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제 2권 제 2편 제 1부 교회의 최고 권위
1990년 1월호 (제 132호)
제2절 주교 대의원회의 1.주교 대의원회의의 개념 제3조 : 주교 대의원회의는 교황의 권위에 직접 예속...

주일의 말씀
1990년 1월호 (제 132호)
천주의 모친 성 마리아 대축일 : 1월 1일장인산(청주교구 교현동천주교회 신부) 1. 교부들의 가르침 : ...

사회 회칙 '사회적 관심'에 대한 새로운 주목
1990년 1월호 (제 132호)
I. 서문 교황 바오로 6세의 사회 회칙「민족들의 발전」(Populorum Progressio, 1967)이 발표된 지 어느덧...

교회의 사회적 개입의 근거와 임무
1990년 1월호 (제 132호)
I. 교회의 사회적 개입의 근거 교회와 사회 생활을 분리시키려 하는 이데올로기가 만연되어 있는 현대 세...

국가에서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통로가 원활하다고 보십니까?
1990년 1월호 (제 132호)
우리의 여러 가지 생각을 모으려 한다. 여기서는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는 계기가 되고 이것을 통하여 자기...

나의 고백
1990년 1월호 (제 132호)
구천우 신부님은 1898년 12월 15일 황해도 장연 태생으로,1926년에 사제로 서품되어 합덕을 첫 임지로 사...

그대는 로마 시민인가
1990년 1월호 (제 132호)
사도행전 22장 17절을 보면 바오로가 자신이 개종을 하게 된 경위와 사도가 된 경위를 말하고 있다. 상세한...

교회의 민주화
1990년 1월호 (제 132호)
대담자 : 이길웅 (서울대교구 자양동천주교회 사무장) 사회자: 서혜선 (「사목」편집부원) 일 시 : 1989년...

신학교와 더불어
1990년 1월호 (제 132호)
대담자 : 정태섭(가톨릭 대학 수위) 사회자 : 최 철(「사목」편집장) 일   시 : 1989년 11월 3...

교회 쇄신을 위한 근원적 성찰 - 교회 내의 민주화를 지향하며
1990년 1월호 (제 132호)
머리말 “그러나 너희는 스승 소리를 듣지 말아라. 너희의 스승은 오직 한 분뿐이고,너희는 모두 형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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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사회 1990년 1월호 (제 132호)

그대는 로마 시민인가

최인호 (작가)

사도행전 22장 17절을 보면 바오로가 자신이 개종을 하게 된 경위와 사도가 된 경위를 말하고 있다. 상세한 설명을 하고 난 바오로에게 유다인들은 “이런 놈은 아예 없애버려라. 죽일 놈이다” 하고 소리 지른다. 성서는 그 후의 장면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미친듯이 고함을 지르고 옷을 내어 던지며 공중에 먼지를 날렸다. 그러자 파견대장은 바오로를 병영 안으로 끌어들이라고 명령하였다. 그리고 유다인들이 바오로를 향해서 그렇게 소리 지르는 이유를 알려고 채찍질해서 조사해 보라고 하였다. 그래서 군인들이 바오로를 결박하자 바오로는 거기에 서 있는 백인대장에게 '로마 시민을 재판도 하지 않고 매질하는 법이 어디 있소?’ 하고 항의하였다. 이 말을 듣고 백인대장이 파견대장에게 가서 '어떻게 하실 작정입니까? 저 사람은 로마 시민입니다’ 하고 알리자 파견대장은 바오로에게 가서 '당신이 로마 시민이라는 것이 사실이오?’ 하고 물었다. 바오로가 그렇다고 대 답하자 파견대장은 '나는 많은 돈을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소’ 하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듣고 바오로가 '나로 말하면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입니다’ 하고 밝히니 바오로를 심문하려던 사람들이 곧 물러갔다. 바오로가 로마 시민이라는 것이 드러나자 그를 결박했던 사실 때문에 파견대장도 겁을 집어먹었다.”

날 때부터 로마 시민이라는 말 한마디가 파견대장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는 이 구절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파견대장은 이 시민권을 많은 돈을 들여 얻었음을 고백한다.

로마 제국 (Roman Empire )은 역사상 서양 최대의 제국(帝國)이다. 전 유럽을 지배하였을 뿐 아니라,A.D. 14년 당시 로마의 황제였던 아우구스투스의 사망 시까지는 아프리카의 북부까지 식민지로 삼았던 사상 최대의 제국이다. 예수가 태어났을 시에는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으며 로마에서 파견된 총독에 의해서 다스려지고 있었다. 많은 돈을 주어 로마 시민권을 샀다는 파견대장의 말처럼 로마 시민은 출세와 영화와 자유의 상징이었다. 파견대장이 로마 시민권을 사기 위해서 지불하였던 돈에는 마태오 복음 22장에 나오듯 로마의 황제 카이사르의 초상(肖像)이 새겨져 있었을 것이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는 로마 제국의 식민지인 예루살렘의 마구간에서 태어났다. 낳자마자 여물통인 구유에 놓임으로써 로마의 시민권과는 인연을 달리한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세례를 받고 나서 악마로부터 로마 시민권의 유혹을 받는다. 빵으로 상징되는 물질과,악마가 예수를 높은 산 위에 데려가 보여 준 세상의 모든 나라와 화려한 모습의 영광은 로마 제국의 영화를 상징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를 단호히 물리친다. 그뿐 아니라 그는 산상(山上)에 올라가 로마 시민의 가치관과는 전혀 다른 설교를 시작한다. 가난한 사람과 슬퍼하는 사람과 온유한 사람과 박해를 받는 사람에게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의 복음은 부자와 기뻐하는 사람과 지배하는 사람에게 행복이 있다는 로마 시민권과 정반대의 가치관을 역설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장하는 나라는 크고 찬란한 왕국 로마의 영광이 아니다. 그가 주장하는 나라는 '하늘의 나라’이다. 예수가 전도를 시작하면서 꺼낸 최초 의 주장은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다가왔다”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회개하라. 로마의 제국이 다가왔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구세주인 예수가 태어남으로써 인류의' 역사는 '기원전’에서 '기원후‘의 역사 로 전환을 이룬다. 하늘의 나라가 아직 오지 않았다(Not yet)라고 말하는 사람 도 그리스도가 오심으로써 동서양을 막론하고 기원후의 새 역사가 시작됨을 보는 것으로 하늘나라가 이미 다가왔음( But already )을, 하늘나라가 이미 시작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가 인간의 역사 속으로 뛰어든 기원후 이후로 인간의 사회와,신앙의 가치관은 끊임없이 대립을 반복하여 왔다.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는 신앙의 가치관과 로마의 황제를 왕으로 모시는 사회의 가치관은 이미 예수를 십자가에 달아 죽게 한 비극 이래로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도 우리 곁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끊임없이 죽어가고 있다.

로마의 총독 빌라도는 예수를 불러 놓고 다음과 같이 물었다고 요한복음은 말하고 있다.

“네가 유다인의 왕인가?” 그러자 예수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 왕국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다. 만약 내 왕국이 이 세상의 것이라면 내 부하들이 싸워서 나를 유다인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예수는 분명히 못을 박고 있다. “내 왕국은 결코 이 세상의 것이 아니다.”

우리가 배워 오는 교육은,역사는, 철학은,과학은,삶의 가치관은 여전히 로마 제국의 가치관이다. 전세계를 하나의 제국으로 통일하려는 야망,그러기 위해서 벌이는 전쟁,끊임없이 정복하는 식민지, 거기에 나타나는 흥청망청 먹고 마시고 취하는 쾌락. 로마의 시민권을 얻기 위해서 많은 돈을 주어 이를 샀던 파견대장처럼 우리는 오늘도 로마 시민권을 얻기 위해서 태어난 순간부터 경쟁과, 질투와,승부를 배운다. 그리하여 우리는 스스로 식민지의 이방인이 되어 노예로 전락한다. 우리 마음속에 총독을 세우고 카이사르의 신민(臣民)이 되어 그에게 세금을 바치고 “죽이시오. 죽이시오.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시오. 우리의 왕 은 카이사르밖에 없습니다” 하고 울부짖는다.

신앙의 상징인 하늘나라, 즉 하늘 왕국의 왕인 예수 그리스도는 태어난 순간 이에 반하여 마구간에서 태어나,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자란다. 그는 로마의 시민권보다는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우리에게 선포한다. 하늘나라의 시민권은 마음이 가난하고,마음이 깨끗하고,어린이처럼 어리석고, 우는 사람이어야 하며 슬퍼하는 사람만이 차지할 수 있다고 선포한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우리에게 로마의 시민권을 요구하고,우리가 믿는 신앙은 우리에게 하늘 나라의 시민권을 요구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우 리에게 로마의 시민이기를 강요하고 우리가 믿는 교회는 우리에게 하늘 나라의 시민이기를 요구한다.

우리는 저 두 개의 시민권 중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 많은 그리스도인들처럼 두 개의 시민권을 동시에 소유하려 함으로써 하느님과 재물 두 가지를 한꺼번에 소유할 수 없다는 주님의 말씀에 거역하는 이중의 국적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로마의 시민권을 소유함으로써 먹고 마시고 흥청대는 육체의 노예가 될 것인가. 그리스도를 못 박을 것인가. 그를 하느님을 모독하였다하여 죽일 것인가. 아니면 태어나면서부터 로마의 시민이라던 그 자랑스런 시민권을 버림으로써(회개함으로써) 부활하는 바오로처럼 새로 태어날 것인가. 이 시민권을 선택하는 순 간 우리는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시민권은 피(血)로 얼룩져 있으며 땀으로 얼룩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우리가 구속과 압박에서 벗어나 자유(自由)를 얻으려면 이 시민권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