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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권 교회의 성화 임무
1999년 3월호 (제 242호)
제 7 장 혼인성사7. 조사 결과의 통보제1070조:혼인을 주례할 본당 사목구 주임 이 외의 다른 이가 조사...

주일의 말씀
1999년 3월호 (제 242호)
예수 부활 대축일/부활 제2주일/부활 제3주일/부활 제4주일4월 4일:예수 부활 대축일친애하는 형제 자매 ...

한국 천주교 사회 복지사
1999년 3월호 (제 242호)
1. 서론1) 문제 제기와 연구 목적교회는 지상에서 하늘 나라를 향해 순례하는 하느님 백성들의 모임이다. ...

시편 4편을 중심으로
1999년 3월호 (제 242호)
2. 본문의 문학적 이해1) 유형시편을 해석하기 위하여 그 시가 어떤 유형에 속하는지를 아는 것은 매우 중...

사회 생활과 회개
1999년 3월호 (제 242호)
이번 달에는 회개를 사회 생활과 관계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 우리는 혼자서 살 수 없다. 서로 의지하며...

창조 신앙과 자연 이해
1999년 3월호 (제 242호)
생태학과 신학적 연관성이 가장 잘 연결되는 주제가 창조론이다. 왜냐하면 이 두 주제는 공통적으로 땅과...

교회의 혼인 교육을 위한 서론
1999년 3월호 (제 242호)
오늘날 ‘혼인’이란 그리 명확한 것이 아니다. 화려한 시장의 논리와 급격한 사회 변동에 따른 가치관의 ...

성 정하상 바오로 성당
1999년 3월호 (제 242호)
사목자료 성 정하상 바오로 성당 (http://www.stpaulchong.org) 노희성(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행정실 ...

칼 바르트와 토마스 머튼
1999년 3월호 (제 242호)
사목자료 칼 바르트와 토마스 머튼 토마스 M. 킹(예수회) 칼 바르트와 토마스 머튼의 공통점 1968년 ...

서울의 성지와 사적지
1999년 3월호 (제 242호)
성지1)나 사적지 순례는 전통을 되찾는 일, 곧 ‘고유한 전통의 회복’ 또는 ‘우리 것의 자리 매김’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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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3월호 (제 242호)

칼 바르트와 토마스 머튼

킹, Th. M.

사목자료


칼 바르트와 토마스 머튼


토마스 M. 킹(예수회)


칼 바르트와 토마스 머튼의 공통점
1968년 12월 11일자 「뉴욕 타임즈」에 두 사람의 사망 기사가 실렸다. 한 사람은 하루 전인 12월 10일, 82세의 나이로 스위스에서 사망한 개신교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년)였고, 다른 한 사람은 같은 날 53세의 나이로 태국 방콕에서 사망한 가톨릭 신학자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1915-1968년)이었다. 1998년 12월 10일은 그 두 사람이 사망한 지 30년 되는 날이었다.
두 사람은 많은 저술을 남겼으며, 자신들의 교회에 대하여 호된 비판을 가하는 독실한 교인이었다. 두 사람은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그들이 살던 나라의 군사 정책을 비난하는 사회 활동가였다(바르트는 오랫동안 독일에 살았다.). 두 사람은 젊은 나이에 종말론적 메시지가 담긴 저서로 유명해졌다. 바르트는 1919년 독일어로 초판된 「로마서 주석」(Epistle to the Romans), 머튼은 1948년의 자서전 「칠층산」(The Seven Storey Mountain)을 통해서였다.
이 두 사람의 신학에도 뚜렷하게 비슷한 점들이 있었다. 두 사람은 하느님의 근본적인 초월성을 선언하였다. 바르트에게, 하느님은 “피조물의 순수 부정”으로 나타난다. 머튼에게, “진정한 하느님 신비 체험과 하느님 외의 모든 것에 대한 극도의 포기는 일치한다.” 그러므로 두 사람이 역설적으로만 하느님에 대하여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당연했다. 바르트에게, 하느님은 “알려지지 않은 분으로 알려지고, 침묵 가운데 말씀하신다.” 머튼도 “하느님을 아는 것은 알지 못하는 것이며, 하느님을 보는 것은 보지 못하는 것이다.”고 기술하였다. 따라서 이 두 그리스도인은 우리가 악마, 우상화한 자기 모습을 떠올리지 않도록, 하느님에 대하여 하나의 관념만 발전시키는 것을 경고하였다. 하느님의 초월성을 깨달은 두 사람은 지상 사물을 장난스럽게 여기게 되었다.

칼 바르트의 거대한 종소리
칼 바르트는 스위스 개혁 교회에서 견진 준비를 하던 16세 때, 조직 신학에 투신하기로 마음먹었다. 공부를 마치고 목사가 된 다음에 제네바에서 부목사로 일하였고, 그 후 소도시의 주임 목사로 봉직하였다. 그가 설교하는 법을 배운 곳은 바로 노동자들이 ‘종교’에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던 이 소도시였다. 그는 자신이 연마한 신학에 대하여 혼란을 느끼고, 그의 양들에게 제시할 새로운 신학을 나름대로 모색하였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인상적으로 묘사하였다. “나는 마치 교회 종탑의 어두운 계단을 침착하게 오르려 애쓰다가 계단 난간을 잡으려 손을 뻗었는데 난간 대신에 종을 울리는 밧줄을 잡은 사람처럼 보인다. 그는 공포에 떨면서 거대한 종이 예전에 그에게 들려 주었던 소리와 그에게만 들리지 않았던 소리를 경청하여야 했다.”
거대한 종소리가 537면의 「로마서 주석」을 관통하였다. 바르트는 이 논문에서 성서는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아니라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이해를 담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곧 하느님은 하느님이시고, 그분께서 우리의 구원 계획을 세우셨다는 것이다. 인간의 지식은 공허, 갈망 그리고 불만에 직면할 뿐이다. 그러나 이들 위에 “저주로 용서하시고, 죽임으로 생명을 주시며, 오로지 ‘안 된다’(No)는 말만 들릴 때 ‘오냐’(Yes) 하고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신의”가 드러난다.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은 미지의 하느님으로 알려진다.
바르트는 (신학의) 방향을 180도 바꾸는 것에 대하여 말하였고, 실제로 그렇게 하였다. 그와 같은 시대의 독일인 가톨릭 신자 칼 아담(Karl Adam)은 「로마서 주석」의 영향에 대하여 “그것은 신학자들의 운동장에 포탄처럼 떨어졌다.”고 묘사하였다. 아돌프 윌리케어(Adolph Ju촯icher)는 바르트를 사교(邪敎)를 창설하려고 하는 영지주의자로 간주하였고, 아돌프 하르낙(Adolph Harnack)은 한때 자기의 학생이었던 그의 말을 들었을 때 불신에 쌓여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종소리는 그 후 45년 동안이나 바르트의 강의, 토론, 저서, 특히 미완의 대작 「교회 교의학」(Church Dogmatics)에서 계속하여 울렸다. 논쟁도 그치지 않았다. 또 하나의 저명한 독일인 개신교 사상가인 에밀 브루너(Emil Brunner)는 바르트가 자연 신학을 거부하는 것에 대하여 비난하였다. 미국에서는 루터 교회의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가 바르트의 자연 윤리학 부정은 무책임하고 부적절하다고 말하였다.
바르트는 한때 종교 개혁을 그리스도교에 필요한 분열이라고 보았다. 바르트가 보기에 종교 개혁자들은 존재의 유비(analogy of being)에 대하여 토마스 데 아퀴노가 오해한 것에 바탕을 둔 로마 가톨릭 신학을 거부하여야 했다. 그러나 스위스의 두 가톨릭 신학자는 바르트에게 자신의 판단을 재고하도록 만들었다.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살(Hans Urs von Balthasar)은 바르트에게 토마스 데 아퀴노와 가톨릭 교회가 가르친 신학이 그 자신의 신학과 가깝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바르트는 한스 큉(Hans Ku촱g)에게서 그와 트리엔트 공의회가 종교 개혁의 주요 교리 문제인 의화(義化, justification)에 관하여 거의 같은 말을 하였다는 것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토마스 머튼의 위대한 침묵
바르트가 가톨릭 사상을 재평가할 때에, 켄터키 주의 트라피스트회 수사 토마스 머튼은 개신교 사상을 재평가하고 있었다. 젊은 저술가로서 머튼은 이것을 “선의의 어리석음”으로 불렀다. 머튼은 바르트의 저술을 읽고 그를 아주 좋아하게 되었다. 사실 그는 바르트를 “현존하는 신학자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분의 하나”라고 하였다.
바르트가 그의 거대한 종을 울리기 시작하였을 때, 토마스 머튼은 네 살이었다. 그러나 머튼은 이것에 관하여 전혀 알지 못하였고, 아무런 종교 교육도 받지 못하고 성장하여 자신을 무신론자로 여겼다. 나중에 그는 무신론을 내던지고 가톨릭 신자가 되었으며, 26세에는 켄터키 주에 있는 게쎄마니의 성모 대수도원의 시토회 수사가 되었다. 이 젊은 트라피스트회 수사가 그의 자서전을 썼을 때, 그 소리 또한 그리스도교 세계에 울려 퍼졌다. 침례교 신학생들과 감독파 주교들이 그의 수도원을 방문하였다. 흑인 활동가인 엘드리지 클리버(Eldridge Cleaver)는 감옥에서 「머튼 수사」(Brother Merton)를 읽었다.
「칠층산」은 금새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그 책에서 머튼은 안정을 찾지 못하던 유럽 여행, 캠브리지 대학교의 힘겨웠던 생활 그리고 뉴욕 시 콜롬비아 대학교 교실의 학문 탐구를 상기하였다. 그는 가톨릭 신자가 되고 또 켄터키의 수도원에 들어간 것에 대하여 기술하였다. 수도원에서 그는 영적 기쁨을 발견하고 여생을 거기에서 보내기로 서원하였다. 그러나 마지막 부분에 가서 그는 자신이 여전히 안정을 찾지 못한 신자임을 암시하였다. “책은 끝나지만 탐구를 멈추어서는 안 된다.” 나중에 간행된 다른 저서들에서 그 힘겨운 탐구는 계속되었다.
바르트와 마찬가지로, 머튼도 밤에 교회 종탑에 오르는 것에 관하여 기술하였다. 그의 에세이 「화재 감시, 1952년 7월 4일」(Fire Watch, July 4, 1952)은 언제나 그의 가장 인기 있는 작품 가운데 들었다. 그가 자신의 성소를 이해하기 위하여 몸부림치던 때에, 그는 수도원의 야간 화재 감시 당번이었다. 그는 “화재 감시는 양심 성찰이다. 여기서 감시인으로서 당신 임무가 갑자기 참된 빛 안에 나타난다. 이 빛은 하느님께서 당신을 격리시켜 어두운 마음 안에서 등불과 질문으로 당신의 영혼을 탐색하기 위하여 마련하신 것이다.” 하고 적었다.
그가 어두워진 계단을 걸을 때, 하느님께서 그를 뚫어지게 살피시자 그의 인간적 동기는 사라지고 인간적 욕망도 공허한 환영으로 흩어진다. 그는 교회 종탑의 부서진 계단을 오르고 종루에 이르러 “제 죽음의 순간이 이렇게 오게 됩니까?” 하고 묻는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인간 세계를 초월하시는 분, 유일한 대답은 침묵뿐이다. 그런데 그 침묵이 그를 들어올려 계속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보인다. “세상을 통하여 당신과 나누는 대화는 언제나 시간이 지나면 제 자신을 반성하는 대화로 끝납니다. 당신께서 산을 택하시어 구름으로 뒤덮고 불 속에서 모세의 마음에 당신 말씀을 새기시지 않는다면, 당신과 할 수 있는 아무런 대화도 없습니다. 돌판에 쓰여져 모세에게 전하여진 것은 번개와 천둥의 열매로서 이제 우리의 숨결만큼이나 조용하게 우리 자신의 영혼 안에 더욱 완전하게 태어납니다.”
이것이 머튼 신학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우리는 초월적 존재인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계시하실 때에만 그분을 안다. 그날 밤 머튼에게 하느님의 계시는 그분의 침묵이었지만, 그 침묵에서 내밀한 자비가 흘러 나왔다.

두 사람이 남긴 것
바르트도 머튼이 발표한 이런 내용의 글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두 사람은 인간적인 교회 공동체의 일부였다. 두 사람은 동료 신자들에게 하느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시지만 철저한 타자(他者)로서, 신비 안에 감추어진 분으로서 자신을 계시하셨다고 말하였다. 이 메시지를 전하는 데에 사랑하는 교회 공동체 위의 어두운 종탑을 오르는 모습보다 더 나은 모습을 찾아낼 수 있었을까?
그들의 저서는 그리스도 교회들에 남겨진 일종의 유언이 되었다. 그리스도인은 그 저서들을 읽음으로써 자기 동기의 공허함과 미지의 하느님께 대한 갈망을 발견할 수 있다. 인간적 공허감을 지나면 하느님의 자비를 발견하는 침묵으로 들어갈 수 있다. 바르트나 머튼의 글을 읽고 나면, 그리스도인은 자기 자신에 대한 만족은 줄어들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한 신뢰는 더 커질 것이다.
머튼은 언젠가 바르트의 글을 보고 이렇게 덧붙였다. “칼 바르트,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느님의 자비를 믿으십시오. 당신이 신학자로 성장하였지만, 그리스도는 여전히 당신 안에 어린이로 남아 계십니다. 당신의 책(과 나의 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덜 중요합니다!”
칼 바르트가 이 충고를 고맙게 여겼을 것으로 믿는다. 왜냐하면 토마스 머튼처럼 그도 그 자비를 알았기 때문이다. 바르트와 머튼은 우리가 쉽게 잊어버리는 초월에 관하여 감동적인 증언을 남겼다. 그들이 죽은 지 30년이 지나서도, 밤에 교회 종탑을 오르는 모습은 초월적 존재인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온갖 모습을 넘어 어둠 속에 머무르고 계심을 여전히 교회들에게 상기시킨다. 위대한 종소리와 위대한 침묵은 계속해서 들리고 있다.

* 원문:Thomas M. King, S.J., “Karl Barth And Thomas Merton Climbing Church Towers At Night”, AMERICA, 1998. 12. 12.(Vol. 179, No. 19), 12-14면, 정병조 신부 편역.

* 저자 토마스 M. 킹은 미국 워싱턴 D.C. 조지타운 대학교의 신학 교수이며, 「머튼:아메리카 한가운데의 신비주의자」(Merton:Mystic at the Center of America, 1992)를 집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