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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의 말씀
1990년 10월호 (제 141호)
연중 제27주일 : 10월 7일 1. 독서의 배경과 주제 제1독서(이사5,1-7):이사야예언서의 유명한 ...

제 2권 제 2편 제 2부 개별 교회와 그 연합
1990년 10월호 (제 141호)
제1절 개별 교회 3. 성직자치구와 자치수도원구 제370조 : 성직자치구와 자치수도원구는 특수한 ...

주간 부활 축일인 주일
1990년 10월호 (제 141호)
“이 날은 주께서 마련하신 날,기뻐하며 즐거워하자,(시편 117,24). 그리스도교는 성서와 교회 전승을 바...

성서와 새로운 복음화
1990년 10월호 (제 141호)
*본고의 내용은 제4차 세계성서사도직협회 총회에서 브라질의 기초공동체들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

오늘날 한국 천주교회의 존재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1990년 10월호 (제 141호)
우리의 여러 가지 생각을 모으려 한다. 여기서는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는 계기가 되고 이것을 통하여 자...

나의 고백
1990년 10월호 (제 141호)
강영훈 국무총리는 평북 창성군 청산면 출신으로 만주 건국대학교와 미국 육군 참모대학을 수료하고 미국...

멕여서 보내자
1990년 10월호 (제 141호)
여중 시절 필독서를 정해준 선생님이 계셨다. 강제성을 띤 건 아니었지만 문학 소녀였던지라 그 기회에 ...

선교사가 본 한국 교회의 실상
1990년 10월호 (제 141호)
대 담 : 반예문 (메리놀외방전교회 신부.홍콩난민선교) 김정수(사목주간·신부) 일 시 : 1990년 8월 1...

가톨릭의 종교 개혁
1990년 10월호 (제 141호)
I. 프로테스탄트 교회 안의 집중 폭우 프로테스탄트는 종교 개혁이란 개신교의 배타적인 독점물처럼 ...

1980년대 한국 천주교회에 대한 반성 - 성직자, 수도자, 신도의 특성
1990년 10월호 (제 141호)
I. 머리말 역사학은 어느 시대를 연구하는가? 그 연구의 범위 안에 역사 연구자 자신이 살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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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0월호 (제 141호)

주일의 말씀

장인산 (청주교구 교현동천주교회 신부)

연중 제27주일 : 10월 7일

1. 독서의 배경과 주제

제1독서(이사5,1-7):이사야예언서의 유명한 “주님의 포도밭노래”이다. 이 노래에서 예언자는 비유의 형태를 통하여 자기 백성에게 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상기시키며 하느님께로 돌아와 그 사랑에 보답할 것을 촉구한다. 포도밭 주인이 신 하느님 야훼께서는 하나도 소홀함이 없이 당신 백성(포도나무)을 돌보신다. 좋고 기름진 산등성이에 밭을 일구어 세심한 준비를 마치신 후에 좋은 종자의· 포도나무를 심는다. 그리고 울타리를 둘러친 후에 망대까지 세워 포도나무를 보호하며 좋은 포도 맺기만을 기다렸는데 ... 머루가 맺혔다. 자기 사랑과 노력에 대한 보답을 받지 못하고 실망한 포도밭 주인은 괴로워하며 스스로 묻는다. “내가 포도밭을 위하여 무슨 일을 더해야 한단 말인가? 내가 해주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는가?” 그는 결국 그 배은망덕하는 포도밭을 포기하고 모든 사랑을 거두어 버릴 것이다.

이사야 예언자는 명백히 노래의 의미를 선포한다. “포도밭 노래”는 결국 하느님과 그 백성 이스라엘의 역사라고 선포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사랑에 배은망덕한 죄로 인해서 결국 열강(아시리아)의 침략을 받고 노예 지위로 전락 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하느님을 외면하고 무죄한 피를 흘리고 남을 짓밟는 죄스런 삶의 당연한 귀결이다. 하느님께서 돌보시는 은총과 사랑의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해야겠다. 이 은총의 시기에 회개하여 참삶의 길, 성령의 열매를 맺는 길로 나아오도록 해야겠다.

제2독서(필립 4,6-9) : 우리 인생살이에는 별별 걱정거리가 다 있게 마련이다. 그리스도 신자들 또한 이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 신자들 에게는 우리의 근심과 걱정을 하소연할 분이 계시다. 우리 가운데 계시며 생활 하산 하느님께 우리의 걱정거리와 소원을 말씀드리고 아뢸 때, 그분은 우리에게 안심과 평화를 주신다. 이렇게 그리스도 신자인 우리들은 하느님의 현존 앞에서 또 그리스도와의 친교 안에서 마음의 평화와 자유를 누린다. 그리고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은 그 내부에서부터 성화되어 고상하고 선한 행위가 된다. 하느님으로부터 받게 되는 이 평화야말로 참된 평화, 세속이 우리에게 줄 수 없는 평화 이다.

복 음(마태 21,33-43):제1독서의 이사야 예언서에 이어서,예수께서는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 말씀을 통해서 고집스런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할 줄 모르는 삶을 질책하신다. 또한 백성의 지도자들과,대사제들,바리사이파의 배척을 받고 죽음을 당하실 당신 자신의 운명을 예고하신다.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내리시는 선물이요 은총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이 은총의 선물에 대해서 맞갖은 응답을 해야 한다. “잘 들어라. 너희는 하느님 의 나라를 뺏길 것이며 도조를 잘 내는 백성들이 그 나라를 차지할 것이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과 맺은 은총의 계약을 소홀히 함으로 써 하느님의 나라를 박탈당하였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신약의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으로 불리운 우리 그리스도 신자들에게도 경고의 말씀이며, 올바른 신앙의 응답을 하도록 초대하는 말씀이다. 어느 누구나 하느님의 뜻을 소홀히 하고 그 은총에 맞갖은 열매 맺는 생활을 하지 않을 때에는, 준엄하신 주님의 선고를 피할 수 없으리라.

2. 강론 핵심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인 우리 그리스도 신자의 삶 전체는 하느님의 은총의 소산이다. 하느님께서는 '무'에서 우리를 창조하시아 이 세상의 빛을 보게 하셨고, 신앙의 빛을 주시어 구세주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게 해 주셨다. 그리고 당신 성령을 통해서 우리 안에 현존하시며 매일의 생활 안에서 우리들이 당신 생명에 참여하며 당신 사랑을 증거하도록 이끌어 주신다. 하느님의 크신 사랑은 우리의 응답을 요구한다. 우리가 잘못된 생활을 청산하려 하지 않고 끝까지 회개에의 부르심에 귀를 막고 은총에 거역하는 삶을 고집할 때에 구약의 이스라엘과 똑같은 운명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신앙과 사랑으로 주님의 은총에 응답하며 성령의 열매를 맺는 생활을 하도록 노력하자.

3. 교부들의 가르침 :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의 가르침

주님께서는 이 비유로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포도철이 되자 그는 그 도조를 받아 오라고 종들을 보냈다.” 종들은 예언자들을 뜻합니다. 도조를 받아 오라고 한 것은 사람들의 순명을 뜻합니다. 즉 그들이 매사에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는지 보고 오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악하게 행동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그와 같이 잘 해주셨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게을러서 도조를 바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주님의 종들을 붙잡아 죽였던 것이다. 도조를 바쳐야 할 의무를 못하게 되었으면 주님의 종들을 죽일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용서를 청하면서 잘못을 뉘우쳤어야 될·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화를 냈을 뿐만 아니라 피의 범죄로 그들의 손을 더럽혔던 것입니다. 벌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남에게 벌주는 권리가 있는 듯 행사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이 얼마나 악한지 분명해졌고 또한 주님의 마음이 참으로 선하신 것이 드러났으니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종들을 보내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왜 주님은 바로 당신 아드님을 보내지 않으셨을까요? 그것은 사람들이 처음에 취했던 행동을 뉘우치고 아들이 도착할 때엔 존경심을 가지고 대하라고 섭리하셨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유도 있지만 그 점에 대해서는 다음에 말씀드리기로 하겠습니다.

그들이 종들에 대해서는 무례하게 대했지만 주인의 아들에 대해서만큼은 존경심을 가지고 맞이하였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취한 행동은 어떠하였습니까? 아들에게 급히 달려와 맞이하고 그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하여 용서를 청하기는커녕 새로운 도전을 가하고 새로운 범죄를 더함으로써 지난 잘못에 새 잘못 을 쌓는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이런 상태를 일컬어 주님께서는 “그러니 너희 조상들이 시작한 일을 마저 하여라”(마태 23,32)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언자들이 이미 전에 그들에게 한 말이 있습니다. 즉 “너희의 손은 피투성이 가 되었다”(이사 1,15). “유혈 참극이 그치지 않는다”(호세4,2), “너희는 백성의 피를 빨아 시온을 세웠다”(미가3,10), 그래도 백성들은 이 말씀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중요한 계명과 여러 가지 율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나쁜 습관을 고치지 않았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마태 복음 주해서 68,1)

4. 예화 : 마귀들의 대희

어느날 마귀들이 대회를 열었다. 이 날 모임의 주제는 “어떻게 하면 한 인간이라도 지옥에 떨어뜨릴 수 있을까?”였다. 한 청년 마귀가 일어나서 의견을 발표 하였다. “인간을 보다 많이 지옥에 빠뜨릴 수 있는 길은 음란한 서적과 음란한 비디오를 많이 보게 하여 이성을 잃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였더니 마귀들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였으나 그것만이 제일 좋은 방법은 아니라고 말했다. 다음에 일어난 마귀는 “술로 세상을 망치게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 의견도 최선책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마지막으로 늙고 꾀 많은 마귀가 일어나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이야기한 위의 의견은 다 좋다. 그러나 나는 사람들로 하여금 회개와 선행을 자꾸 뒤로 미루는 마음을 심겠다.” 그러자 마귀들은 모두 이률 찬성했고 박수까지 보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번에는 말고 다음 주에 고해·“성사를 보면 되지,착한 일을 꼭 이번에 할 필요가 있나? 다음에 여유있을 때 해도 늦지 않아……“하면서하루 이틀,한달 두 달 미룬다. 우리들아 이렇게 회개와 선행을 자주 미루는 약점을 이용하여 마귀는 유혹해 온다. 특히 회개를 미루는 것은 마귀의 가장 큰 유혹이다. 주님께서 “도둑이 언제 올지 모른다. 그러니 게으르지 말고 항상 준비하고 있어라”고 하시는 말씀을 새겨 듣고 회개에로의 초대에 미적미적거리지 말고 즉시 행동에 옮기도록 하자.

5. 마무리 묵상

예수께서는 참된 포도나무이시고 우리는 그의 가지들이다. 그분과 함께 일치 되어 생활하는 사람은,그분의 말씀으로 양식을 삼고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이미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 주님의 초대를 감사히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자.

연중 제28주일 : 10월 14일

1. 독서의 배경과 주제

제1독서(이사 25,6-10) : 이사야 예언자는 구원의 시대, 메시아의 날을 노래한다.시온 산은 수많은 제사와 번제를 올리던 곳으로,야훼 하느님의 어좌이며 하느님 현존의 장소이다. 이 시온 산에서 만군의 주님 야훼께서 모든 민족을 위한 잔치를 마련하실 것이다. 모든 민족이 한 형제석럼 참여하여 먹고 마시는 이 잔치에서 그들은 야훼께서 하느님이심을 승복하고 그를 찬미하리라. 구원의 날이 도래하면, 야훼 친히 모든 사람의 눈물과 슬픔과 수치를 제거해 주시고, 사람들 의 눈을 가려 하느님을 알아뵙지 못하게 해왔던 모든 장애물을 없애 주시리라. 이에 모든 사람이 하느님을 알아 모시고 그 뜻에 맞갖은 새 삶을 살아가리라. 여기에는 이미 죽음이 더 이상 그 힘을 떨치지 못한다.

제2독서(필립 4,12-20) :사도 바오로는 아무에게도 신세를 지지 않고 혼자서 자신의 생계를 유지해 나가는 일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필립바 교회의 도움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은인들에게 감사드리는 것을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것으로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은인들에게도 자비를 베푸셨기 때문이다. 위험과 곤경 중에 바오로는 하느님의 권능과 사랑을 체험한다.

복 음(마태 22,1-14) : 오늘 복음의 왕궁의 혼인 잔치 비유는 하느님의 관용과 인내심을 잘 드러내는 동시에 하느님의 의노와 준엄하신 심판도 보여 주는 비유이다. 축제의 기쁨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주님의 초대에 응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준비하시고, 오는 사람들은 무료로 대접을 받을 수 있는데,오직 하나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것은 하느님의 선물을 받아들이는 자세이다. 즉 하느님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고 기뻐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2. 강론 핵심

이 세상의 모든 기쁨은 사실 따지고 보면 장차 올 기쁨의 맛을 잠깐 보는 것에 비길 수 있다. 마치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이 장래 부활의 모습에 비해볼 때 하나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듯이 말이다. 즉 영원히 머물 기쁨과 아름다움의 한 조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왕궁의 결혼 잔치는 영원한 기쁨의 표시이다. 그러므로 신자는 고통 중에서도 하느님의 손길이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날이 올 것 을 기대하며 희망을 잃지 않는다.

3. 교부들의 가르침 : 혼인 잔치의 초대를 거절한 유다인들

유다인들은 고집을 부려 회개할 줄을 모릅니다. 조금도 수그리지 않고 개선하지 않으나 이보다 더 큰 죄가 있겠습니까? 그들은 세 번의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첫째 잘못은 그들이 예언자들을 죽인 것이고, 둘째 잘못은 그들이 하느님의 아들을 죽인 것이고,셋째 잘못은 그들이 잡아 죽인 분께서 그들을 초대하셨는 데도 나타나지 않고 반대로 소와 밭과 부인의 일로 핑계를 대고 도망친 데 있습니다. 이 핑계들이 무슨 중요한 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서의 교훈 말씀의 뜻대로 육신의 일보다 영혼의 일을 더 중요시 여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육신의 일은 우리의 영신의 일을 방해합니다.

“초청을 받은 사람들에게 가서 어서 잔치에 오라고 하여라.” 이 초청 말씀은 이제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에 주어진 초대입니다. 그러므로 유다인들의 잘못이 더 큰 것이 드러납니다. 그들이 언제 초대받았습니까?

예언자들을 통하여 초대받았고 그 다음엔 그리스도의 오심을 증거한 세자 요한을 통하여 초대받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초대를 받았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마태 11,28),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요한 7,37). 주님은 그들을 말씀으로만 초대하지 않고 그분의 행동으로 초대하셨습니다. 주님은 승천하신 후에는 베드로와 사도들을 통하여 초대를 계속하십니다. 유다인들이 주님을 보고,싫어서 잡아 죽였지만 주님은 그들을 제자들을 통하여 초대하십니다. 왜 초대하십니까? 고생하라고,노동하라고 힘든 일에 부르십니 까? 절대 그렇지 않고 기쁨에로 초대하십니다. 얼마나 융숭한 잔치상으로 부르시는지 보십시오!

그런데도 유다인들은 회개의 마음을 갖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주님의 자비가 너그러우실수록 그들의 마음은 더욱 완악해졌습니다. 그들이 나타나지 않은 것은 주님의 초대를 혈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데 그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 중에 몇 사람이 소의 거래를 핑계로, 또 결혼을 핑계로 초대를 거절한 것은 무슨 뜻입니까? 이런 이유가 정당한 사유가 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영혼 사정에 관한 일에 대해서 소홀히 하는 데는 합당한 이유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들이 주님의 초대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사실을 가리는 핑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들의 정말 큰 잘못은 초대에 응하지 않은 것뿐 아니라 주님의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조롱하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한 죄악을 저지른 것입니다. 이 점에 서 그들은 처음의 잘못보다 훨씬 더 중한 과오를 행한 것입니다. 전에 설명한 비유들에 나오는 종들은 도조를 받으러 온 사람들이었기에 미움을 당하였지만 이 비유에 나오는 종들은 죽임을 당하신 주님의 혼인 잔치에 초대하러 왔었기 때문 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을 살해하였습니다. 이것보다 더 미친 짓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바오로 사도는 유다인들을 꾸짖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유다인들은 주님이신 예수와 예언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몰아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느님의 마음을 상하게 해드리고 모든 사람의 원수가 되었습니다”(1데살2,16).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유다인들이 주님의 초대에 응하지 않을 뿐더러 종들을 죽이기까지 했으므로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동네를 불살라 버리시고 군대를 풀어서 그 살인자들을 잡아 죽이게 하셨습니다. 이 말씀으로·그리스도께서는 후에 베스파시안 황제 치하에서 실제로 일어날 일을 미리 예언하신 것입니다.

유다인들이 주님께 대한 그들의 불신앙으로 하느님 아버지의 의노를 사게 된 사실을 미리 일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벌하시는 분은 하느님 아버지이십니다. 하느님은 그리스도를 처형한 후에 즉시 그들을 치신 것이 아니라 40년을 더 참으시고 그들이 스데파노룰 돌로 쳐 죽이고 야고보를 살해하고 사도들을 잡아 죽였을 때 벌을 내리셨습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얼마나 인내하시는 분인 가를 잘 나타냅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마태 복음 주해서 69,1)

4. 예화 : 하느님께 바치는 교무금의 정성과 축복

한번은 어느 본당 신부가 처음으로 판공 때 교무금을 책정하기로 하였다. 그 전에는 신자 자신들이 알아서 마음 내키는 대로 바치게 하였었다. 그런데 차 사업을 하는 사람이 와서 모든 여건이 그 전과 같지 않아 사업에 차질이 많이 생긴다는 말을 하면서 교무금을 바치는 데 큰 부담이 되니 작년의 반으로 책정해 주었으면 하고 제의하였다. 본당 신부는 딱한 사정을 듣고 내년 교무금은 그럼 반으로 줄여서 바치라고 허락하였다. 조금 후에는 빵을 만들어 파는 빵장수 아저씨가 들어와서 밀가루, 설탕 등 재료값은 자꾸 오르고 장사는 잘 안되어 형편이 안 좋다고 말을 꺼내었다. 본당 신부는 지레 짐작에 교무금을 내려 책정해 주려 고 작년의 반으로 줄여서 내시라고 말씀하시니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여태껏 하느님께 제대로 바쳐 본 적이 없어 사업도 축복을 못 받는 모양이라고 하면서 작년보다 두 배로 교무금을 바치겠단다. 본당 신부는 그러지 말라고 하면서 무책. 임하게 약속만 해놓고 감당할 수 없게 되면 냉담할 수도 있으니 차라리 냉담만 이라도 하지 말고 교무금은 나중에 더 낼 수도 있으니 절대로 무리하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그러나 그 사람은 막무가내였다. “이래 망하나 저래 망하나 어차피 망할 것, 한번 하느님께나 왕창 바치고 망하면 욕이라도 안 먹을 것”이라고 하면 서 부득이 우겨서 교무금을 두 배로 바치기로 책정하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시외버스 정류소가 그 빵집 앞으로 이전하여 매일 손님이 들락거리는데 감당할 수가 없이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는 것이었다. 수입은 열 배나 뛰어올라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한다는 것이었다. 차 사업하는 사람은 어떻게 되었나 궁금해서 물어보았더니,큰 아들이 대형 면허를 따서 새로 산 덤프 트럭을 가지고 시운전을 해보고 온다더니 차로 새로 지은 남의 집을 들이받아 삼천만원 손해 배상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하느님께 드리는 것을 뺏기는 것으로 아는 신자들이 많은데 몰라서 그렇다. 다 자신들의 축복을'주시는 분이 하느님 이신 걸 왜 모를까?

5. 마무리 묵상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축제와 기쁨에로의 초대가 우리에게 늘 호감이 가는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많은 냉담 신자들이 있다는 것이 그 증거라고 볼 수 있다. 주님께로 하루속히 돌아오라고 권고해도 듣지 않는 때가 더 많다. 어떤 사람은 영세받은 지 30년이 넘어서 안 믿을 수도 없고 해서 그냥 다니는 거란다. 우리를 위하여 생명을 바치시고 온 사랑을 다 베풀어 주신 주님께서 그 사람을 살리려고 믿음에로 초대하셨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는 것은 교육의 부족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정성이 부족한 때문이다. 하느님께 바치는 정성이 항상 꼬리 부분에 놓여 있는 사람은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 주일에도 남에 게 정성을 주기 전에,다른 일에 기운을 뺏기기 전에 먼저 하느님께 첫 정성을 드리려고 새벽 미사에 나오는 신자가 있는가 하면 궐하면 대죄가 되어 고백성사를 받아야 하니까 마지 못해서 찌꺼기 정성을 가지고 나오는 사람도 많다.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초대에 응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주님께서는 훗날 모르는 사람 대하듯이 심판하실 것이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다 초대하시지만 우리가 응하느냐 혹은 거절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정해질 것이다.

연중 제29주일 : 10월 21일

1/ 독서의 배경과 주제

제1독서(이사 45,1-6) : 세계사의 큰 사건 안에 있어서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는 하느님의 손 안에 있는 존재이다. 하느님은 그에게 명예와 권세를 허락하였다. 538년에 고레스는 바벨을 점령하고 바빌로니아의 유배를 끝내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아 고향으로 돌아오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세상의 역사 안에서 하느님의 심판과 자비가 드러난 것이다.

제2독서(1 데살 1,1-5) : 데살로니카 전서는 신약성서 중에서 제일 오래된 성서이다. 사도 바오로는 이 서간을 예수께서 돌아가신 지 20년밖에 안되어서 쓴 것이다. 50년경에 바오로는 데살로니카 교회를 세웠고(사도 17,1냉) 그곳을 떠나온 후에도 항상 소식을 주고 받았다. 그는 그곳 교회가 내적으로 성장하여 강건해진 사실을 듣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기쁜 마음에 가득 찼다. 실천으로 옮겨지는 믿음,희생으로 실천하는 사랑과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희망,이 세 가지는 하느님의 성령이 교회 안에 살아 계시다는 표시이다.

복 음(마태 22,15-21) :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로마 제국의 황제가 하느님의 땅인 이스라엘에서 백성들로부터 세금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는지 예수께 질문을 던진다. 예수께 질문하는 사람은 자기가 얻고자 하는 대답보다 더 듣게 되는 모험을 시작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질문에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라” 하고 대답하셨다. 이 말씀은 겉으로 보기에는 두 가지 명령같이 보이지만 사실상 중심은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바치라는 명령에 놓여 있다. 카이사르나 세금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공경이 더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2. 강론 핵심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려고 할 때 인간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지금까지의 생활 방식과 사고 방식을 종결하고 새로운 하느님의 가르침을 따르느냐 아니면 전의 생활을 그대로 계속하느냐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씀과 같이 그리스도를 믿게 되는 순간에 지금까지 죄에 물들었던 정신을 새롭게 재창조하시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 진리와 빛을 따를 각오를 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입으로만 따를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 바치던 정성을 이제는 하느님께로 돌려 모든 생활의 기준을 하느님 안에 두는 생활을 택해야만 올바른 신앙 생활이 가능하다.

3. 교부들의 가르침 :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두 가지 함정

유다 나라가 로마인들의 통치 하에 들어가자 유다인들은 그들에게 세금을 바쳐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전에 테우데스타는 사람과 유다라는 사람이 한번은 세금 납부를 거부하다가 민중을 선동했다는 죄를 뒤집어 쓰고 추종자들과 함께 사형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실을 아는 유다인들은 이번에는 주님을 그 런 혐의를 받게 하여 죽이려고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그들은 예수의 말씀을 트집잡아 올가미를 씌울까 하고 자기네 제자들과 헤로데 당원들을 예수께 보낸 것입니다. 이렇게 한 것은 두 가지로 예수께 그물을 뒤집어 씌우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에 주님께서 헤로데 당원들의 뜻과 같아 대답하셨더라면 고발할 계획이었고,그렇지 않고 주님께서 자가들과 같이 생각하고 답하신다면 다른 사람들이 그를 판단하게 만들 계책을 세운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드라크마 두 개를 세금으로 바친 것을 알았습니다. 유다인들은 이렇게 양쪽으로 그물을 쳐놓고 어느 한쪽으로라도 주님을 잡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들이 더 바랐던 것은 예수께서 헤로데 당원들을 거슬러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다인들은 자기네 제자들을 보내어 주님을 흥분시켜 말을 꺼내게 만들어 왕에게 반역자로 끌고 갈 생각이었습니다. 루가 복음 사가는 그들의 이런 의도를 알아차렸고 그래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유다인들의 제자들이 예수께 질문을 던졌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유다인들은 증인들을 확보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일이 다르게 전개되었습니다. 많은 수의 사람들은 예수님에 의해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어리석음이 밝히 드러나는 사건의 증인 몫을 하였습니다. 유다 인들의 아첨과 위선에 찬 함정도 밝혀진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대답을 유도하는 질문으로 주님께서 헤로데를 모욕하는 말을 하게 하며 헤로데의 왕권을 노린다는 의심을 받게 하려는 흉계를 꾸민 것입니다. 그렇게만 되면 주님은 반역자로 몰려 처벌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들이 주장한 “선생님은 겉모양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도 꺼리지 않으신다"라는 말은 바로 주 님께서 카이사르와 헤로데를 우습게 보는 말을 하게 만들려는 수작입니다. 그리고는 주님께 질문을 던집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의견을 듣고자 합니다."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이 질문으로 유다인들은 주님께 존경을 표하면서 주님을 선생님으로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간계를 주의 깊게 관찰하십시오. 그들은 절대로 “어떤 것이 좋습니까? 유익한 것이 어느 것입니까?”라고 묻지 않고, 주님 생각은 어떠한지를 묻습니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오직 한 가지,주님을 고발하여 통치자와 원수가 되게 만들려는 것입니다. 마르코 복음사가도 그들이 주님의 속을 떠보려는 계략을 알아채고 복음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마르 12,14). 이렇게 유다인들은 복수심을 가지고 있었고 위선을 떨며 올가미를 씌우려고 하였습니다. (요한크리소스토모, 마태 복음주해서 70,1)

4. 예화 : 함정이 있는 두 가지 질문

옛날에 한 지혜로운 스승이 살았는데 사람들이 그를 사랑하고 몹시 따랐다. 시기심이 많은 한 사람이 그를 우습게 만들려고 계책을 꾸며 찾아왔다. 그는 위선을 떨며 존경하는 것처럼 이렇게 말을 꺼냈다.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존경하고 따르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당신이 얼마나 지혜로운지 저에게도 보여 주시오" 그리고는 손에 생쥐를 쥐고 등 뒤로 돌려 숨기고는 알아맞추는지 보려고 물었다. “내 손 안에 들어 있는 것이 무엇인자 알아 맞춰 보시오" 그 스승은 쥐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살아 있는 쥐인가 아니면 죽은 쥐인가 하고 물었다. 만일 스승이 살아 있다고 하면 손에 힘을 가해 눌러 죽여 버리고는 틀렸다고 할 판이었다. 그렇지 않고 죽은 쥐라고 대답하면 살아 있는 채로 내 보일 생각이었다. 스승은 그의 계교를 알아차리고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 쥐가 살아 있는 건지 죽은 건지는 당신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부끄러워 물러갔다. 주님께 올가미를 씌우려고 질문을 던지는 자보다 순직한 믿음으로 뒤에서 그의 옷자락을 만진 사람이 훨씬 더 큰 은혜를 받았듯이 우리의 자세도 좁은 지성으로 주님의 도리를 도마 위에 올려 놓고 요리를 하려는 자세를 버리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5. 마무리 묵상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라." 이 말씀은 하느님께 모든 것을 돌리라는 뜻이다. 하느님의 것이 아닌 것이 이 세상에 무엇인가? 생명, 숨, 공기, 물, 바 탐,태양빛,산, 길, 땅,집, 온 우주 만물이 다 하느님의 것이 아니고 누구의 것인가?

연중 제30주일 : 10월 28일

1. 독서의 배경과 주제

제1독서(출애 22,20-26) :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야 하는 율법들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상과 맺으신 계약에 기초를 두고 있다. 하느님의 계약을 지켜야만 이스라엘 백성은 존재할 수 있다. 오늘 독서에 나오는 율법은 과부들과 고아들 과 같이 가난한 사람과 약한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다.

제2독서(1 데살 1,5-10) : 그리스도께 속하게 된 사람은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느님께 돌아온 사람이다. 살아 계신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고 움직이시는 분이시다. 하느님께서 예수를 죽음에서부터 살리시고 그에게 세상을 멸하고 구원할 수 있는 권능을 주신 것을 보아서 알 수 있다.

복 음(마태 22,34-40):유다의 율법학자들은 통틀어 성서 안에서 248개의 명령과 365개의 금지 명령을 갖고 있었는데 그중에서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한 것 인지 묻는 말에 예수께서는 분명한 대답을 하신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 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고,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둘째 계명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 두 계명이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이다(마태 22,34-40). 사랑이 없으면 다른 모든 계명도 다 지킬 수 없다. 사랑이 모든 계명의 골수를 이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일치시켰다. 그리고 당신의 말씀과 행동으로 사랑의 계명의 일치를 몸소 보여 주셨다.

2. 강론 핵심

살아 계신 하느님을 진심으로 찾으려는 사람은 그분을 발견하게 된다. 하느님을 찾은 그는 하느님을 자기 혼자만을 위해 간직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알려 사랑받으시게 해드리려는 열정에 사로잡히게 된다. 하느님께로부터 사랑을 받는 사람은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초대 교회의 신자들은 가난하였지만 그들의 믿음이 강하여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알리는 힘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 신자를 보면 감탄하며 “보라, 그들이 얼마나 서로 사랑하는지! “라고 말하였다.

3. 교부들의 가르침 : 첫째가는 계명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 하라.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고,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둘째 계명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 두 계명이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이다.

왜 주님께서는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까? 그 이유는 둘째 계명이 첫째 계명에게 길을 마련해 주고 첫째 계명의 도움으로 지켜지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계명의 핵심은 그러므로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이 두 계명이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질문한 사람은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가 하고 물어보았는데 주님께서는 더 자세히 첫째 계명뿐 아니라 첫째 계명에 이어지는 둘째 계명도 가르쳐 주십니다. 이 답으로 주님께서는 질문을 던진 사람의 의도를 수정해 주시려고 하셨습니다. 질문을 던진 사람은 예수님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으로 던졌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그러나 이웃을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는 법입니다(1고린 13,4). 그런데 마태오 복음사가는 한 율법 교사가 예수님의 속을 떠보려고 질문을 하였다고 기록하였는데 마르코 복음사가는 “예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너는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와 있다'하고 대답하셨다”(마르12,32)고 기록하였습니다. 서로 상반되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두 분의 복음사가의 말씀은 서로 잘 일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 바리사이파 사람이 주님을 시험해. 보려고 질문하였지만,주님의 대답을 듣고는 유익한 도움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주님께서도 그를 칭찬하셨던 것입니다. 처음부터 그를 칭찬하시지 않으시고 그가 이웃에 대한 사랑이 번제물과 희생 제물을 바치는 것보다 훨씬 더 낫다고 대답한 후에 그를 칭찬하셨습니다. 그가 허영을 버리고 덕행의 길로 들어서신 것을 보시고 그에게 “너는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의 계명과 그 밖의 모든 구약의 율법들이 이 사랑의 계명을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그를 칭찬하셨지만 완전한 칭찬아 아니라 한계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와 있다”는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아직도 완전 히 도달하지는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이 말씀으로 그를 더욱 열심히 사는 길로 자극하시어 그가 부족한 것을 채우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마태 복음 주해서 71,1)

4. 예화 : 원수를 친구로 만든 황제 이야기

옛날에 한 중국 황제가 있었다. 그는 나라들을 침공하여 원수들을 전멸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한 그가 원수들과 함께 앉아 식사를 하며 농담을 주고받는 것을 본 신하들이 이상하게 여겨 물어보았다. “폐하께서는 원수들을 다 전멸하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러자 그 황제는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을 전멸시킨 것이다. 그들을 나의 친구로 만들었으니까 말이다.” 그리스도께서도 원수들을 사랑으로 이기신 분이시다. 원수들을 회개시켜 당신 편으로 만드시기 때문이다. 사랑의 무기로 죄악과 미움을 쳐 이기신 분이시다. 아무리 악한 사람도 주님의 한없는 사랑을 당해낼 자 없으리라.

5. 마무리 묵상

가장 큰 계명의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시험 문제이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이웃 안에서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성사 안에 계신 주님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택하시어 그들이 믿음으로 부유해져서 하늘나라의 상속자들이 되게 하셨다. 현대 사회의 가장 큰 병은 사랑을 주려는 마음이 부족한 데 있다. 흉악한 범죄가 일어나는 것은 다 타인을 사랑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자연의 오염도 사랑의 결핍 때문이다. 모든 죄가 사랑이 없는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