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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마음에서 平和는 誕生한다
1984년 3월호 (제 92호)
- 평화의 날 메시지, 1984년 1월 1일 -모든 국가의 정치 지도자들에게, 경제, 사회, 문화의 영역에서 일하...

주일의 말씀
1984년 3월호 (제 92호)
단 한나뿐인 인생-연중 제9주일 (3月 4日)-성서주해[제 1독서 ? 신명 11,18.26-28] 신명기는 유대인들의 To...

평화에 봉사하는 과학
1984년 3월호 (제 92호)
平和에 奉仕하는 科學 ~敎皇廳 科學院 總會에서 행한 演說, 1983年 11月 12일1. 여러 추기경들과 형제 주...

노바씨 아누스
1984년 3월호 (제 92호)
ㅡ 敎父들의 思想(24) ㅡ히뿔리뚜스에 의해 제창되고 강조되었던 말씀의 신학은 노바씨아누스에게 계승 전...

신학대학의 학생지도와 훈련체제
1984년 3월호 (제 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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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 아우구스띠누스의 牧者論
1984년 3월호 (제 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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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年 世界 主敎 시노드 回顧
1984년 3월호 (제 92호)
주교 시노드의 제 6 차 총회가 얼마 전에 그 막을 내렸다. 주교들은 교황과 또 서로서로와 友情의 賀禮를 ...

韓國敎會와 敎皇廳
1984년 3월호 (제 92호)
1. 머리말모든 사람이 구원되기 위해서는 그들이 그리스도의 福音을 듣고 믿을 수 있어야 하고 또 그러기 ...

현대의 교황들
1984년 3월호 (제 92호)
교황이 죽으면 또 새 교황이 나온다. 대대로 이어오는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로서 구원의 진리를 선포해 온 ...

敎皇廳 機構와 組織
1984년 3월호 (제 92호)
Ⅰ. ? 皇가톨릭 ?會 行政 및 司法의 中央機構 그리고 모든 교황청 所屬機關 및 委員會 등은 교황청의 중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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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헌 1984년 3월호 (제 92호)

새로운 마음에서 平和는 誕生한다

요한 바오로 2세

- 평화의 날 메시지, 1984년 1월 1일 -
모든 국가의 정치 지도자들에게,
경제, 사회, 문화의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형제애와 연대의 세계를 희망하는 젊은이들에게, 평화를 염원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1984년의 여명에서, 세계 도처에 무수한 문제와 불안이 가득하고 그러나 동시에 밝은 희망과 풍요로운 전망이 드러나고 있는 이 순간, 본인은 여러분에게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제17차 세계 평화의 날에 즈음하여, 충심에서 우러나오는 본인의 호소는 분열된 세계에서 형제애를 갈구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을 거듭 반향 하는 것입니다. 본인이 여러분에게 전하려는 이 메시지는 단순하면서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물음입니다. 이는 또한 세계 평화의 건설에 있어서, 자신의 책무를 타인에게 전가하지 말고 각자 자기의 본분을 다하자는 초대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진지한 숙고와 행동을 위하여 본인이 제안하는 주제는 이러합니다. "새로운 마음에서, 평화는 탄생한다.”

역설적인 상황
1. 오늘날, 누구나 어둠과 위협에 부딪치고 있지만, 그러나 동시에 빛과 희망을 망각하지는 않습니다.
참으로 평화는 미약합니다. 그리고 불의가 가득 차있습니다. 몇몇 국가에서는 무자비한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비탄과 파괴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감에도 불구하고, 해결을 향한 어떤 분명한 진전도 없이 전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온갖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위기에 분노와 우려가 커가고 있지만, 폭력과 광포한 테러 행위가 여러 나라를 휩쓸고 있으며, 그 대가를 치르는 사람들은 너무도 자주 죄 없는 자들입니다. 인권 선언들이 거듭 발표되고 항소 법원들이 설치되어 있는 이 20세기에,파당의 이유로 인하여 수많은 지역에서, 인간의 권리는 유린되고, 자유가 우롱을 당하고, 사람들이 부당하게 투옥되고, 즉결 처형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를 잘 모르고 있으며 설혹 안다고 하여도,이러한 악습을 종식시킬 도리가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수많은 국가들이 기아와 질병과 저개발을 극복하려는 고통스러운 투쟁에 허덕이고 있는 반면에, 부유한 국가들은 자기네 위치를 강화시키면서 무분별한 군비 경쟁으로 보다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자원들을 계속 낭비해버리고 있습니다. 재래식 병기, 화학 무기, 세균 병기, 그리고 특히 핵무기의 제조는 국가의 미래 특히 유럽 제국의 장래를 무겁게 짓누르는 억압적인 위협을 야기시키고 있으며 그 국민들의 정당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새롭고도 중대한 불안이 여론을 채우고 있으며, 본인은 그러한 불안을 이해하는 바입니다,
현대 세계는 마치 긴장의 그물 속에 갇힌 듯합니다. 소위 東西 간의 긴장은 거기에 직접 연루된 나라들 사이의 관계만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여타 지역의 수많은 곳에서 또 다른 어려운 상황들에 영향을 미치고 이를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여, 특히 전대미문의 대량 파괴 수단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는 이렇게 증대되고 있는 긴장과 거대한 대결로 드러나는 무서운 위험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위험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하더라도, 경제사회 문화의 발전이라는 최우선의 목적에 보다 많은 노력의 경주를 가능하게 하는 협약을 위해, 군비 축소와 단계적인 縮戰을 위해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여 긴장 완화의 방도를 찾아내고 이러한 현상의 진행을 중지시키는 데 있어서, 가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주역들은 커다란 곤경을 겪고 있습니다.
이념을 배경으로 한 동서 간의 긴장이 특히 북반구에 있는 수많은 나라들의 관심을 온통 빼앗아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지만, 그것은 대다수 인류의 생활 그 자체에 영향을 미치는 보다 근본적인 또 다른 긴장 즉 南北간의 긴장을 가려버릴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는 개발을 추진하여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왔던 나라들과 저개발의 상황에 묶여있는 나라들 사이에서 증대되고 있는 대립이 문제가 됩니다. 남북 문제는, 특히 온갖 불의에 의하여 조장될 때에,적대와 비애 그리고 폭동과 공포의 거대한 원천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토록 막대한 문제들을 앞에 두고, 본인은 "마음”의 쇄신을 주제로 제안하는 것 입니다. 이 제안은 너무도 단순하여 걸맞지 않은 것으로 생각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를 잘 반성해 본다면,여기서 그 개요만을 말씀 드려도 바로 문제의 핵심에 들어가, 평화에 위협이 되고 있는 그 전제들을 문제 삼을 수 있습니다. 현존하는 긴장을 해결할 수 없는 인류의 무기력은 그 장애가 희망과 마찬가지로 체제 자 체보다도 더 심오한 무엇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쟁은 인간 정신에서 일어난다
2. 전쟁이 인간의 마음 안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는 것은 본인의 깊은 확신이며, 성서와 그리스도교의 중심 사상입니다. 그리고 이는 선의의 모든 남녀들의 통찰이기를 바랍니다. 칼이 아니라 오늘날엔 미사일로 살인을 하는 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마음”은, 성서의 뜻으로, 인간의 가장 깊은 곳, 즉 선과 타인과 하느님께 대한 자신의 관계 안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마음이란 우선 감정이 아니라 양심과 확신의 문제입니다. 마음은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 열정으로 그가 매여있는 사상체계의 문제입니다. 인간은 그 마음 안에서 선의 절대 가치를 깨닫고 정의와 형제애와 평 화를 인식합니다.
마음의 무질서는 분명코 양심의 혼란입니다. 물질적인 만족이나 권력의 야욕을 채우기 위하여, 무엇을 선택하려 하는가에 따라 양심이 올바르다거나 나쁘다고 하는 것입니다. 권력 행사의 복합적인 성격까지도 갈등의 예비와 발단 또는 연장에 있어서 언제나 개인적인 양심의 책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배제하지는 못합니다.
어떤 집단에 의해 그 책임이 분담된다는 사실도 이러한 원리를 바꾸어 놓지는 못 합니다.
그러나 흔히 이러한 양심은 그 자체가 인간 정신의 활동인 사회 정치 체제와 이념 체제에 의하여 유혹을 받기도 합니다. 거기에 굴복된다고는 말하지 맙시다. 사람들이 배타적이고 거의 이론적인 인류의 전세계적 비전을 제시하는 체제에 스스로 빠져들고, 투쟁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서 발전의 기희를 박탈하여 예속시킬 때, 그들 스스로 긴장을 고조시키는 戰爭 思考 안에 폐쇄되어 대화가 거의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들 체제에 대한 무조건적인 집착은 때로 권력 숭배, 힘과 부에 대한 숭배가 되고, 그 지도자 자신들도 체제에 자유를 빼앗겨 일종의 노예가 되어버립니다.
그 무엇보다도 소위 이념 체제, 즉 인간의 정신을 교란시켜 전쟁으로 몰아넣는 맹목의 광신 또한 여러 종류가 많습니다. 인종적 우월감, 이로 인한 타인의 증오, 다른 사람들의 토지와 자원에 대한 시기, 질투, 또는 일반적으로 말해서 권력, 야욕, 오만, 자기들이 경멸하는 다른 민족들에 대한 지배를 확장시키려는 욕망 등으로 사람들은 자기 도취에 빠질 수 있습니다.
분명히, 광신은 개인과 민족 현실의 좌절에서 태동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생존에 대한 보장을 거부하거나 또는 사회 여건이 민주제의 채택이나 부의 분배에 지지부진할 때 사람들은 좌절하고 거기서 광신이 생겨납니다. 불의는 이미 착취자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커다란 죄악입니다. 그러나 광신은 때로 고의로 조장되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양측에서 강력한 적개심을 가지지 않을 때, 또는 그들 반대편의 주장이 자신들의 중대한 이익을 위협하고 있다고 확신하지 못할 때, 전쟁이 발발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이는 호전적인 생각을 지닌 자들이 이념 조작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설명해 줍니다. 일단 교전이 시작되면 적개심은 필연적으로 증 가하게 됩니다. 양편에서 겪는 고통과 잔혹성으로 말미암아 적개심이 조장되기 때 문입니다. 증오의 심리가 그때 생겨나는 것입니다.
결국, 폭력과 전쟁에 의존하는 일은 인간의 죄악으로부터, 그 맹목적인 정신으로부터, 마음의 무질서로부터 나오고 있으며, 이는 긴장과 갈등을 고조시키고 만연시킬 불의의 원인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전쟁은 죄로 가득 찬 인간의 마음에서 일어납니다. 성서에 나오는 오랜 이야기로, 자기 형제 아벨을 만날 때마다 카인의 마음은 언제나 질투와 폭력으로 가득 차있었습니다. 무엇이 선과 악이냐에 대하여 그리고 하느님께서 그 원천 시시요 보증인이신 생명의 가치에 관하여 사람들의 의견이 일치할 수 없을 때, 그 것은 보다 깊은 단절이 아니겠습니까? 이는 올바른 정신과 선한 마음으로 진리의 바탕 위에서 자신의 동료 인간들과 평화를 이룩하지 못할 때 방황하게 되는 인간의 마음을 설명해 주지 않습니까?
인간의 마음에 진정한 변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평화의 재건 그 자체도 오래가지 못하거나 환상에 지 나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나라에 정복을 당했던 나라들에서나 인간 권리가 억압되어 왔던 곳에서도, 오랫동안 사람들이 그토록 갈구해 왔던 "해방”은 실망으로 드러나고, 거기서 지도자들과 국민들은 그들의 적을 굴복시킬 때까지는 편협한 정신과 아집을 지녀 무자비하게 된다는 사실을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바로 성서에서도 예언자들은 참다운 마음의 변화가 없는, 진정한 "회개”가 없는 그러한 덧없는 해방을 비난하였습니다.

새로운 마음에서, 평화는 탄생한다
3. 인간의 "마음”에 의해서 이루어진 현존 체제가평화를 보장할 수 없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면, 체제와 제도와 수단을 쇄신하기 위해서는 바로 인간의 마음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마음의 근본 변혁을 위한 언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회개”입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회개는 자유로운 정신을 지닌 공명정대와 밝은 전망의 재발견, 인간의 권리를 존중하는 正義 의식 그리고 부유한 자들과 가난한 자들 사이에 전세계적인 결속을 지닌 평등 의식의 재발견, 상호 신뢰와 형제애를 재발견하는 문제입니다.
개인과 민족은 과거의 편견과 불모의 자세를 의식하고 철학적 사회적 체제의 파당적 성격을 깨닫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먼저 참다운 ‘정신의 자유’를 얻어야 합니다. 불분명한 전제들에서 출발하여 폐쇄된 물질주의적 권력 체제로 인간과 역사를 추락시켜 버린 그 철학적 사회적 체제는 다만 군사력과 경제력에만 의존하여 인간들을 서로 적의 범주에 가두어 놓고 있습니다. 그 체제는 일방적인 해결책만을 제시하여 국민 생활의 복합적인 현실을 무시하고 인간의 자유로운 존립을 훼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화를 얼어붙게 하고, 불신을 조장하며, 위협과 위험 만을 증대시켜,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진정한 안전율 보장해 주지 못하고, 인간을 참으로 행복하고 평화롭고 자유롭게 해주지 못하여, 분명히 막다른 골목에 이른 이러한 체제들에 대한 재검토가 요청되고 있습니다. 인간 정신과 그 마음 깊숙한 곳에서 이루어져야 할 이러한 변혁은 분명코 커다란 용기, 겸허하고도 깨끗한 마음의 용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변혁은 먼저 개인의 양심에 가 닿고 집단 정신에 영향을 미쳐야 합니다. 이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희망이겠습니까? 현대인들이 스스로 깨닫는 무기력과 위험은 이러한 진리 회복을 지체시키지 못하도록 우리를 재촉하고 있습니다. 진리에로 되돌아가는 길만이 오직 인간을 자유롭게 하고 보다 나은 체제를 만들어줍니다. 진리 회복은 "새로운 마음”을 창조하는 첫째 조건입니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긍정적인 요소들도 언급하여야 하겠습니다. 사회의 동반자들과 민족들 간의 정의로써 이룩되는 평화, 예언자 이사야가 말한 대로(이사32,17 참조) ‘정의가 가져온 평화’(Opus Justitiae Pax)가 진정한 평화입니다. 사회가 인간 의 근본 권리들을 존중할 때에, 그 사회는 정의롭고 인간다운 사회입니다. 반면에 양도할 수 없는 인간의 권리들이 침해 당하는 곳에서는 전쟁의 기운이 일어나 강력 하게 커나갑니다. 독재와 전체주의가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불만을 억누르고 있을 때라도, 정의로운 인간은 그 무엇으로도 이러한 인권의 침해를 정당화시킬 수 없다는 확신에 젖어 있습니다. 그는 고통 받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중재에 나설 용기를 가지며, 불의에 직면해서도 굴종이나 타협을 거부합니다. 이와 마찬 가지로, 역설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평화를 열렬히 염원하는 사람은 단순한 평온의
보존이거나 비겁에서 나오는 어떠한 종류의 평화주의도 배척합니다. 사실, 자기들의 지배를 강요하려는 사람들은 언제나 용기 있는 남녀들과 지성인들의 저항에 부딪치게 됩니다. 그 용기 있는 사람들은 정의를 증진시키기 위하여 자유를 수호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평등은 또한 가난한 나라들 특히 궁핍과 기아 속에서 허덕이는 나라들에 대한 연대 의식과 정의의 관계를 강화시키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교황 바오로 6세의 저 말씀은 이제 수많은 사람들의 신념이 되었습니다. "발전은 평화의 새로운 이름입니다.” 부유한 국가들은 그들의 집단적인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교역과 상호 원조에 관한 새로운 언어로 사고하여 스스로를 전세계적 지평에로 개방하여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새로운 마음은 전쟁 심리와 그 공포를 몰아내줄 것입니다. 새로운 마음은 평화가 무력 균형에서 이루어진다는 주장을 평화는 오직 ‘상호 신뢰’ (지상의 평화, 113항 참조)에서만 건설될 수 있다는 원리로 바꾸어 놓습니다. 확실히 허위와 날조를 간파해 내고 현명하게 더욱 앞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새로운 마음은 명료한 시선으로 경종을 울려줍니다. 그러나 새로운 마음은, 지난 해 평화의 날에 보낸 본인의 메시지의 주제였던, 대화를 시작하여 이를 끊임없이 계속해 나갑니다.
한 마디로, 새로운 마음은 사랑으로써 스스로 고취되는 마음입니다. 일찍이 교황 비오 11세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평화의 정신이 생각과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는 곳에서는 개인과 민족들 간의 평화는 있을 수 없습니다. 정의의 권리들이 인식되고 존중되기 위하여 평화의 정신이 사고방식에 젖어 들어야 합니다. 정의가 사랑으로 이어지고, 사랑이 정의 위에 충만하기 위해서는 평화의 정신으로 마음을 채워야 합니다. 평화가 정의의 과업이요 그 결심임에 틀림없지만, 평화는 정의보다는 오히려 사랑에 속하는 것입니다. (1930.12.24 연설. AAS 1930, 535면). 그것은 폭력과 허위와 증오를 배척하는 것이며, 생각과 감정과 전체 행동에 있어서 형제가 되는 일입니다. 형제는 다른 사람의 존엄성과 요구를 존중하고, 평화의 세계를 창조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는 길을 찾는 사람입니다.

정치 지도자들과 여론을 형성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호소
4. 새로운 마음을 얻고 새로운 평화 정신을 증진시켜야 할 필요가 있듯이, 모든 남녀들은 그 사회적 지위가 어떠하든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도시에서, 자신들이 살아 가는 영역에서 참 평화를 건설하는 일에 있어서 진정으로 그들의 책임을 분담할 수 있으며 또 그 책임을 나누어져야만 합니다. 자신들의 관심과 대화와 행동 안에서, 하나의 인류 가족을 이루고 있는 형제 자매들을 걱정하여야 합니다. 그들이 비록 세계의 저 편 끝에 살고 있다 하여도, 그 형제 자매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나 그 책임의 정도는 분명히 다양합니다. 국가 원수들의 책임,정치 지도자들의 책임은 무엇보다도 먼저 여러 부류의 국민들 사이에서 그리고 여러 민족들간에 평화로운 관계를 맺고 이를 발전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전쟁 그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며 평화적으로 분쟁을 해결해야 한다는 도덕 원리만이 인간에게 합당한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그 어느 누구보다도 더욱 확신하여야 합니다. 물론 인류 역사 안에 있는 거대한 폭력의 실재를 고려하여야 합니다. 그것은 정의를 위한 근본 관심사를 수행하는 현실 감각입니다. 정의는 이러한 역사 안에서 정당 방위의 원리를 유지하도록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무기의 공포 위기에서 실제로 전쟁을 생각할 수 없도록 만드는 군비 축소와 협력의 계획을 면밀히 세우도록 하여야 합니다. 평화는 성취되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더욱 더 정치 지도자들의 양심은 광신이 정의를 짓밟는 위험스런 모험에 스스로 휩쓸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정치 지도자들은 그러한 모험으로 자기 국민들의 목숨을 헛되이 희생시켜서는 아니 되며 다른 사람들 가운데 긴장을 야기시켜서도 안됩니다. 또한 새로운 영토에 대한 지배력을 확장시키기 위하여 어느 지역의 불안한 평화를 구실로 이용해서는 아니 됩니다. 정치 지도자들은 정치적 기회주의를 배제하고 그들의 마음과 양심에서 이 모든 것을 숙고하여야 하며, 그들은 자기 국민들과 하느님 앞에서 이를 설명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거듭 말씀 드리거니와 평화는 모든 사람들의 책무입니다. 국제 기구들 또한 파당적 견해를 극복하고 전세계적인 해결을 성취하기 위하여 막중한 역할을 수행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본인은 특별히 대중매체를 통하여 여론형성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젊은이들과 성인들의 교육에 종사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호소합니다. 이는 평화 정신의 형성을 맡고 있는 자들을 향하는 호소입니다. 사회 안에서, 특별히 젊은이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예견하는 위협적인 미래에 직면하여, 젊은이들은 분명히 그 누구보다도 더욱 평화를 열망하고 있으며,수많은 젊은이들은 평화를 위하여 그들의 정열을 기꺼이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평화의 봉사에 있어서 밝은 전망을 지니고 창의력을 발휘하도록 합시다. 그리하여 그들로 하여금 장기적인 해결책의 모든 국면을 숙고하는 용기를 보이도록 합시다. 간단히 말씀 드리자면, 모든 사람들 모든 남녀들은 그들 나름의 인식을 통하여 그 독특한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평화에 기여해야 합니다. 따라서 생명의 신비에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 여성들은 생명을 보전해야 하는 그들의 책임 안에서 그리고 진정한 사랑은 모든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 힘뿐이라는 그들의 확신 안에서, 평화의 정신을 증진시키는 수많은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호소
5. 예수의 제자들로서 이 시대의 긴장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마태 5,9참조)이 되지 못할 때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하여야 합니다.
가톨릭 교회는 지금 구원의 성년을 경축하고 있습니다. 극진한 사랑으로써 "나는 너희에게 나의 평화를 주노라”(요한 14,27)고 말씀하신 구세주께, 전교회는 자기자신을 바치도록 초대받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모든 사람들은 자기 형제 자매들과 더불어 구원의 선포와 활기찬 희망에 동참하여야 합니다.
화해와 참회에 관한 최근의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Synod)는 그리스도의 첫 말씀을 상기시켰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세계주교대의원회의 교부들의 메시지는 우리가 참으로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이 되기 위하여,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바꾸십시오. 용서를 청하십시오. 그리고 아버지와 화해하십시오.’ 우리 사회를 위한 하느님의 계획은 우리가 정의, 진리, 자유와 사랑 안에서 한 가족으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한 가족은 오로지 우리가 아버지께로 되돌아가 하느님 당신과 화해하라는 부르심을 듣게 되는 그 심오한 평화 안에서만 일치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부르심에 응답하여, 하느님의 계획에 협력한다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회심시키실 수 있도록 그분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들의 힘만을 그리고 너무 자주 좌절하고 마는 우리 의지만을 생각하지 맙시다. 우리의 삶을 변혁시킵시다. 왜냐하면 "이것은 모두 다 하느님께로부터 왔으며,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내세워 우리를 당신과 화해하게 해주셨고 또 사람들을 당신과 화해시키는 임무를 우리에게 주셨기”(2고린 5,18) 때문입니다.
기도의 힘을 재발견합시다. 기도는 우리를 살게 하여주시는 그분, 우리가 간청하고 만나는 그분과 화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의 체험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은총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영혼과 함께 하시어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의 말씀에 우리 삶을 일치시키게 하십니다. 기도하는 것은 역사를 다스리시는 하느님의 활동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역사의 주재자이신 하느님께서는 사람들 이 당신의 협력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사도 바울로께서는 우리들에게 그리스도께 관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은 서로 원수가 되어 갈리게 했던 담을 헐어버리시고 우리를 화해시켜 하나로 만드셨습니다”(에폐 2,14). 우리는 위대한 자비의 힘이 "화해의 성사” 안에서 우리를 얼마나 변혁시키고 있는가를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은총이 우리를 압도하고 있습니다. 그러할 때, 우리는 충실 성을 다하여, 비록 우리가 똑같은 신앙에 참여하고 있다 하여도 서로가 서로를 거슬러 대결하는 분열을 체념으로 방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의 단일한 몸으로 부름 받았으므로 인류의 일치를 파괴하는 분쟁이 끝없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고 이를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용서를 찬양하면서, 서로 끝 없이 싸울 수 있겠습니까? 살아 계시는 동일한 하느님께 간청하면서도, 우리가 적으로 머물러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이 우리의 법이라 하면, 상처받은 세계가 평화를 건설하는 자들의 전일에 우리의 동참을 고대할 때 우리는 침묵 만을 지키며 무력하게 주저앉아 있을 것입니까?
겸허하게 우리의 나약함을 깨닫고, 우리 "성찬의 식탁”에 모입시다. 거기서 무수한 형제들에게 당신 생명을 내어주시는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시고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어 주십니다(에제 36, 26 참조). 우리는 가난과 혼란의 깊은 구렁 속에서도 그분을 통하여 감사 드립시다. 그분은 당신의 현존과 은총으로써 우리를 일치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서서 하느님과 멀리 떨어져 있던 여러분에게나 가까이 있던 사람들에게나 다 같이 평화의 기쁜 소식을 전해주셨습니다”(에페 2,17). 그분을 맞아들이는 일이 우리에게 주어졌다면, 우리는 일어나 모든 평화의 일터에서 형제애의 노력을 통해 그분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결   론
평화는 수많은 다양한 형태를 지니고 있습니다. 민족들 간의 평화, 사회내의 평 화, 국민들 간의 평화,신앙 공동체들 간의 평화, 기업, 이웃, 마을 안의 평화, 그리고 특히 가정의 평화가 있습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물론 다른 그리스도인 형제들과 선의의 모든 남녀들에게 말씀 드리면서, 본인은 평화를 가로막는 몇 가지 장애를 개탄하였습니다. 그 암울한 장애들은 심각한 위협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장애들은 인간의 정신과 의지, 인간의 "마음” 에 좌우되는 것이므로, 하느님의 도우심에 힘입어 인간은 그 장애들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운명론과 실의에 대한 굴복을 거부하여야 합니다. 긍정적인 징후가 이미 어둠을 뚫고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 막대한 문제들, 고용, 지구 및 우주 자원의 이용, 자원이 빈곤한 국가들의 발전, 안전 보장 등 대부분의 문제 해결에는 여러 국가와 민족들을 이어주는 연대의식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인류는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통제되는 군비 축소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가장 절실한 핵심 문제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인류의 지평에서 전쟁을 제거하기 위하여 모든 수단을 동원하자는 수많은 요구가 있습니다. 또한 대화, 협력, 화해를 위한 수많은 호소와 더불어 신선한 주창들이 무수하게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교황은 이를 격려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 항상 밝은 전망 안에서 우리 기꺼이 일치합시다! 보다 참다운 평화가 이루어지고, 참 평화가 인간의 마음 깊이 뿌리박게 합시다! 평화를 고대하며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의 울부짖음에 귀를 기울입시다.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새로운 마음과 형제애에서 우러나오는 모든 역량을 전세계의 평화 건설에 바칩시다. ? 
1983년 12월 8일 바티칸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原文: Message of His Holiness Pope John Paul Ⅱ for the Celebration of the World Day of Peace, 1. Jan. 1984, 姜大仁 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