의 슬픔,하느님께 대한 잘못의 ...

장애자 복지의 실태와 문제점
1990년 3월호 (제 134호)
대 담 : 김종진 (서울시 남부 장애자 종합복지관·사회사업가)     김경숙 (인천 노...

동유럽과 교회의 상황
1990년 3월호 (제 134호)
최근에,특히 1989년 동유럽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역사 안에서 그처럼 짧은 ...

서독의 '국가 연합 구조'와 동서 진영의 이해
1990년 3월호 (제 134호)
1. 서언 우리가 역사라고 말하는 무한히 복잡한 인류사의 과정은 대부분 위정자에 의해서 진행되어 왔...

소련 및 동구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위기구조와 개혁 전망
1990년 3월호 (제 134호)
I. 머리말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통해 가시적으로 나타났듯이 소련을 중심으로 한 동구의 사회주의 국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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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동유럽의 정치 변화 1990년 3월호 (제 134호)

서독의 '국가 연합 구조'와 동서 진영의 이해

문태운 (국민대학교 교수.정치외교학)

1. 서언

우리가 역사라고 말하는 무한히 복잡한 인류사의 과정은 대부분 위정자에 의해서 진행되어 왔지만 때로는 대중들이 그 과정의 주역일 때도 있었다, 1989년은 후자의 경우로서 민중이 역사 무대의 주역으로 뛰어들었으며, 누가 앞으로의 역사를 서술해도 동유럽에서의 이번 사태는 20세기 인류 문화사의 커다란 사건일 것이다.

그들은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동구 다섯 나라에서 공산당 일당 통치 체계를 종식시켰다. 6월의 헝가리,8월의 폴란드, 11월의 동독과 체코 그리고 최근의 루마니아 사태가 바로 그것이다. 소련 당국은 이러한 동유럽의 사회 변혁에 격려와 고무를 받고 있으며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브레즈네프 독트린’의 사멸(死滅)을 선언하였고 1968년 체코 침공과 같은 일은 결코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라고 보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레물린은 현재의 동구 변화에 당황하고 있으며 서방 지도자들도 사태 추이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동서간의 이념 대립이 계속되는 한 존재하리라고 믿었던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지고 분단 45년 만에 그들의 국경선을 완전히 개방함에 따라 독일 통일 문제와 새로운 유럽 질서는 동 서간의 실제적인 문제로 부각되기에 이르렀다.

동서 진영은 이 문제들을 놓고 12월 초 몰타 회담을 선두로 브뤼셀에서 나토 정상 회담, 모스크바에서 바르샤바 조약 국가 회담, 스트라브르에서 유럽 공동 체 정상 회담을 연달아 개최하여 현안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2. 콜 수상의 '국가 연합 구조'

나치 독일의 항복은 연합 전승국에게 전후 독일의 관리와 앞으로의 발전 과정에 대한 영향력 행사라는 과제를 그들의 점령 지역에서 각자 독자적으로 집행하도록 하는 권한을 부여하였다. 소련은 연합국 중 제일 먼저(1945년 6월 10일) 그의 점령 지역에서 정치적 경제적 법적 이데올로기적 구조를 구축했다. 그해 8월 에는 영 · 미 점령국도 소련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체제에 맞는 경제적 정치적 조 치를 취했고 프랑스도 그 후 그의 점령 지역에서 동일한 조치를 취했다. 이리하여 상이한 두 체제로의 독일 분단은 이미 두 독일국가 성립 이전에 기정사실화 된 것이었다. 또한 그후 서독 및 동독의 국가 수립은 각기 미 · 소의 결정적인 정치 영향력 아래에서 형성되었다.

따라서 두개의 독일은 전후 미·소 양진영의 유럽 질서 정책 내지는 이데올로기 정책에 따른 산물로서 유럽 전체의 합의이기도 했다. 때문에 '독일 문제' (Deutsche Frage) 의 거론은 전후 얄타 체제에 대한 도전적 성격을 갖기 때문에 그 누구도 이에 대한 방안이나 계획을 발표한 적이 없다. 그러나 1969년 이후 한 단 계 한 단계 발전되어 왔던 동서독 관계의 질적 양적 변화는 현재의 동구 개혁과 동독의 국경 개방 조치와 더불어 통일의 길을 걷고 있는 서독 국민을 더욱 조급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서독 정부는 국내 여론에 힘입어 전후 처음으로 서방 세계와의 사전 협의 없이 독자적으로 독일 통일에 대한 10개 항의 구상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11월 28일 서독 의회에서 밝힌 헬무트 콜 수상의 이른바 ‘국가연합 구조' (Konfoderative Strukturen) 제안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궁극적인 재통일을 향한 준비 단계로서 장래의 통합된 새로운 유럽 질서의 틀 안에서 동서독을 연방제적인 하나의 국가로 통합한다는 것이다. 그 내용을 간추려 보면 동독 모드로프 수상이 내놓은 '계약 공동사회’ (Vertmgs Gememschaft) 제의를1) 수용하면서 동서독 간에 항구적인 협력과 정치적 조정을 위한 정부 위원회,의회 공동 협의체 및 양독(兩獨) 자문위원회를 구성한다는 것이며 이를 기초로 제 분 야에서 상호 협력을 발전시켜 나간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무역 협정을 통하여 실리적인 교류 확대를 기하며 이러한 발전을 전제로 하여 독일 통일은 유럽의 ‘평화로운 환경’의 기반위에서 독일인들이 자결을 통해 재발견할 수 있다고 주창하고 있다.

이 연합 구조의 특징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2) 첫째로 의료 부문, 인도적 분야와 여행 환율 기금에 대한 긴급 원조 및 동서독 양국민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환경 보호, 전화 가설, 철도 부설 등에 구체적이고 즉각적인 조치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이러한 지원과 협력을 확대해 나가기 위해서는 동독의 헌법 개정,선거법 개정,자유 시장 체제의 도입 그리고 공산당의 권력 독점 종식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끝으로 주권과 명토의 동등성을 인정하고 정치적인 독립을 유지한 채 거의 모든 분야에서 조약을 통한 양국가간의 결합 형태를 통 해 궁극적인 통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독은 이 같은 발전 단계를 유럽의 새로운 질서 형성에 맡긴다는 입장을 보이면서도 궁극적인 통일의 형태로서 현재 서독의 연방제를 명시하고 있는 점과 자본주의적 시장 경제 도입을 조건으로 촉구하고 있는 점으로 서독의 이니셔티브 아래에서 동독 소멸을 꾀하고 있지 않는가 하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한 동유럽의 개혁으로 중부 유럽에 새로운 블록 형성의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으며 서독의 경제적 능력과 지정학적인 위치는 또다시 독일이 유럽 중앙의 강력한 민족 국가로 부상하지 않을까 하는 부정적인 반응에 직면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서독의 제안은 주변 국가들의 이해 관계와 유럽의 현실로 인하여 세계적인 회의와 불신을 일으키고 있으며 향후 어떻게 해결되어 갈 것인가는 예측하기 어렵다.

3. 몰타 정상 회담

지난 12월 2일 몰타 앞바다에 불어닥친 폭풍우는 서독이 만든 막심 고르키 (Maxim Gorkij) 호에서 '역사의 허리케인'인 독일 문제를 논의하게 했다, 그러나 이미 예측한 대로 어느 특정 의제에 대한 구체적 합의나 이를 위한 시간표는 제시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미 · 소 정상은 콜 수상의 통일 방안이 의제가 아니며 유럽 공동체와 동구의 정치적 경제적 관계 및 양 군사 블록의 관계 등 광범위하고 다양한 측면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에·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시기 상조라고 못 박았다.

동유럽의 변화와 독일 통일문제에 대한 이러한 미·소의 인식은 인위적인 가속이나 감속을 않고 질서 있는 변화에 맡기기로 양해한 점이다.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변화의 과정을 인위적으로 가속시키면 변화 과정 그 자체가 위해(危害)를 받는다"3)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라고 언급하면서 조속한 통일 논의에 반대 의사를 간접적으로 표명했다. 다시 말해서 이 문제는 나토와 바르샤바 기구의 미래와 유럽에서의 평화 질서와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동서 양대 세력의 최대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에는 유럽을 이끌고 갈 새로운 질서를 먼저 창출해야 될 뿐 아니라 냉전 논리에 대처할 만한 새로운 정치, 경제, 안보 체제의 틀을 짜는 일이 먼저 선행되어야 함을 시사한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이번 미·소 정상 희담에서 2000년까지 바르샤바 동맹과 북대서양 조약 기구를 동시에 해체하자는 이전의 제안을 더 이상 되풀이하지 않았으며, 미국도 유럽에서의 이해 관계를 분명히 했다. 북대서양 조약 기구와 바르샤바 조약 기구의 두 군사 동맹 문제에 관해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두 동맹이 군사 동맹에서 점차 '정치 군사 동맹'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 ‘정치 동맹'으로 가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부시도 "미국은 현재의 안보 우산을 접지 않을 것이다''4) 라고 천명했다. 부시는 이번 회담에서 소련 개혁 정책의 성공 여부가 세계 평화의 전제라는 기존의 인식을 확인하는 기회를 가졌다. 미 대통령은 이에 따라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면서 소련을 도울 용의를 표명했다.5)

1) 미국은 경제 협정을 통해 소련의 개방 정책을 지원하며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 (GATT) 에 소련이 읍저버 자격을 부여받도록 협조한다.

2) 미국은 국방 예산을 삭감하고 유럽에서 상당수의 주둔군을 철수시킴으로써 소련이 국방비를 절약하여 개혁 정책에 충당하도록 촉진한다.

3) 동유럽의 개혁이 안정 속에서 이룩되도록 미국도 적극 협조하며 개혁을 자국의 입장에 맡기겠다는 고르바초프의 의지를 존중한다.

부시 대통령은 이밖에 오는 2004년 올림픽을 베를린에서 개최할 수 있도록 미·소가 노력하자는 제안도 내놓았다. 나토의 해체와 유럽의 중립화 통일이나 '유럽 공동의 집'을 향한 동유럽의 ‘핀란드화(化)'같은 충격적인 제의는 결코 없었다.6) 따라서 미·소의 기본 입장은 1950년대 중반 이후의 유럽 질서를 그대 로 고수하면서 현재의 변화를 조정할 수 있는 협조 방식 (Modus vivend)을 모색 하고 있다. 현재 동유럽의 변화 물결은 막지 못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유럽의 안전과 협력을 위한 회의'(KSZE)의 틀 내에서 실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7) 여기에는 전유럽 국가와 미국,소련, 캐나다가 포함된다고 한다. 또한 미·소 양국은 1975년 헬싱키 조약의 정신에 따라 현존하는 유럽 국경선이 유럽의 안정에 기여한다는 이해를 같이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동서 양진영의 가교 역할을 했으며 긴장 완화에 이바지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독 국가 연합 제안은 유럽 통일의 맥락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헬싱키에서 35개국에 의해 조인된 현재의 국경선을 가능한 한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미·소 두 정상이 세계 평화와 안정을 위해 상호 신뢰를 구축하여 최소한 새로운 전쟁을 벌이지 않는 쪽으로 양해가 되었다는 점에서 이번 정상 회담의 역사적 의의가 있다고 보겠다.

4. 소련의 입장

이번 콜 수상의 제안은 소련으로서는 특별히 민감한 것 같다, 고르바초프는 바르샤바 조약 국가들의 개혁 과정이 성숙되도록 내버려 두지는 못할망정 개혁 의 어려움을 서독이 철저하게 이기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논평했다. 심지어 그는 콜을 나치 선전상이던 요셉 괴벨과 비유하면서 현존하는 유럽의 세력 균형을 바꾸려고 하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서독이 "동독의 후견인 역할 을 하려 들고 있으며 동유럽에서의 소요를 부채질하고 있다”8)는 노골적인 비난을 던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콜수상의 '정치,경제 제도의 근본적인 변혁'이라는 요구는 무질서 외에는 아무것도 도출해 낸 것이 없다는 것이다, 서독 외상 겐셔는 소련 당국의 이같은 불신을 종식시키려고 세 차례 모스크바를 방문하였으나 고르바초프는 서독의 제안이 독·소 관계 정상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우려를 거듭 표명했다, 그는 또한 동구권에 대한 자본주의 수출을 기도함으로써 이들 국가 내 자본주의 경도(傾倒) 세력을 지원하거나'전통적인 공산주의 체제를 전복하려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독일 통일은 이렇게 소편에게는 위협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현 단계에서의 독일 통일이 서독에 의한 동독 합병, 바르샤바 조약 기구의 해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고 그렇지 않은 다른 어떤 형태의 통일도 곧바로 강력한 위협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역사적 경험 때문이다0 통일된 독일이 나토의 일원으로 남아 폴란드와 국경을 함께 하는 것도 소련은 결코 용인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통일된 독일이 현재의 군사력을 유지한 채 동서 어느 진영에도 소속되지 않는 상황도 우려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소련의 반통일(反統一) 입장은 독일인의 통일 의지가 고양될 때마다 강력히 확인되었다. 그러나 이번 동유럽 변화에 따른 독일 문 제를 소련은 어느 정도 객관적인 현실로 인정하고 있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소련은 공개적으로 동독에 반대 입장을 표시하면서도 핵무기 및 재래식 무기 감축의 점진적 협상을 통하여 서독에 대해 나토 탈퇴와 함께 오스트리아식의 중립화 통일을 제의할 개연성도 있다고 본다.9)

그러나 독일인들이 소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통일을 이루려 하고 그것이 소련의 국익과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할 때 이는 가장 위험스러운 경우이며 이를 막기 위한 무력 사용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동독은 기존 공산블록의 전초 기지이며 소련은 여기에 38만여 명의 자국 군을 주둔시키고 있으며 동독의 진로는 공산권 전체의 운명과 직결되어 있다. 동서독 관계의 발전이 소련의 통제권을 벗어날 경우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소련은 이를 결코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5. 미국 · 프랑스의 입장

다음은 미국의 이해 관계이다. 부시 행정부는 지금까지 '하나로 뭉쳐진 유럽’ (Europe whole and free) 의 출현을 저지해 왔지만 최소한 이번 장벽 개방에 따른 동독의 내부 개혁과 양독 통일 문제를 별개로 간주한다고 천명하고 있다. 이처 럼 미국이 통독(統獨) 문제에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은 우선 현실적으로 단 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독일을 분단시켰던 2차 세계 대전의 연합 전승국간의 입장 조정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며 이는 통일된 독일이 유럽 및 세계 질서에 위협적 존재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이러한 전제 하에서 무엇보다도 동독이 자유 민주 체제로 개혁을 해야하고 오는 1992년 유럽 경제 통합에 참여함으로써 하나의 유럽 안에서 공존 협력적 관계를 정립하는 것이 시간적인 순서라고 보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유럽인들의 역사적 경험에서 나온 우려를 고려하여 독일인의 통일 의지를 제어할 네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10) 첫째, 민족 자결 원칙은 그 결과에 대한 선입관이 배제되고 완벽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둘째, 독일 통일은 북대서양 조약 기구와 유럽 공동체의 기본 틀 안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셋째, 통독(統獨)은 유럽 변화의 점진적 절차들의 한 부분이어야 한다. 넷째, 통일된 독일은 국경선에 있어 헬싱키 협정 에서 규정한 원칙에 동의해야 한다. 이것은 결국 통일된 독일이 강대국으로 등장하지 않고 통일 유럽의 일원으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번 브뤼셀에서의 나토 정상 회담에서 콜 수상에게 "미국은 독일 문제로 해서 소련과의 원활한 관계가 소원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미국은 독일인의 통일에 대한 열망을 지원하기는 하나 민족 자결권에 의한 통일이 지상 최대의 모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11)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콜의 제안은 독··불의 우호관계에도 좋은 봉사를 하지 못했다. 미테랑 대통령은 서독 외상 겐셔와의 회담에서 "프랑스는 좋을 때나 어려울 때 서독과 협력하며 공동으로 새로운 유럽을 건설하기를 희망한다"12)고 밝히고 만약 인구 8천 만의 재통일된 독일이 독자적인 세력으로 등장하여 통제될 수 없을 때 유럽은 이것을 결코 용인할 수 없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이 같은 상황이 올 때 1913년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직전의 정세에 처해지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13)

그때도 그랬듯이 지금 동유럽에서 일고 있는 긴장과 대립이 광범위한 정치적 불안과 국제 정치 구조의 위기로 발전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소련은 지금 내부적인 동요와 북으로는 발틱 3국으로부터 남으로는 회교도 공화국에 이르기까지 중앙 정부로부터의 강력한 이탈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거기에다 동유럽은 경제 파탄과 정치적 불안으로 커다란 변혁의 압박을 받고 있다, 더구나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의 소수 민족 억압 정책으로 헝가리와 터키인들의 감정이 악화되고 있고 남부에서는 유고와 알바니아가 서로 적대하고 있다. 프랑스가 유럽 통합에 앞장서며 계획을 설계하고 있는 것은 파리를 유럽의 힘의 중심지로 삼는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유럽은 점차 탈(脫) 국가 노선으로 발전하게 되며 유럽 공동체와 동유럽 국가 간의 관계의 본질도 바꿔 놓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독일인의 생활 공간은 지정학적으로 역사적으로 중구(中歐, Mittel Europa)이며 중구의 힘의 중심지는 베를린이다. 독일 통일도 바로 중구권 부활을 뜻한다, 오늘날 독일 문제의 부활은 1930년대와 마찬가지로 이 지역 대부분이 유럽의 경제 대국인 독일의 영향권에 빠져 들어가지 않나 하는 점이다. 만약 독일인이 콜의 구상에 환호하여 유럽 통합보다 통독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면 프랑스는 새로운 세력 균형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오랫동안 미테랑의 외교 고문인 드블레는 "만약 통일된 독일이 강대 세력으로 부상하게 되면 우리는 이 전의 불노 동맹을 다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유럽 중앙에 통일 독일이라는 거대한 경제 및 군사 세력이 등장하는 것에 대해 매우 불편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표1>



통일된 독일의 경제력은 현재 지표로도 불란서의 1.5배나 되며 동·서독 군사력을 합치면 세계 최강의 군대가 된다. 만약 2004년에 통일된 독일이 베를린에서 단일팀으로 올림픽에 참가하면 실로 68년 전 베를린 올림픽의 영광을 다시 되찾을 것이다· 동서독 경제는 1993년 유럽 공동체의 무역 장벽이 예정대로 철폐 되면 수출 및 국내 설비 투자의 급성장 때문에 유럽 최대 경제 대국이 될 것은 자명하다. 지난날 역사적 경험으로 프랑스 민족주의와 게르만 민족주의가 다시 한 번 부딪치게 되는 두려움을 시사하고 있다고 하겠다. 프랑스 우익을 대표하는 르피가로는 "독일인들은 40년 간 정치 분단에도 불구하고 단일 민족으로서 게르 만 민족 감정을 심장에 담아 왔다"15)고 전제하고 이러한 민족 감정이 통일의 길로 줄달음치게 될 것이며 통일의 시기, 형태만이 문제가 될 뿐 통일 자체는 불가피한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프랑스 우익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좌파든 중도파든 베를린 장벽 붕괴는 냉전 시대에 강제로 잠재워졌던 독일의 민족주의가 재분출하는 출발점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6? 서독의 희망과 딜레마

콜 수상의 제안은 독일인의 자신감과 현실적 욕구로 뒤섞여 있다. 자신감이란 분단 이후 끊임없이 시달려 온 동서독의 체제 및 정통성 문제에서 비로소 동독 보다 우위에 섰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었다. 또한 이 제안은 자국민의 자주적이고 성숙된 역량에서 나왔다는 것을 전세계에 보여 주었다. 서독인은 기껏해야 서독산(西獨?, made in W. Germany )이라는 경제적 우월성을 인정하면서도 바이마르의 법통(法統)과 게르만 민족의 정통성을 누가 계승하였나하는 국가적 신원 (National Identity) 에 대해서는 그리 내세울 것이 없었다. 그러나 수만 명의 동독인이 서독으로 탈출한 것은 분단의 종식을 열망하는 통일 의지였으며 자유 민주 체제를 위한 개혁 요구였다. 이것은 서독이 1969년 브란트 정권 이후 꾸준히 추구한 동방 정책의 결실이었다. 서독이 독일 통일은 가까운 장래에 실현될 수 없다는 인식에서 불필요한 이념적 논쟁을 피한 채 실리적인 교류 확대에 역점을 둔 동방 정책의 성과였다. 동독은 주권 국가로서 승인을 받은 대 가로 수백만 명의 서독 방문객을 받아들였고 서독 텔레비전 시청을 허용하였다. 이로써 동독인은 서독 생활의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조치는 실제로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세뇌 공작을 불가능하게 만들었으며 동독인의 개혁 의지를 불러일으켰다.

또 다른 하나의 자신감은 서독이 동서 유럽 내에서 경제적 정치적 관계를 개선하는 데 주도적인 임무를 부여받았다는 것이다。제2차 세계 대전의 패전과 함께 서독은 국제 정치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위치를 점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동시에 그들의 지정학적 문화적 경제적 이점을 가지고 동서 양진영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인식을 하기 시작했다. 서독이 경제력을 지렛대삼아 그동안 다뉴브 강변의 중구 대평원으로 끊임없이 경제 협력을 도모해 왔으며, 현재의 서독 경제 능력은 늪에 빠진 동유럽 국가들에 자석과도 같은 역할을 하게 될 것이 전망된다, 서독 정부도 동유럽의 개혁을 위해 자기들의 경제력을 필요로 한다면 기꺼이 도와줄 용의가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지난 1년 사이 4백 개 이상의 유럽과의 합작 기업이 폴란드에 생겨났는데 그중 절반이 서독과의 그것이며 지난 13년 간에 가장 높은 실질 경제 성장(46%)을 한 서독 경제는 소련 및 동구 권 국가와의 교역을 통해 유럽 경제에서의 지도적 역할을 수행할 것이 분명 하다

그러나 동독 개혁은 동유럽 변화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즉 폴란드와 헝가리 등은 지금의 민주화 개혁에 따른 문제들을 그들 국민들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해결할 수 있지만 동독인은 그것이 그들의 선택에 맡겨졌을 때 민족 문제,체제 문제를 어떻게 선택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 이후서 방 언론은 동독 국가 명칭인 German Democratic Republic (독일 민주 공화국)을 Gradually Disappearing Republic (점차 소멸될 공화국)이라고 바꿔 지칭할 만큼 동독이 곧 소멸하고 독일 통일이 눈앞에 다가온 것처럼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소련은 동독에 비공산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용인할는지 몰라도 가장 훌륭한 경 제 파트너이며 동유럽 최고의 맹방인 동독을 상실하는 것을 결코 용인하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소련이 붕괴되지 않는 한 동독의 붕괴는 실제로 유혈 대결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심각한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많은 국제 정치 학자들이 지적 하듯이 냉전의 일환으로 독일을 초강대국의 영향권 속에 쪼개 넣었지만 그것은 독일 문제를 단지 일시적으로 해결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그러나 소련 블록이 실제로 해체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리고 동독의 존재는 어떻게 될 것인가? 실로 예측하기 힘든 일이며 20세기 초와 마찬가지로 지난날의 민족 분쟁이 재연될 소지가 충분히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서독은 통일 대신에 민주화를 요구하고 있으며 통일은 독일인에 의해 서 독자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딜레마를 알고 있다, 이처럼 통일은 현재 국제 관계 속에서의 변수이기 때문에 성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1972년도에 체결된 동 서 기본 조약의 기조 위에서 통일 (Reunification) 보다 재결합(Reassociation) 을 추구할 것이고 기껏해야 30년 전 아데나워가 주창했던 한 민족 두 국가의 느슨한 국가 연합을 제안한 것이 그 이유라고 여겨진다. 즉 독일 민족은 한 국가 두 민족이라는 1969년 빌리브란트의 동방 정책의 정신을 다시 한번 천명함으로써 강대국과 주변 국가들의 오해의 소지를 불식하고 동서독간의 실제적인 교류를 확 대함으로써 통일로 나아간다는 실천적인 전략이라고 보여진다.

또 하나 현재 독일인이 직면하고 있는 딜레마는 폴란드와의 국경선 문제이다. 서독은 소련으로부터 오더 강과 나이째 강 동부에 있는 독일의 영토를 합법적으로 폴란드에 양도하여 줄 것을 요구받았을 때,1952년의 독일 조약의 정신에 따라 통일된 독일이 존재하지 않는 한 이를 승인할 수 없다고 거부하였다. 1952년 독일 재무장의 기초가 되었던 평화 규정 (Peace Settlement, Reglement de paix) 인 7조 1항에는 "조약 서명국(연합 전승국)은 전 독일을 위한 항구적인 평화를 형성하는 기초인 평화 규정이 확정될 때까지 공동으로 대처하며 궁극적인 국경선은 그때까지 유보한다"17)고 명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미·영·불 3국이 독일 통일에 협조한다는 대전제 아래서 독이 북대서양 조약 기구에 가입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역으로 독일의 궁극적 목표인 통일을 저해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서독의 우파들은 현재의 폴란드 국경선은 연합 전승국의 협의 사항에 위배되며 민주 맹방들과의 약속보다는 민족적 목표를 더 중시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콜 수상이 10개 항에서 폴란드와의 국경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냉전 체제 하에서 힘의 논리에 의하여 폴란드에 편입 된 영토를 향후 유럽 질서에 따라 독일에 유리한 해석으로 이끌어 가려는 서독 내의 여론의 반영 결과이며,이것이 또한 동서 진영으로부터 독일이 통일보다는 전후 동서의 세력 균형에 이바지한 국경선을 변경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7. 유럽 공동체 통합과 통독 문제

동독의 국경 개방 및 민주환 조치는 독일의 통일을 예고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미·소 및 서구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러나 독일의 분단은 미·소 양 진영 강대 세력들의 의사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정치적 합의가 없는 한 실현되기는 어렵다. 즉 독일 통일은 나토와 바르샤바 조약의 미래와 유럽의 새로운 질서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러므로 동독 공산당의 붕괴가 바로 분단 장애의 제거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1871년의 독일의 통일은 유럽의 세력 균형을 깨트렸으며 곧바로 파시즘으로 나타났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독일 통일의 최대 걸림돌이다· 동서 양진영은 현재의 유럽 국경선이 전후 유럽 대륙의 긴장을 완화시키는 데 가장 좋은 기본 틀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왜냐하면 독일의 분단과 유럽의 분단에 따른 냉전 체제는 이제까지의 독일 문제를 형식상으로는 해결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럽에서의 군축이 이루어지지 않고 양 블록간의 대립이 완화되지 않은 채 물리적으로 통일을 시도한다면 오히려 동서 대립이 더욱 첨예화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전후 처음으로 독일인 스스로 "동서독 통일은 독일인의 일”이며 "국가 연합 제안에 대해 우리는 외국의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18)고 도전적으로 천명할 만큼 통일 의지를 보인 것은 괄목할 만한 일이다. 그리고 이 제안은 현재의 여건으로 통일 시나리오의 일차적인 단계로서 주권을 가진 동독의 실체를 인정하고 민족 자결에 기초하여 통일을 지향하고 있으며 독일인의 열망과 국 제 관계의 현실적 필요성에 부합하는 최소한의 것이다. 또한 콜의 제안인 유럽 통합의기저위에서독일통일은 현재로서는 실현 가능성이 가장 높은 방안이다. 그러나 유럽 통합은 기술적이고 행정적인 절차에 따라 추진될 수 있지만 통독(統獨)은 민주적 절차의 진전에 따라 추진될 것이다. 따라서 유럽 공동체 통합 일정과 독일 통일의 일정은 같지 않다고 본다.

키신저는 이러한 서독의 통일 방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4가지 장기 계획 추진을 제안하고 있다.19) 첫째로,2년 내에 독일 연방이 수립되도록 그 일정을 구체화한다. 독일 연방안은 서구 국가의 외교 정책에서 공동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오는 1992년으로 예정된 유럽시장 통합을 위한 중요한 조치들이 독일 연방이 실현된 뒤 곧바로 구체성 있게 추진되어야 한다. 이때 무엇보다도 동유럽이 유럽 공동체로 통합될 수 있도록 하는 특별 계획이 있어야 한다. 셋째,현재의 새로운 유럽 안보 체제에 관한 논의는 유럽의 완전한 통합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넷째는 독일이 연방제적 통합으로부터 완전한 통일 독일로 옮겨질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민족 자결 원칙에서 나온 당연한 결과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8. 결언

서독의 공보상 한스 크라인은 "통일이라는 정거장으로 향하는 열차의 레일은 깔렸다. 단지 출발 시간만이 없을 뿐이다"20)라고 말할 만큼 독일인의 통일 의지는 그 어느 때보다 고양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동서독 어느 정치가도 역사의 마술사가 될 수 없으며 오히려 그 제자로서 지금 밀어닥친 정치적 홍수를 지탱할 수 있는 운하를 파는 일이다. 즉 독일의 통일 문제는 유럽의 새로운 질서 형성과 깊은 함수 관계에 놓여 있다· 1992년까지 서구 12개국이 경제적 통 합을 이룩하여 서유럽인이 거대한 유럽 합중국을 형성하게 될 때 독일 통일은 이 틀 안에서 자연스럽게 재론될 것이다. 예컨대 대처 영국 수상은 독일 통일을 소련을 포함한 동유럽 민주화 과정의 마지막 단계로 보고 있으며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 통합은 독일 통일보다 우선되어야 하며 동독은 유럽 공동체 내에서 특수한 지위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21) 통일된 유럽은 단일 시장이 되는 것뿐만 아니라 상호 교류가 가능하고 동일한 법과 규칙을 지키는 회원국들로 이루어진 사회이다, 그러므로 동구권의 유럽 공동체에의 가입 문제, 동구와 서구의 통합 문제 등 새로운 발전에 따른 제반 문제가 논의될 것이 예측 된다.

동구에서도 현재 개혁 추진의 방향과 내용을 놓고 각국 간의 차이가 적지 않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동구 전체가 개혁에 대해 하나의 합의를 이룩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소련도 동유럽의 개혁을 환영하고 있고 소련 자체의 안보상의 문제가 없는 한 어떤 정책을 표방하더라도 용인하겠다는 민족자결주의 원칙을 거듭 표명하고 있다. 미국도현재의 세계 질서를 위해서는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이 성공하도록 지원하겠다고 했다. 냉전 체제가 미·소 간의 데탕트 정책에 의해서 서서히 붕괴되고 있다, 따라서 동구 내부의 분열이 극복되면 동구권의 대서방 접근온 보다 가속화될 전망이다. 어쩌면 유럽은 고르바초프가 제안한 하나의 '공동의 집’이라는 새로운 질서가 생겨 나고 독일 민족의 재통일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냉철한 국제 전략에 바탕한 전망일 뿐 대중의 힘에 의해 굴러가기 시작한 동구 변화에는 여러 가지 돌발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동독의 움직임을 가속화 할 사건으로 실망과 격분을 참지 못한 동독민들이 현안 문제 해결의 유일한 것으로 통일을 들고 나올지도 모르며 금년 양독 선거에서 통일을 표방한 선거를 통해 다수당이 될 공산도 크다. 그리고 대중 시위의 과격화, 특히 소련 주둔지에 대한 대중 시위의 접근이 소련군의 발포 혹은 진압 출동을 야기할 위험을 내포 하고 있다. 또한 소련과 동구에서 시행해 온 개혁과 개방 그리고 민주화 운동이 엄청난 난관과 위험을 맞고 실패로 돌아갈 경우 종족 분규와 민족주의 운동만 가열시켰을 뿐 어떠한 긍정적인 변화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 은 성급한 통일을 모색하려거나,쓸데없는 이데올로기 논쟁만을 일삼는다면 역 사는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굴러 갈는지 모른다, 일찍이 베리 (J.b. Burry) 가 "역사의 기능이란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을 변형시키는 것에 불과하다”고 한 말의 의미를 음미할 필요가 있다.

동서 양진영이 서독의 작은 수도 본을 기점으로 출발하려는 통일 열차의 차장에게 출발 시간과 방향을 언제 어떻게 알려 줄 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가 역사라고 부르는 과정 속에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1) 서독은 이 '계약 공동 사회'가 경제,수송, 환경 보호, 과학, 보건 그리고 문화 분야에서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2) Die Zeit, Nr.50, 8. Dec. 1989, p.6.

3) 동아일보5 1989.12.4.

4) Der Spiegel, Nr.51, 18. Dec. 1989, p.17.

5) Die Zeit, Nr.51, 15. Dec. 1989, p.7.

6) 동아일보, 1989.12.4.

7) Der Spiegel, Nr.50, 11. Dec. 1989, p.17.

8) Der Spiegel, Nr. 50’ 11. Dec. 1989’ p.18.

9) Der Spiegel, Nr.51, 18. Dec. 1989, p.18.

10) Der Spiegel, Nr.52, 25. Dec. 1989,p.18ㅡ19.

11) Der Spiegel, Nr.50, 11. Dec. 1989,p.17.

12) Der Spiegel, Nr.50, 11. Dec. 1989 , p.19.

13) 조선일보,1989,11.15 참조,

14) Der Spiegel, Nr.50, 11. Dec. 1989, p.17.

15) 조선일보,. 1989.11.12 참조.

16) Die Welt, 21. Dec. 1989,p.3.

17) Die Welt, 21. Dec. 1989,p.6.

18) Der Spiegel, Nr.52, 25. Dec. 1989,p.16-17.

19) 동아일보,1990.1.19, 키신저 칼럼,'통독 문제一유럽이 고민한다’ 참조.

20) Die Zeit, Nr.49, 1. Dec. 1989

21) Der Spiegel, Nr.51, 18. Dec. 1989, p.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