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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권 제 2편 제 1부 교회의 최고 권위
1990년 1월호 (제 132호)
제2절 주교 대의원회의 1.주교 대의원회의의 개념 제3조 : 주교 대의원회의는 교황의 권위에 직접 예속...

주일의 말씀
1990년 1월호 (제 132호)
천주의 모친 성 마리아 대축일 : 1월 1일장인산(청주교구 교현동천주교회 신부) 1. 교부들의 가르침 : ...

사회 회칙 '사회적 관심'에 대한 새로운 주목
1990년 1월호 (제 132호)
I. 서문 교황 바오로 6세의 사회 회칙「민족들의 발전」(Populorum Progressio, 1967)이 발표된 지 어느덧...

교회의 사회적 개입의 근거와 임무
1990년 1월호 (제 132호)
I. 교회의 사회적 개입의 근거 교회와 사회 생활을 분리시키려 하는 이데올로기가 만연되어 있는 현대 세...

국가에서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통로가 원활하다고 보십니까?
1990년 1월호 (제 132호)
우리의 여러 가지 생각을 모으려 한다. 여기서는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는 계기가 되고 이것을 통하여 자기...

나의 고백
1990년 1월호 (제 132호)
구천우 신부님은 1898년 12월 15일 황해도 장연 태생으로,1926년에 사제로 서품되어 합덕을 첫 임지로 사...

그대는 로마 시민인가
1990년 1월호 (제 132호)
사도행전 22장 17절을 보면 바오로가 자신이 개종을 하게 된 경위와 사도가 된 경위를 말하고 있다. 상세한...

교회의 민주화
1990년 1월호 (제 132호)
대담자 : 이길웅 (서울대교구 자양동천주교회 사무장) 사회자: 서혜선 (「사목」편집부원) 일 시 : 1989년...

신학교와 더불어
1990년 1월호 (제 132호)
대담자 : 정태섭(가톨릭 대학 수위) 사회자 : 최 철(「사목」편집장) 일   시 : 1989년 11월 3...

교회 쇄신을 위한 근원적 성찰 - 교회 내의 민주화를 지향하며
1990년 1월호 (제 132호)
머리말 “그러나 너희는 스승 소리를 듣지 말아라. 너희의 스승은 오직 한 분뿐이고,너희는 모두 형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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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 대담 1990년 1월호 (제 132호)

신학교와 더불어

정태섭 외

대담자 : 정태섭(가톨릭 대학 수위)
사회자 : 최 철(「사목」편집장)
일   시 : 1989년 11월 30일(목) 오후 2시30분~4시
장   소 : 가톨릭대학 수위실

사회자 : 안녕하십니까? 바쁘신 중에도 이렇게 대담할 수 있는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올해부터는 우리 이웃의 평범한 그러나 진실된 삶을 살아가는 분들의 꾸밈없고 따스한 인간애를 나눔으로써 보통 사람들의 소망과 이 사회에 거는 기대 등을 독자들에게 알리고 우리들 모두가 함께 주님 안에서 그러한 삶을 나누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목대담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선 정태섭 씨의 삶의 모습을 듣고자 합니다. 먼저 입교하신 시기와 입교하시게 된 동기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지요.

정태섭 : 제가 영세 받은 것이 20살 때였는데 그 당시 제 고향인 충청북도 중원군 소태면에는 성당이 없었습니다. 저희 동네에서 한 50리 들어가야 겨우 공소가 있었는데 우리 동네의 국민학교를 빌려서 신자들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거기서 교리도 가르치고 공소 예절도 했어요. 그 당시 저는 교회라는 것도 전혀 몰랐는데 그렇게 신자들이 모이는 것을 보고 한 1년쯤 지나 호기심이 생겨 성당에 다니는 친구에게 나도 천주교에 다닐 수 없느냐고 했지요· 그리고 나서 그 길로 그 곳에 나가 교리도 배우고 영세를 받았어요. 그런데 그때만 해도 문답 345조목을 달 외워야 했는데, 다행히 저의 영세 신부님이 메리놀회의 강 미카엘 신부님으로 우리나라에 오신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찰고때 쉽게 넘어갔던 기억이 나요. 당시 예비 신자는 참 많았는데 실제로 영세한 신자는 얼마되지 않았어요. 운이 좋았다고나 할까요. 그러니까 이제 영세한 지 한 30년 되었지요.

사회자 : 제가 알기로는 신학교에 근무하시기 시작한 것이 1969년도로 신학교에 근무하신 지 20년이 되셨고 그렇다면 신앙 생활의 3분의 2를 신학교에서 지내셨는데 신학교에서 근무하시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습니까?

정태섭 : 사실 여기가 제 첫 직장이며 마지막 직장입니다. 영세하고 10년 동안 다른 직장 생활한 것도 없이 고향에 있었는데, 특별한 뜻이 있어서 신학교에 들어온 것은 아니고 전에 이 학교에 계시던 신부님께서 여기에 사람이 필요한데 와서 근무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셔서 아시던 분의 말씀이라 들어왔습니다. 그날이 1969년 2월 1일로 토요일이었습니다.

사회자 : 처음 근무하신 날짜와 요일까지 기억하시는 기억력이 놀랍습니다. 아울러 이곳에 근무하시는 분들은 신학생들의 이름과 얼굴을 모두 기억하시는 비상한 기억력을 가지고 계시는 것으로 아는데 그 비결이라도 있으신지요?

정태섭 : 글쎄요. 비상한 기억력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고,사실 80명 정도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1학기만 지나면 전교생들의 이름과 그 인상까지 다 파악해서 면회오시는 분이 누구를 찾으면 '아,이분은  형제분이구나’라는 것까지 알 수 있었어요. 그런데 학생 수가 그 이상으로 늘어나니까 이제는 힘들어요. 물론 몇 학년 학생이라는 것은 알지만 전만큼 신입생들을 빨리 파악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제 생각에는 저희가 기억할 수 있는 숫자가 신입생이 한 80명 정도일 때까지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자 : 교회 기관, 그중에서도 특별히 사제를 양성하는 신학교에서 오랫동안 근무하시면서 많은 사람들을 접하셨는데 이곳에 근무하시면서 느끼시는 보람이라면 무엇이겠습니까?


정태섭 : 보람이라면 역시 신학교 공부를 마치고 부제반들이 나가서 신품 받을 때이지요. 여기서 어려운 공부 마치고 힘든 생활을 잘 견디고 사제가 될 때가 가장 반갑고 보람을 느낍니다. 그래서 지방에 가다가 성당에서 우리 학교 출신 신부님이 미사를 드릴 때는 정말 기쁘고 기분이 좋습니다. 어떤 때는 그런 기분에 일부러 우리 학교 출신 신부님이 계시는 본당을 찾기도 합니다. 신부님을 직접 뵙기보다도 멀리서라도 아는 신부님이 '저 본당에 계시는구나‘하고 쳐다보는 기쁨도 누립니다. 반면에 마음이 아플 때는 학생이 본의든 타의든 학교를 그만 두고 나갈 때입니다. 어떤 때는 화가 나기도 하죠.

사회자 : 그렇다면 여기에서 근무하시면서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으신지요?

정태섭 : 어려운 점이 있지요. 구교 신자라든가 영세받은 지 오래된 신자들 한테서는 그런 어려움을 못 느끼는데,영세받은 지 얼마 안된 신자들이 찾아와서 교회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때 어려움을 느낍니다. 즉 이곳이 신학교라는 특수성을 이해 못하고 신학교라고 해서 꼭 이런 식으로 시대에 뒤떨어지게 통제해야 되는가 하면서 마치 자기들이 성직자가 무엇인지 다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신학교 규칙에 대해서 꼭 그렇게 해야 훌륭한 신부가 되고 효과가 있느냐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이곳 수위실을 향하는 발걸음만 봐도 표시가 납니다. 우스개소리 같지만 저희들은 여기서 오는 사람들의 표정이나 발걸음,옷 매무새만 봐도 '저 사람은 신학생 학부형이구나’,‘신자 아닌 친구구나’, '다른 일로 찾아오는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알지요. 왜냐하면 신학생들의 친척이나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은 저 아래에서 올라올 때부터 태도나 걸음걸이가 정숙합니다. 그런데 신자 아닌 친구들이 올 때는 이 곳을 일반 대학교나 똑같이 생각합니다. 특히 남녀 친구들이 같이 찾아올 때는 팔짱을 끼고 들어오는 경우도 있어요. 그렇다고 뭐라고 말하면 간섭하는 것 같고 거북할 때가 있습니다. 신자들 중에도 이곳이 거룩한 신학교,훌륭한 사제가 나오도록 우리 신자들이 더욱 관심을 갖고 기도해야 할 곳이라는 것을 모르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것이 느껴질 때는 참으로 속상합니다.

사회자 : 20년이면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시기인데,그 동안 신학교도 많은 변화를 겪은 것으로 알고 있습디다. 소신학교가 정부의 문교 정책의 변화로 인해 없어진 것이라든지, 대신학교 건물의 신축과 증축, 또 72년부터는 일반 학생에 게도 개방함으로써 사제 지망생이 아니더라도 같이 공부할 수 있게 된 것 등인 데 이러한 변화에서 오는 느낌이라면 무엇이겠습니까?

정태섭 : 네, 많은 변화가 있었지요. 제가 근무할 때는 중학교도 있을 때였는데,물론 소신학교 때 들어와서 사제가 되는 학생들은 얼마 안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오랜 기간 동안 다듬어져서 신부가 될 때 지금의 분위기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당시의 신학생들이나 신부님들이 더 훌륭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소신학교에서부터 올라온 학생들과 지금처럼 타대학  졸업하고 들어온 학생들과는 몸에 배어 있는 생활 습관부터 차이가 있음을 느낍니다. 사회에서 몸에 배어 있는 생활을 잊고 신학교에 와서 새로운 생활 습관을 익혀야 하니까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래서 요즈음에는 신학생들이 많은 고민을 합니다. 저는 소신학교에 대해서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사제들의 질적인 향상을 위해서는 소신학교가 있는 것이 더 낫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학교는 곤란하지 않은가 합니다. 왜냐하면 옛날에는 어릴 때 밥상 앞에 앉아서 성호만 그어도 할머니들이 이 아이는 신학교에 갈 아이라고 해서 국민학교만 졸업하면 신학교에 보냈는데,입학식이 끝나고 부모들이 다 돌아가고 나면 엄마 보고 싶다고 저 뒷문으로 나와서 울었습니다· 지금 신부님들 중에도 그런 분들이 있지요. 어릴 때부터의 교육도 중요하지만 중학교 때부터는 그런 면에서도 곤란 하다고 봐요. 그렇지만 고등학교는 정말 필요합니다. 자신의 생활 습관이 거의 결정되는 청소년 시기에 신학생으로 교육받는 것은 대신학교 생활에도 사제 생활에도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타대학을 졸업하고 들어온 학생들을 보면서 그런 필요성을 더 느낍니다. 왜냐하면 그런 학생들은 적응하는 데 오 랜 시간이 걸리거든요. 지금까지의 자기 생활을 버리고 새 생활을 시작해야 하니까,드러내지는 않지만 많은 고민을 합니다. 그리고 우선 자유가 제한받는다는 생각이 가장 힘든 것 같아요.
그리고 일반 학생들을 받아들임으로써 느끼는 것은 제 입장에서 말씀드리기는 좀 곤란한 것이지만,사실 우리나라 교회 차원에서는 좀 이른 감이 있습니다. 제 욕심이라면 성직 지망자만 받았으면 해요. 시대도 그렇지만 밖의 이야기를 많이 하거나 듣다 보면 머리가 혼란해지고 학생들에게 갈등이 많이 오기 때문이죠. 물론 불교의 동국대학교나 또 다른 학교들도 그렇게 하지만 우리 가톨릭만은 성직 지망자와 수도자만 받아서 교육시켰으면 좋겠어요.


사회자 : 70년대 이후부터 정치 문제에 신학생들도 많은 관심을 갖고 시국 기도회 등에 참석하기도 하면서 거리로 뛰쳐 나가기도 했는데. 이곳에 근무하시면서 그러한 것들을 접할 때 어떤 느낌을 받으셨는지요?

정태섭 : 지금이나 그때나 제가 깊이 알지는 못해도 우리 신학생들이 데모하는 것을 반대한 적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잘한다고 칭찬한 적도 없어요. 다만 학생들에게 부탁하는 것은 비폭력입니다.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신학도답게 손에 막대기도 들지 말고 비폭력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외치라는 것입니다. 언제인가 한번은 여기서 학생들과 경찰이 밀고 당기다가 경찰이 쓰러져서 밝힌 적이 있었는데,병원에 실려가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아프더라구요· 그래서 여기서 학생들이 나갈 때 간곡히 부탁을 합니다. 싸움한다고 안 될 일이 되는 것도 아니니 (사실 주장을 들어야 할 사람들은 정부 고위층이지 명령대로 움직이는 경찰이 아니지 않습니까) 절대 폭력은 없도록 하라고요. 그런 일이 있은 다음에 경찰로부터 들은 이야기인데, 경찰서장이 신학교에 데모 진압을 나가는 사람들한테는 별도로 교육을 시킨답니다. 신학교에 가면 발도 높이 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보면 차는 것으로 알 수 있으니까 더 신경을 쓰라는 것이지요. 일이란 돌을 던지고 폭력을 쓴다고 풀리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서 풀리는 것이 아닙니까?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여기 학생 간부와 경찰서 고위층이 대화해서 어디까지는 나가서 데모해도 괜찮다고 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볼 때 우리 학생들은 참 훌륭하게 잘했다고 생각됩니다. 이와 관련된 일이 또 있습니다. 여기 담당 형사가 천주교 신자예요. 오후 6시가 되면 외출했던 신학생들이 귀교하는데, 여기서는 누가 나가고 누가 들어왔는지 다 알기 때문에 그때까지 안들어 온 학생이 누구인가도 금방 알게 됩니다. 그럴 경우 혹시 붙들려 갔을지 모르기 때문에 그 형사에게 연락을 합니다. 그러면 그 형사가 여기 저기 수소문하여 잡혀갔을 경우는 바로 보내줍니다. 한 번은 학보사 기자가 외출을 나가서 안들어왔는데 어디 갔는지 파악이 안 되었어요. 그래서 연락을 했는데도 역시 알 수가 없었습니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취재하던 원고를 뺏기고 경찰차에 실려 다니니까 확인이 안되었던 것이었죠. 나중에 어느 경찰서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연락이 되어서 풀려난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신부님들께는 죄송하지만 알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신부님들이 걱정하시는 것도 조심스럽고 또 학생에게 해가 될까 싶은 염려도 있었기 때문이지요.

사회자 : 처음 들어오셨을 때와 지금을 비교해서 전체적으로 변화된 신학교의 분위기라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

정태섭 : 글쎄요. 생활들이 부유해져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시험 때의 분위기가 그때와는 전혀 다른 것 같아요. 그러니까 부제반이 따로 있을 때,즉 새 건물이 지어지기 전만 해도 시험 때만 되면 얼굴에 누렇게 꽃이 필 정도였는데,요즘에는 그런 모습이 없어요.

사회자 : 우리 나라에서 본당신부님들의 역할 중 모든 것이 다 중요하겠지만 신자들의 영성 지도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되는데,그런 면에서 이 신학교에서의 영성 교육은 그만큼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학생들의 영성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정태섭 : 지금 신학교에 원감 신부님께서 열심히 일하고 계시지만,그 신부님 한 분의 힘만으로는 부족해요. 왜냐하면 교수 신부님들이 낮에는 강의하고 나머지 시간에 학생들의 영성 지도까지 해야 하는데 그분들도 강의 준비해야 하는데다가 또 다른 연구도 해야 되니 굉장히 바쁘십니다. 그리고 전에는 신학생 모집 인원이 40여 명이었는데 지금은 100명이 넘거든요. 그래서 이 영성 지도문제만 하더라도 교구나 교회 차원에서도 문제이겠지만 신학교에는 영성 지도 신부님이 많이 확보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많이 뽑아서 많이 배출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어떻게 다듬어 훌륭한 사제를 만드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지요.

사회자 : 신학생들이나 학부모님들께 바라고 싶은 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정태섭 : 영성지도 신부님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지금 신학생들이 아주 잘하고 있다고 봅니다. 신학생 간부들이 솔선수범해서 생활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윗분들 손이 미치지 못하니까 누가 억제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스스로 알아서 많이 자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외출 나갔다가 술 마시고 들어오는 학생들도 거의 없습니다. 술 이야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우리는 신학생이 술 마시고 안 마시는 것은 아침에 하늘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아침에 하늘을 보면 ‘오늘은 술 좀 마시겠구나’ 하고 짐작합니다. 그러면 거의 맞아요. 날씨가 우중충하고 흐리면 많이들 먹는데 날씨가 화창하면 외출을 나가도 술 마시고 오는 사람이 없습니다. 지금은 음주나 흡연이 상당히 줄었고 그런 면에서는 신학생들에게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 한 가지는 부탁하고 싶습니다. 신부님들이 신학생 때에 보따리를 싸고 싶은 마음이 한 번도 들지 않았었다고 한다면 나는 그분 말을 한 마디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누구나 그만 두려고 했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고비를 이겨내고 다 훌륭한 신부님이 되셨어요. 신학교 생활을 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그것이 가장 심할 때가 학부를 마치고 연구과에 올라갈 때인데 그때는 갈등을 느끼는 것이 드러납니다. 고민을 하는 것이지요.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것이 아주 선연하게 나타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도 무난하게 넘어갑니다. 다만 그것은 신학생 자신의 힘이 아니라 도우심이 있다는 것 입니다. 그래서 신학생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이 점입니다. 분명히 어떤 도우심이 있으며, 따라서 그 은총에 의지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와 더불어 부모님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신부가 한 명 되려면 그 부모님들이 다 수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반 수도자는 되어야 그 아들이 훌륭한 사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면회 와서 갈등만 일으키고 가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찾아와서는 수도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이야기만 하다 가니까 그것이 고민이 되어서 신학교를 그만 두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학부모님들이 그런 것을 지양했으면 합니다·

사회자 : 신부님들이나 수도자에게 바라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정태섭 : 신부님들은 다 신학교를 거쳐서 나가셨습니다. 그런데 신학교보다는 성당을 짓는 데 더 많은 신경을 쓰십니다. 물론 그것도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신학교에 보내는 것에만 만족하지 마시고 보내고 난 후에도 성당 짓는 것의 반만큼이라도 관심을 가지셨으면 해요. 신부님뿐만 아니라 신자들도 마찬가지이지요. 그냥 신학교에만 보내 놓으면 신부가 되어 나오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고 그 신학생들의 학업이나 영성의 질을 높이는 데에도 더 관심을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교님들께는 제가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마는,신학교 시설이 굉장히 좋아졌는데 그런 면에서는 감사를 드리지만 이제는 신학생들의 영성 문제에 더 관심을 기울이셔서 신학생들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영성 지도 신부님들을 많이 보내 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사회자 : 오랫동안 신학교에서 근무하시면서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다면?

정태섭 : 그런 것은 별로 없어요. 이곳이 그렇게 변화가 있는 데가 아니니까. 그렇지만, 굳이 말하자면 사회에서는 잘 봐달라고 하는 것이 어떤 사람이 실수를 하면 모른 체하는 것,못 본 체하는 것인데, 우리 신학교에서 잘 봐준다는 것은 그 사람이 잘못했을 때 혼내주는 것입니다. 덮어주는 것이 아니라 좀 잘못한다 싶으면 불러서 나무랍니다(학생이니까). 부제반이 되어도 그때까지는 학생이라 고 할 수도 있으니까 부탁을 합니다. 신품 받아 나가면 남한테 반말하지 말라는 부탁이지요. 신품 받고 본당에 나가면 아무도 그런 말을 안해줍니다. 신부가 되 어 욕을 해도 신자들이 신부님한테 '왜 욕을 합니까?’ 하고 말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부제반이라 해도 이곳을 지나갈 때 특별히 부탁을 하지요.

사회자 : 개인적인 질문을 좀 드리겠습니다.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고 계시는 지요?

정태섭 : 그 말의 뜻은 내가 고용인이니까 금전 문제인 듯한데,직장이라면 이 지구상에서 어느 누구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피고용인은 조금 더 달라고 하고 고용주는 한 푼이라도 아껴서 살림을 꾸려가려고 하는 것이니까 다 같은 입장인 것 같아요· 그러나 제 자신은 그런 것에 그렇게 좌우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그런 것에 신경을 썼다면 신학교에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많이 주는 것을 싫다는 사람은 없지요. 그러나 돈에 애착을 가지고는 이곳에서 근무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저뿐만이 아니라 우리 가톨릭 계통 또 어느 종교 기관에서 근무하는 사람이라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종교 재단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자기의 보수를 꼭 자기 안목에 맞춰서 바란다면 근무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신자들과 신자 아닌 사람들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속상할 때도 많이 있지요. 그러나 속이 상했더라도 교회가 잘되는 것이 더 중요하리라 생각하고 많이 자제를 하지요. 교회 살림이 곧 내 살림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사회자 : 보수 문제 외에 영성 문제,그러니까 신앙 생활에 대한 것은 어떠하십니까?

정태섭 : 저는 주일 미사 가기도 바쁩니다. 여기 세 사람이 근무하는데 숙직하는 사람이 나가고 둘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1박 2일을 근무하고 사흘에 한 번씩 숙직을 해야 하니까 주일이라고 해도 아침 일찍 나와서 혜화동 성당에서 새벽 미사를 보고 출근해야 되기 때문에 신앙생활이 부족한 편입니다. 그리고 이곳은 오히려 일요일이 더 바쁜 날입니다. 다른 학교 같으면 일요일에는 학생들이 안 나오니까 그래도 좀 한가한데,여기는 일요일이면 학생들이 외출을 하고 계속 사람들이 드나드니까 더 바쁩니다. 그래서 인원 보충의 필요성을 절감하지만 그것은 또 학교 예산의 문제가 되니까 무턱대고 주장하기도 어려운 형편입니다. 그와 연관되는 문제인데 이곳은 특수한 근무처이기 때문에 명절이 없습니다· 저도 명절을 지내러 가본 적이 없습니다. 명절이면 다른 직원 다 내보내고 저희는 남아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얼마 되지 않는 인원인데 이번에는 누가 가고 다음에는 제가 간다고 할 수도 없고요. 그래서 그런 것에는 관심이 아주 없어졌습니다.

사회자 : 자녀들도 다 성장했을텐데 자녀들은 어떻습니까?

정태섭 : 아들만 두 형제인데,작은 아이는 작년에 고등학교 졸업했고,큰 아이는 대학 다니다가 학생 운동 한다고 돌아다니더니 지금은 행방불명입니다. 가톨릭 대학생 연합회에서도 활동을 했고 신앙 생활도 열심해서 안심을 했었는데 2학년 여름부터인가 텔레비전 시청료 거부 운동을 할 때 전북 부안에도 내려가더니 그때부터 이 아이가 바른 말하고 돌아다니더군요. 그러다가 행방 불명되었는데 처음에는 제가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우리 아이가 잘못인지 정부가 잘못인지는 제가 정확하게 뭐라고 할 수 없지만,나중에 자기의 잘못이면 후회하겠지요. 그런데 자기 말로는 후회는 안한다고 했어요. 지금은 어느 정도 담담합니다. 제가 이 신학교에 있기 때문에 또 학생들을 상대하니까 이해를 빨리 하게 되더군요. 이제는 그 아이가 한 일을 나쁘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다만 그 나이면 군대 갔다 와서 학교 졸업하고 직장도 다녀서 기반을 잡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 하는 것이 좀 야속할 따름이지요.

사회자 : 전부터 교회가 사회나 정부에 대해 정의 구현과 민주화를 많이 외쳐 왔습니다. 그러나 요즘에 와서는 교회 내부에서뿐만 아니라 교회 외부에서도 교회 자체부터 민주화해야 한다는 소리가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정태섭 : 타종교도 그렇겠지만 제가 종교라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신앙 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과 교회에 얽매이는 것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위를 의식해야지요. 사실 어디 가서 한마디 하고 싶어도 신자로서 교회를 욕되게 할까봐 자신이·조심하게 됩니다. 너무 속상해서 한마디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교회 기관에 근무하고 신자이기 때문에 많이 자제하게 됩니다. 그리고 제 자신이 영세해서 지방에서 본당과 10리 떨어진 곳에 있다가 신학교에만 있었기 때문에 본당 사정에 대해서는 또 전혀 모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체적인 것은 말씀드릴 수가 없군요.

사회자 : 앞으로 하시고 싶으신 일이나 희망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정태섭 : 바라는 것, 희망한다는 것은 욕심입니다. 그리고 그 욕심은 한이 없는 것이니까 말하자면 끝이 없지요. 다만 내가 여기서 근무하는 동안 언제든지 열심히 일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미래의 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바로 앞의 일도 모르는데 미래의 것을 생각한다는 것부터가 잘못 아닙니까? 현재의 생활에 열심해야지요.

사회자 :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은?

정태섭 : 여기 있으면서 제가 느끼는 것인데,수도 생활하시는 분이나 성직 생활하시는 분들에게 특히 중요한 것은 생각하는 마음인 것 같습니다. 물론 그분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해당이 되고 또 제 자신에게 항상 다짐하는 것이 기도 하지만,사람이 눈으로 본 것을 다 실천에 옮기지 말고, 귀로 들은 것을 다 입으로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을 질러가는 길은 택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즉 항상 생각을 해본 다음에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그것이 자기 자신에게 있어서도 또 주위 사람을 위해서도 나아가서 모든 사람을 위해서도 꼭 지켜져야 할 것입니다.

사회자 : 바쁘신 중에도 기꺼이 시간을 내주시고 좋은 말씀,신앙인으로서 교회에 대한 생각을 솔직히 말씀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