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救援의 恩寵 - REDEMPTIONIS DONUM, 1984년 3월 25일
1984년 7월호 (제 94호)
救援의 神秘와 奉獻에 관하여 男女 修道者들에게 보내는 ?皇 요한 바오로 2세 聖下의 使徒的 勸告 예수 그...

주일의 말씀
1984년 7월호 (제 94호)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ㅡ 연중 제13주일(7月 1日) -성서주해 [제 1독서 -  2열왕 4,8-11.14-16] 오늘 ...

聖 아우구스띠누스의 牧者論
1984년 7월호 (제 94호)
18. "모든 산과 모든 언덕, 온 세상에 흩어져 있다”(에제 34,5). ‘‘온 세상에 흩어져 있다”는 이 말씀...

떼르뚤리아누스 (II)
1984년 7월호 (제 94호)
2. 論爭的作品 (1)「이단자 규정론」「이단자 규정론」 (De praescriptione haereh'corum)은 제목이 암시...

勞動法은 改正되어야 한다
1984년 7월호 (제 94호)
I. 勞動法 改正의 必要性 그간 한국사회가 겪은 급격한 産業化 過程을 통하여 勞動者는 量的인 면에서 그 ...

敎會法典 - 敎會法典 ?譯委員會 試譯
1984년 7월호 (제 94호)
제 2 편 교회의 교계 제도 제 1 부 교회의 최상 권위제 ι 절 교황(교종)과 주교(감목)단 제330조 주께서 ...

韓國 統ㅡ과 가톨릭의 立場
1984년 7월호 (제 94호)
1. 머리말  本人에게 주어진 주제는 ‘韓國 統ㅡ과 韓國 가톨릭 ?會의 立場’이다. 그런데 본인은 교...

가톨릭 敎會와 社會正義
1984년 7월호 (제 94호)
ι. 敎會와 社會의 關係에 대한 神學的 考察 "여러분은 세상의 소금과 빛이다"(마태 5,13-16)라는 복음의 ...

70年代 가톨릭 社會正義具現 活動과 評價
1984년 7월호 (제 94호)
Ⅰ 오늘 이같은 모임을 가질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70년대의 苛烈한 사회 정의와 민주주의, 그리고 民生과...

平和, 正義, 統一과 敎會
1984년 7월호 (제 94호)
* 이 特輯은 한국천주교회 200주년 기념행사위원회와 기념사업위원희 北韓宣敎部주최 및 한국 가톨릭 社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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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단 1984년 7월호 (제 94호)

聖 아우구스띠누스의 牧者論

아우구스띠누스

18. "모든 산과 모든 언덕, 온 세상에 흩어져 있다”(에제 34,5).

‘‘온 세상에 흩어져 있다”는 이 말씀은 무엇을 뜻하는가? 온갖 지상적 것을 추구하며 지상적 영광을 좋아하며 그런 것을 즐긴다는 뜻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들의 생명이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지기 위해 죽기를 원치 않습니다. "온 세상에” 세상 것을 즐기며 흩어져 있으니, 사실상 온 세상에 방황하는 양들이 흩어져 있읍니다. 모든 이단자들이 온 세상에 흩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온 세상에는 이단자들이 산재해 있읍니다. 어떤 이단자들은 여기에 있고 어떤 이단자들은 저기에 있으니 이단자가 없는 곳은 아무데도 없읍니다. 이들은 서로 알지 못하니, 예컨대 아프리카에 있는 열교가 다르고, 동방에 있는 이단이 다르고, 이집트에 있는 열교가 다르고,메소포타미아에 있는 이단이 각각 다릅니다. 이단자들은 사방에 흩어져 있읍니다. 교만이란 하나의 어미가 이 모든 서로 다른 이단자들을 낳았으니, 이는 마치 우리 자모이신 가톨릭 교회가 온 세상에 산재해 있는 모든 자녀들을 낳은 것과 같읍니다. 그러므로 교만이 분열을 낳고 사랑이 일치를 낳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읍니다.5) 그런데 자모이신 가톨릭 교회와 이 교회 안에서는 목자 친히 어디서나 방황하는 자를 찾으시고 약한 자들에게 힘을 주시며 병든 자를 낫게 하시고 다친 자를 싸매주시고 계십니다. 이런 점에서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열교자들과 다릅니다. 교회는 모두 알고 있으니, 왜냐하면 모든 이와 함께 어디서나 산재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아프리카에는 도나투스파는 있으나,에우노미아파는 없읍니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는 도나투스파와 함께 여기에 있읍니다, 동방에는 에우노미아 이단자들은 있으나, 도나투스파는 없읍니다. 그러나 에우노미아 이단자들과 함께 가톨릭 교회는 여기에도 있읍니다. 포도나무와도 같이 가톨릭 교회는 어디서나 자라나고 있으며 산재해 있읍니다. 그러나 저 이단자들은 무익한 포도나무 가지들과 같이 존재하고 있으니, 이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을 제거하기 위하여, 즉 자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포도나무를 깨끗이 하기 위해 낫으로 쳐버리는 것입니다.6) 그러므로 잘려진 저 가지들은 잘려진 그곳에 남아 있게 됩니다. 포도나무는 모든 일에 있어 자라나며 자기 안에 남아 있는 가지들과 자기에게서 잘려진 자기 옆에 있는 가지들을 알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는 것들을 다시 불러들이십니다. 사도께서는 잘려져 있는 가지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다시 저 가지들을 접목하실 수 있읍니다”(로마 11,23). 양무리를 떠나 방황하는 양들이든 포도나무에서 잘려진 가지들이든 하느님께서는 저 양들을 다시 불러들이시고 저 가지들을 다시 접목하실 수 있으니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최고 목자이시며 참된 농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 양떼는 온 세상에 흘어져 있는데 찾아다니는 목자도 없고 다시 불러들이는 목자도 없구나! 즉 나쁜 목자들 중에는 내 양을 찾아다니는 사람은 하나도 없구나1”(에제 34,6 참조).

19. "그러니 목자들아, 이 야훼의 말을 들으라. 내가 맹세한다”(에제 34,7).

"Vivo Ego!" 어떻게 시작하는지 살펴보시오. 그것은 마치 주님의 맹세와도 같으며, 당신의 생명을 증거로 내세우시는 것과도 같습니다. "나는 살아 있노라” 하고 주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목자들은 죽었으나 양들은 안전합니다. 주께서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살아 있노라” 하고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어떤 목자들이 죽었다는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일이 아니라, 자기의 일만 찾는 목자들이 곧 죽은 목자들입니다. 그러면 자기의 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찾는 목자들이 있었으며 또 지금도 찾아볼 수 있겠읍니까? 분명히 그런 목자들도 있었고 또 지금도 있읍니다. 과거에도 없지 않았고 지금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제 당신께서 살아 계시다고 하시는 주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들어봅시다. 양을 치는 목자가 아니라, 자신의 일만 돌보는 나쁜 목자들로부터 양들을 빼앗아, 자기 자신의 일이 아니라, 양들을 돌보는 착한 목자들에게 주시겠다고 하시는지 들어봅시다. 주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나는 살아 있노라. 나의 양떼는 마구 잡혀갔고 나의 양떼는 목자가 없어 들 짐승들에게 찢겨졌느니라”(에제 34,8). 주께서는 앞에서도 목자들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시지 않고 다시금 목자들이 아니라 "목자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목자가 있다 할지라도 악한 마음으로 방황하고 멸망을 향해 줄달음치는 양들에게는 목자가 없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읍니다· 마치 빛이 비치고 있을지라도 소경에게는 빛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목자들은 내 양들을 찾아다니지 않았고, 양떼는 먹일 생각도 않고 제 배만 불리었느니라1 "(에제 34,8).

20. "이런 까닭에 목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들으라1 "(에제 34,9).

이 말씀은 어떤 목자들에게 들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겠읍니까? 주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나는 목자라고 하는 것들을 해고시키고 내 양떼를 그 손에서 찾아내리라"(에제 34,10). 하느님의 양들은 잘 듣고 배우도록 하십시오! 악한 목자들로부터 하느님께서는 당신 양들을 빼앗을 것이며, 당신 양들이 잡혀 먹히지 않도록 그들의 손에서 빼앗을 것입니다. 같은 예언자께서 다른 곳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 사람아,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보초로 세운다. 너는 나에게 경고하는 말을 받거든 그대로 일러 주어라. 내가 한 죄인에게는 사형이다’라고 유죄판결을 내렸는데, 네가 죄인에게 버릇을 고치라고 타일러주지 않았을 때 그 죄인은 자기 죄값으로 죽겠지만 그 사람이 죽은 책임을 나는 네게 지우리라. 그러나 네가 그 죄인에게 마음을 바로잡아 버릇을 고치라고 타일러주었는데도 그가 마음을 바로잡아 고치지 않았다면 그는 자기 죄값으로 죽겠지만 너는 죽지 아니하리라”(에제 33,7-9). 형제 여러분, 어떻습니까? 말할.책임을 가진 사람이 침묵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보십시오! 그런 사람은 의당 죽을 것입니다. 그 무책임함과 그의 죄로 인해 죽을 것입니다. 태만함이 그를 죽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살아 있노라!” 하시는 살아 계신 목자를 만나게 된 것이니 말입니다. 양들에게 올바른 것을 가르치고 견책할 책임를 가진 장상으로서 또 감시자로서,태만하여 가르치지도 않고 권면하지도 않을 때 그는 의당 죽을 것이며 의당 처단될 것입니다.‘'그러나 만일 악한에게 '너는죽게 될 것이다!’하며 칼의 위협을 알려 주었을 때 그가 그 위험한 칼을 피하기를 게을리하고 칼에 맞는 죽는다면 그는 그 죄값으로 목숨을 잃을 것이나 너는 네 영혼을 구할 것이다”(에제 33,2-6)라고 성서에 기록되어 있읍니다. 이 때문에 목자들인 우리는 침묵을 지켜서는 아니될 것이며, 양들인 여러분들은 우리가 묵묵할지라도 성서에서 목자의 말씀을 듣도록 해야 합니다.

20 그러므로 내가 위에서 제의한 대로, 주님께서 양들을 나쁜 목자들에게서 빼앗아 착한 목자들에게 주시는지 보기로 합시다· 나는 악한 목자들로부터 양들을 빼앗는 주님을 보고 있읍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보라, 나는 목자라는 것들을 해고시키고 내 양을 뜯어먹지 못하도록 그 손에서 내 양을 찾아내리라. 그들은 이제 내 양들을 치지 못하리라. 내가 거듭 말하지만 그들은 내 양을 치지 않고 자기 자신의 배만 불리고 내 양을 잡아먹는다. 그래서 그들이 내 양을 치지 못하도록 그들의 손에서 빼앗으리라’’(에제 34,10 참조)· 주님께서는 나쁜 목자들이 당신 양들을 잡아먹지 못하도록 어떻게 빼앗으십니까?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본받지 말라"(마태 23,3). 이는 마치 "그들이 나의 말을 전하면서 행실은 자기들의 욕망을 따라 행한다’’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만일 주님께서 “그들이 행하는 것을 안심하고 따르라. 나는 악하게 사는 저들은 벌할 것이나 너피들은 용서할 것이니, 너희는 너희의 장상들을 따랐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신다면 이는 양들을 치지 않고 자기 배만 불리는 저 악한 목자들에게 잡아먹힐 양들을 내어주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인도하는 소경만을 경고하실 뿐 아니라 뒤따르는 소경까지도 경고하십니다. 주께서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렁에 빠지리라고 하셨지(마태 15,14), 인도하는 소경은 구렁에 빠지겠지만 뒤따르는 소경은 구렁에 빠지지 않는다라고 하시지 않으셨읍니다. 그래서 당신 양들을 권면하면서 이렇게 말하십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행하여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르지 말라!’’(마태 23,3). "저 악한 목자들 이행하는 것을 본받지 않을 때 저들은 너희를 잡아먹지 못할 것이며, 저들이 말하는 것을 너희들이 실행할 때 내가 너희를 기르는 것이 되리라. 왜냐하면 저들은 나의 것을 말하되 실행하는 것은 자기들의 것이기 때문 이다.” "우리는 안심하고 우리 주교들을 따른다.” 이단자들은 지극히 명백한 진리에 의해 압도될 때 자주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양들이다· 그들이 우리를 위해 .변명해 줄 것이다.” 그는 분명히 여러분의 죽음에 대해 나쁜 변명을 해줄 것입니다. 악한 양의 죽음에 대해 악한 목자는 악한 변명을 해줄 것입니다. 양의 가죽을 지녔다고 해서 양이 살 것입니까? 목자가 질책을 받는 것은 그가 방황하는 양을 돌보지 않았고 늑대의 입으로 들어가 잡혀먹히게 했기 때문입니다. 특정한 가죽을 준다고 해서 그에게 무슨 유익이 되겠읍니까? 집주인의 관심거리는 양의 생명입니다. 그러나 악한 목자는 양가죽을 내놓습니다. 혹, 속고 있지 않은지 모르겠읍니다. 앞으로 판단하실 분은 위에서 보고 계십니다. 그분은 누구에게 말을 했고 행동을 했으며 생각들을 했는지 살피고 계십니다. 악한 목자는 죽은 양의 가죽을 내놓으며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나는 그에게 당신 말씀을 외쳤지만 그는 따르기를 싫어했읍니다. 양무리를 떠나 방황하지 않도록 힘썼읍니다. 그러나 그는 순종하지 않았읍니다.” 이렇게 말한다면 그는 확실히 사실을 말한다 할 것입니다. 그가 진실을 말하는지는 알고 있었읍니다. 악한 양에 대해서 훌륭한 변명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가 잃었고 방황하는 양을 등한시하였고 잃은 양을 찾지 않은 것을 바라보신다면 증거로 댈 양가죽을 찾아 얻었다 해서 무슨 이익이 있겠읍니까? 죽은 양가죽을 제시하지 못하도록 양을 다시 부르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길 잃고 방황하는 양을 찾지 않은 목자가 올바른 변명을 할 수 없다면, 길 잃고 방황하게 한 목자는 과연 어떤 변명을 할 수 있겠읍니까? 말을 바꾸어 하자면, 하느님의 양무리 중에서 방황하는 양을 찾지 않은 가톨릭 교회의 주교가 양에 대해 올바른 변명을 할 수 없다면, 다만 오류 중에 있는 양을 다시 부르지 않을 뿐 아니라 오류에 빠지도록 양을 오류 안으로 밀어넣는 열교인은 어떤 해명을 할 것입니까?

22. 그러면 주님께서 악한 목자들로부터 양들을 어떻게 다시 불러내시는지 살펴봅시다. 나는 벌써 위에서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본받지 말라!”(마태 23,3) 하신 주님의 말씀을 상기시킨 일이 있읍니다. 여러분이 양을 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양을 치십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자들은 그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젖과 털을 얻게 됩니다. 사도께서는 좋은 말을 하면서 악한 짓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도둑질을 하지 말라고 설교하면서 왜 자신은 도둑질을 합니까?”(로마 2,21).

‘'너는 도둑질을 하지 않기 위해 설교하는 사람의 말을 듣거라. 그러나 도둑질하는 사람의 행실은 본받지 말아라! 네가 만일 도둑질하는 사람의 행실을 본받는다면 그는 그의 행실로 너를 기르는 것이며 네게 양식이 아니라 독약을 내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만일 자기 자신에 대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것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듣게 되면 너는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거둘 수는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가시나무에서 어떻게 포도를 딸 수 있으며 엉겅퀴에서 어떻게 무화과를 딸 수 있겠느냐’ (마태 7,16) 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네 주님을 다음과 같이 말하며 무함하지도 말아야 한다.”"주님, 당신은 나보고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딸 수 없다고 하셨읍니다. 그리고 다른 데서는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다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본받지 말아라’(마태 23,3)고 하셨읍니다. 악을 행하는 자는 가시나무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가시덤불에서 말씀의 포도송이를 내가 얻기를 원하시는 것입니까?“ 이에 대해 주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가시덤불의 열매가 아니라 포도가지가 자라나면서 울타리에 얽혀 빽빽한 가시덤불 사이로 포도송이를 드리운 것이니 포도가지를 가시덤불의 뿌리에서 자라난 것이 아니니라. 그래서 네가 만일 배고프거든, 그리고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거든, 가시에 찔리지 않도록 조심해서 손을 뻗쳐 즉 그들의 행실을 본받지 말고 가시덤불 사이에 매달려 있으되 포도나무 가지에서 자라난 포도송이 하나를 따먹도록 하여라! 이에 너는 포도송이의 영양분을 섭취하게 될 것이고 가시덤불은 불에 타는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23. "나는 내 양들을 그들의 입과 손에서 빼내어 잡아 먹히지 않게 하리라’’(에제34,10). 이 사실을 시편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읍니다. "언제나 깨달으라, 저 악한들. 떠 먹듯 나의 백성 집어삼키고’'(시편 14,4). "나는 그들에게서 잡아 먹히지 않게 하리라!”(에제 34, 11), 주 야훼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아라, 내 친히 내 양을 치리라!’’“그들이 (악한 목자들이) 행하는 것을 행하지 말라고 권하면서, 즉 조심성없고 태만한 양들이 악한 목자들이 행하는 것을 행하지 않도록 충고하면서 악한 목자들로부터 내 양들을 빼앗으리라!” 이어서 무엇이라 말씀하시는가? 악한 목자에게서 빼앗은 양들을 누구에게 주신다고 하십니까? 혹시 착한 목자들에게? 그런 말씀은 뒤따르지 않습니다. 형제 여러분 무엇이라 말할 것입니까? 도대체 착한 목자들이 없다는 것입니까? 또 어떤 성서에는 이런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내 마음에 드는 목자들을 세워주겠노라. 그러면 그 목자들은 알아서 너희를 잘 기를 것이다”(예레 3,15). 그런데 악한 목자들로부터 빼앗은 양들을 착한 목자들에게 주시지 않고 마치 어떤 곳에도 착한 목자가 전혀 없다는 듯이 어떻게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읍니까? "내 친히 양을 치리라! ” 그러나 또 베드로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내 양을 치라!"(요한 21,15 이하) 어떻게 할 것입니까? 베드로에게 당신 양을 맡기실 때 주께서는, "네가 아니라, 내가 양을 치리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베드로야,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치라"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렇다면 이제 베드로를 찾아볼 수 없단 말입니까? 하기야 베드로는 이미 사도들과 순교자들의 안식에 들어 올림을 받았으니까! 그래서 이제 주님께서는 안심하고 그 어떤 누구에게 "내 양을 치라고 말씀하실 수 없는 것입니까? 그래서 별 수 없이 당신 양을 칠 직책 때문에, 당신 양을 누구에게 맡기실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양들을 저버리실 수 없는 주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오셨단 말입니까? 이 사실이 다음의 말씀으로 드러납니다·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느니라. '보라, 내 친히. 내 양을 치겠노라!’” 우리는 이 하느님께 이렇게 말씀드렸읍니다.“이스라엘의 목자여, 요셉 가문을 양떼처럼 인도하시는 이여, 귀를 기울이소서'' (시편 80,1). 이집트에서 이룩하신 백성, 그 백성 이스라엘 즉 요셉은 이제 세상 민족들 가운데 산재해 있읍니다. 요셉이 이집트로 이주해 간 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읍니다. 요셉을 팔아 버린 그 형제들에 의해서 그렇게 되었던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그리스도를 팔아 넘겼읍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백성들 중에 사시기를 시작하셨고 거기서 존경받으셨읍니다, 이어 백성은 형성되었고 그의 목자께서도 백성을 저버리지 않으셨읍니다. 성서에는 "힘을 떨치고 오시어 우리를 도와주소서’'(시편 80,2)라고 기록되어 있읍니다. 틀림없이 주님께서는 그렇게 하실 것이고 또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보라, 내 친히 내 양을 찾아보고 마치 목자가 그 양떼를 들보듯이 내 양떼를 돌보리라! "(에제 34,11). 악한 목자들은 양들을 돌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피로 속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 날에 마치 목자가 자기 양떼를 찾아보듯이” 하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날에? 비오고 안개 낀 날에! 비와 안개는 이 세속의 오류를 뜻합니다. 인간의 욕망으로부터 크나큰 어둠이 생겨나고 짙은 안개가 땅을 뒤덮게 되는 날 말입니다. 이와 같은 안개.낀 날에 양들이 길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목자께서는 양들을 저버리지 않습니다. 언제나 양들을 찾으시니 지극히 예리한 당신의 눈은 안개를 꿰뚫으시고 어두운 구름도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사방을 살피시고 길 잃은 방황하는 양을 찾으시고 복음에 있는 말씀대로 "당신 양들이 당신 목소리를 알아듣고 당신을 따르도록”(요한 10,27) 힘쓰십니다. “흩어진 내 양들 중에서 내 양을 찾아낼 것이요, 비오고 안개낀 날에 그들은 흩어진 곳으로부터 다시 찾아오리라" (에제 34,12 참조). "찾아내기 힘들지라도 나는 찾아내리라! “ 짙은 안개가 끼고 심한 비바람이 칠지라도 주님의 눈을 가릴 것은 아무것도 없읍니다.

24. '‘뭇 민족 가운데서 데려오고, 이 나라 저 나라에서 모아들여 본 고장으로 데리고 와서 이스라엘의 산 위에서 그들을 기르리라! ”(에제 34,13). 주께서는 이스라엘의 산인 성서저자들을 세워놓으셨읍니다. 여러분은 양들을 안전하게 기르기 위해 이곳에서 기르십시오! 여러분이 여기서 듣는 것은 무엇이나 맛들여야 하고 그 밖의 것은 무엇이나 배척해야 합니다. 안개 속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지 않도록 목자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성서의 산위에 여러분의 정신을 집중시키십시오! 여기에는 여러분의 마음의 기쁨이 있으며, 아무 것도 해로운 것이 없으며 이무 것도 낯선 것이 없읍니다. 여러분은 다만 건전한 자로서 오기만 하면 됩니다. 건전한 양으로서 이스라엘의 산에서 양육될 것입니다. "시냇가로 인도하고 사람사는 땅 어디서나 여러분이 길러주실 것입니다' (에제 34,13). 이 산들로부터 “그 소리 구석구석 울려퍼지고 온 세상 땅 끝까지 번져가며”(시편 19,4) 복음의 설교의 강물들이 홀러나와 온 세상의 거처는 양떼들을 위해 기쁘고 비옥한 고장이 되었읍니다. "이스라엘 높은 산에서 좋은 양식으로 양들을 기르리라. 또한 거기에 양들의 우리가 있을 것이니, 양들은 거기서 쉴 것이며, ‘여기가 좋구나!' 할 것이며, '우리는 여기서 진정 속지 않으리라!’ 할 것이다. 양들은 거기서 주의 영광 중에 쉴 것이며 거기서 잠들 것이니 환희와 기쁨 중에 휴식하게 될 것이다”(에제 34,14). (다음 호에 계속)

.5) 역주에서 말한 내용의 구체적 원인과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교회 지도자들이 하느님의 말씀에 순응하지 않으면 그는 오만에 빠지고 이는 결국 쟁론과 파벌을 형성하게 된다. 이것이 열교의 근원임을 지적하며 진정한 교회는 하나뿐이고 그는 사랑으로 모든 것을 감싸서 일치를 이루며 열교와 이단은 "교회"가 아니라 "오만"이 낳은 파벌에 지나지 않음을 간결한 문장으로 표현해 주고 있다. "Una mater superbia omnes haereticos peperit sicut una mater nostra catholica omnes christianos fideles toto orbe diffusos non ergo mirum si superbia parit discissionem, cartas unitaiem.
6) 여기서는 교직자들이 어떤 조심성과 열성을 가지고 봉사해야 하는지 그리고 믿음의 길에서는 얼마나 세심한 분별력과 희생을 각오해야 하는지를 두 단어로 대조시켜 아름답게 설명하고 있다: "ut vitis putaretur, non ut amputaretur." putare-amputare 전자는 가지를 치고 다듬어 깨끗하게 하여 포도가 더 잘되도록 돕는 작업이고 후자는 가지를 잘라버려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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