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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권 교회의 성화 임무
1999년 3월호 (제 242호)
제 7 장 혼인성사7. 조사 결과의 통보제1070조:혼인을 주례할 본당 사목구 주임 이 외의 다른 이가 조사...

주일의 말씀
1999년 3월호 (제 242호)
예수 부활 대축일/부활 제2주일/부활 제3주일/부활 제4주일4월 4일:예수 부활 대축일친애하는 형제 자매 ...

한국 천주교 사회 복지사
1999년 3월호 (제 242호)
1. 서론1) 문제 제기와 연구 목적교회는 지상에서 하늘 나라를 향해 순례하는 하느님 백성들의 모임이다. ...

시편 4편을 중심으로
1999년 3월호 (제 242호)
2. 본문의 문학적 이해1) 유형시편을 해석하기 위하여 그 시가 어떤 유형에 속하는지를 아는 것은 매우 중...

사회 생활과 회개
1999년 3월호 (제 242호)
이번 달에는 회개를 사회 생활과 관계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 우리는 혼자서 살 수 없다. 서로 의지하며...

창조 신앙과 자연 이해
1999년 3월호 (제 242호)
생태학과 신학적 연관성이 가장 잘 연결되는 주제가 창조론이다. 왜냐하면 이 두 주제는 공통적으로 땅과...

교회의 혼인 교육을 위한 서론
1999년 3월호 (제 242호)
오늘날 ‘혼인’이란 그리 명확한 것이 아니다. 화려한 시장의 논리와 급격한 사회 변동에 따른 가치관의 ...

성 정하상 바오로 성당
1999년 3월호 (제 242호)
사목자료 성 정하상 바오로 성당 (http://www.stpaulchong.org) 노희성(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행정실 ...

칼 바르트와 토마스 머튼
1999년 3월호 (제 242호)
사목자료 칼 바르트와 토마스 머튼 토마스 M. 킹(예수회) 칼 바르트와 토마스 머튼의 공통점 1968년 ...

서울의 성지와 사적지
1999년 3월호 (제 242호)
성지1)나 사적지 순례는 전통을 되찾는 일, 곧 ‘고유한 전통의 회복’ 또는 ‘우리 것의 자리 매김’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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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3월호 (제 242호)

교회의 혼인 교육을 위한 서론

엄재중


오늘날 ‘혼인’이란 그리 명확한 것이 아니다.
화려한 시장의 논리와 급격한 사회 변동에 따른 가치관의 혼란 등으로 우리는 이미 그것을 체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혼인 준비는 단순한 ‘혼수품 준비’로 한정되고, ‘인격의 친교’(communio personarum)가 아니라 ‘혼수의 물물교환’이 혼인의 중대사로 인식되는 경우도 있다.
국내 거의 모든 백화점에 신혼 생활관이 마련되어 있다. ‘결혼’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 ‘결혼식’에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다. 예단, 예물에서 각종 가전 제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패키지로 제공된다. 이 패키지 목록들은 ‘완벽한 결혼 준비’를 지향한다. 하지만 그것이 ‘완벽한 결혼’을 보장하지 못함은 물론이다. 우리는 인생의 새로운 출발을 앞에 놓고 소외감에 젖지 않기 위해, 자신을 위안하기 위해 이 패키지들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오늘날 더욱 문제되는 것은 미혼 남녀의 결혼관이 크게 변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최근의 일도 아니고, 혼인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1) 그리 호들갑을 떨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의 의식이나 생각이 곧바로 사회적 결과로 반영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교회가 혼인 준비 교육을 느슨하게 해도 되는 이유가 될 수 없다. 오히려 각종 조사 결과와 지표를 혼인 교육의 강화 또는 정상화에 대한 표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결혼과 가정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은 보편적이지만 그것은 모두 특수한 사회적 문화적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일상 생활을 사는 남녀에게 관련된다. 따라서 교회가 자신의 봉사 임무를 완수하자면 오늘날 결혼과 가정이 놓여 있는 상황을 우선적으로 이해해야 한다.2) 특히 두 남녀의 상호 증여로 이루어지는 혼인을 가정의 기원으로 교회가 생각하고 있는 한, 혼인 준비는 가정 사목의 일환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이것은 사실 모든 교황 문헌들의 일관된 생각이다. 혼인이 어떻게 이루어지냐에 따라서, 혼인 준비 여하에 따라서 우리 가정의 모습이 달라진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가정과 결혼이 놓여 있는 상황은 어떤 것인가? 우리 가정의 현재 모습은 어떠하며, 결혼 후보자들인 20대의 미혼 남녀들은 도대체 결혼을 무엇이라고 정의하고 있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는데, 가장 기초적인 것은 여러 기관에서 발표한 설문 조사와 통계 자료를 이용하는 방법이 그나마 상황에 대한 객관적 이해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먼저 1990년대 가족의 형태를 간략하게 살펴보고, 한국 미혼 남녀의 결혼관과 한국 교회 20대 미혼 남녀의 결혼관을 상호 비교한 다음, 혼인 교육의 정체성 확보가 어떤 차원에서 가능할 수 있는지 성찰하여 보겠다.

1. 변하고 있는 1990년대 가정의 모습

산업화 이후 핵가족화와 가족 가치의 쇠퇴, 가족간의 유대감 상실, 이에 따른 사회 통합 의지의 좌절 등을 일컫던 개념인 가족 해체 현상이 이제 우리 사회에도 본격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1998 한국의 사회 지표」를 보면 이런 우려가 점차 현실화하고 있음이 나타나고 있다.
현재 우리 사회는 1인 가구, 여성이 가구주인 가구, 편부모 가구가 계속 늘고 있는 추세다. 1995년 1인 가구의 비율은 12.7%로 8가구 중 한 가구는 혼자 사는 가구인 셈이다. 또한 여성이 가구주인 가구는 2백 14만 7천 가구로 가구의 16.6%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1985년에 비해 43.0% 증가한 것으로, 1995년 현재 6가구 중 한 가구는 여성 가구주이다. 농촌 지역에서는 그 비율이 더 높아 5가구 중 한 가구가 이에 해당한다(19.0%).
자녀가 홀어머니 또는 홀아버지와 함께 사는 편부모 가구는 74만 4천 가구로 총 일반 가구의 5.7%에 해당된다. 1985년에 비해 25.3% 증가한 것이며, 같은 기간 도시 지역에서는 55.4%나 증가하였다. 이를 표로 집약하면 다음과 같다.
단위:천 가구

한편, 부부와 양친이 함께 사는 직계 가족과 부부, 양친, 자녀 등 3세대 직계 가족이 함께 사는 가족의 비율은 9.1%로 1970년 18.8%에 비해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1997년 초혼 평균 연령은 남자 28.7세 여자 25.9세이며, 남녀간 초혼 연령 차이는 감소세이다. 이혼 평균 연령은 남자 39.3세, 여자 35.7세로 나타났고, 재혼 평균 연령은 남자 41.9세, 여자 37.2세이다.
1997년 배우자가 있는 여성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자녀수는 2.2명으로 1994년과 같으나, 현재의 자녀수에 앞으로 더 낳기를 계획하고 있는 자녀수를 합한 기대 자녀수는 2.0명으로 조금씩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통계 수치를 길게 인용했는데, 이것들은 오늘날 우리가 결혼을 이해하는 데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혼인은 바로 이러한 가족 구성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핵가족의 비중은 60%에 이르렀다는것과, 1인 가구, 여성 가구주 가구, 편부모 가구의 증가세는 우리의 가족 형태의 주류가 변했음을 말하고 있다. 주류가 비주류로 밀려난 것이다.
이런 핵가족화는 당연히 가족에 대한 개념과 이상의 변화를 가져온다. 이제 직계 가족의 전통적 규범 대신 새로운 규범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 새로운 규범의 정립 속에서 혼인, 또는 혼인관이 변하지 않을 수 있을까?

2. 1990년대 20대 한국인의 성의식과 결혼관

1)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
1993년 월드리서치 연구소가 서울 지역에서 조사한 ‘20대 도시 여성들의 사랑과 결혼에 대한 태도’를 보자. ‘여성이 능력이 있으면 꼭 결혼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58%), ‘여러 사람과 연애하는 것이 좋다’(71%), ‘연하의 남성이나 나이 차가 많은 것이 결혼에서 문제되지 않는다’(78%), ‘사랑은 그냥 주는 것이 아니다’(69%), ‘여성이 먼저 결혼 신청을 할 수도 있다’(87%).3)
또 같은 해 부산 여대 학생 생활 연구소가 학생 3,513명을 설문 조사한 바에 따르면, 73.9%가 ‘결혼은 반드시 하지 않아도 된다’고 응답해서 ‘반드시 해야 한다’는 25.6%를 크게 압도했다. 이 조사에서 1990년대를 사는 20대 여성들의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결혼관을 엿볼 수 있는데, 곧 결혼을 일종의 선택의 문제로 환원시킨다.
그런데 이런 의식은 단지 여성들만의 것은 아니다. 1995년 중앙 개발 사보팀이 사원 1백명(남자 49명, 여자 51명; 20대 69명, 30대 29명, 40대 2명)을 대상으로 결혼관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 전체의 71%가 능력만 있다면 독신 생활도 바람직하다고 응답했으며 결혼은 꼭 적령기에 해야 한다는 사람은 29%에 불과했다.4)
이런 20대의 결혼관은 이전 세대의 그것과는 무척 달라 보이는데, 이에 대한 비교는 「중앙일보」가 창간 30주년을 기념하여 벌인 설문 조사에 잘 나타난다. 「중앙일보」 1995년 4월 15,16일 이틀에 걸쳐 게재된 이 조사에 따르면,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는 20대 여성은 12.4%, 20대 남성은 35.5%로 나타나 기성 세대의 생각(50세 이상 75.7%, 40대 47.7%, 30대 42.2%)과는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결혼을 ‘필수’가 아니라 ‘선택’으로 보는 것은 결혼 제도 자체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조사에 따르면 절반의 20대 여성(53.1%)이 ‘일부일처제’를 부정하고 있고, 사회적 제약이 없다면 독신(30.3%), 계약 결혼(19.3%), 동거(3.4%) 방식으로 살고 싶다고 응답했다. 20대 남성도 이에 대해서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는데, 계약 결혼(14.2%)이나 동거(11.3%)를 특별히 선호하고 있다.
이런 생각들은 모두 기존의 가부장적 역할이나 의무에 대한 회의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서 특별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2) 개방된 성, 자유로운 결혼
위의 생각들은 또한 현재 젊은 세대의 성의식이 과거와 분명히 단절되고 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혼전 순결을 지켜야 한다’는 명제에 20대 여성은 절반 이상이 공감하지 않는다(61.6%). 이것은 이전 세대가 ‘혼전 순결은 지켜야 한다’는 명제에 긍정적으로 답변(50대 이상 81.3%, 40대 67.3%, 30대 50.0%)한 것과 뚜렷이 대조된다. 실제로 20대 미혼 여성 중 성관계를 가진 경험이 있다는 여성은 26.6%로 이들은 평균 2.2명과 관계를 가졌다고 한다. 최초의 성경험을 가진 나이는 평균 21.6세이고, 18세 미만의 성경험자도 4.2%나 된다. 20대 미혼 남성의 성경험률은 61.6%로 이들은 평균 3.6명과 관계를 가졌고, 최초의 경험은 평균 20.6세다.
이런 성의식의 변화는 단지 미혼 남녀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20대 신세대 부부의 성의식도 동시대의 미혼 남녀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과반수 이상(60.8%)의 부부가 혼전에 성관계를 가졌다고 밝힌다. 더구나 이들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짝을 짓는 성윤리도 벗어나고 있다. 남편들의 경우 혼전 평균 3.20명, 혼후 아내를 포함 평균 2.27명과 성관계를 가졌다고 밝힌다. 아내들의 경우는 혼전 평균 1.72명, 혼후 남편을 포함하여 평균 1.19명과 관계를 맺었다고 말한다.
이들은 또 남성이 사랑을 고백하고 여성이 받아들이는 전통적인 도식을 거부하고 여성이 먼저 청혼했다는 부부가 더 많았다(53.6%). 이들은 개방적인 성의식에 견줄 만한 자유로운 결혼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결혼은 그 개방성만큼이나 불안한 점도 가지고 있다. 결혼한 것을 후회해 봤다는 그들의 대답은(남편 30.0%, 아내 52.8%) 선배 부부들의 그것(남편 30대 22.5%, 40대 19.5%, 50세 이상 11.1%:아내 30대 44.6%, 40대 24.6%, 50세 이상 38.3%)에 비해서 높은 수치다.

3. 한국 교회 20대 미혼 남녀의 성의식과 결혼관

교회 미혼 남녀의 성의식과 결혼관이 일반 한국인의 그것과 얼마나 같고 다른지를 비교해 보기 위해서 약식 설문을 실시하였다. 아래의 내용은 서울대교구 자양동 본당, 금호동 본당, 신수동 본당 총 69명의 20대 미혼 남녀(남성 34명, 여성 35명)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것이다.
먼저 결혼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는 질문에,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에 남성 47.1%, 여성 28.6%가 긍정했다. 그런데 ‘꼭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에는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이를 긍정적으로 보았다(남성 50.0%, 여성 68.6%). 또 지금 결혼하고 싶다면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서’에 남성 69.7%, 여성 64.7%가 응답했다. 결혼이 꼭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는 남성 58.8%, 여성 45.8%가 ‘결혼은 인생에서 선택의 문제일 뿐이기 때문이다’에 답했다. 이를 통해서 볼 때 교회의 20대 미혼 남녀도 ‘사랑’이 결혼의 가장 큰 전제 조건이지만, 결혼은 다른 여러 가지 가능성 중 하나인, 일종의 선택 사항일 뿐이라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
혼전 동거나 계약 결혼에 대해서는 남녀가 약간의 차이를 보였다. 곧 ‘절대로 안 된다’에 여성은 51.4%의 응답을 해서 남성의 32.4%를 압도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가능하다’는 대답에서는 남성이 64.7%의 응답률을 보여 여성의 45.7%를 크게 앞질렀다. 이는 남성이 여성보다 훨씬 더 개방적인 결혼관과 성의식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다음의 혼전 성관계에 대한 의견에서도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혼전 성관계가 절대로 안 된다’에 남성은 26.5%, 그리고 여성은 40.0%가 응답했다. 이와 반대로 ‘서로 사랑한다면 관계를 가질 수 있다’에는 남성이 67.6%의 찬성률을 보였고, 여성은 42.9%의 응답률을 보였다. 그러나 이는 남녀를 비교했을 때 갖는 수치이지, 여성들간의 의견에서는 혼전 성관계에 대한 개방적인 시각이 좀더 우세함을 알 수 있다. 또한 ‘성관계와 결혼은 별개의 것이다’에도 남성 5.9%, 여성 8.6%가 응답했다. 이는 대체적으로 성과 결혼에 대한 이중적 의식으로 생각된다.
이혼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에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에 남성 55.9%, 여성 14.3%가 응답하였다. 이것은 ‘경우에 따라서는 할 수 있다’에 남성 38.8%, 여성 71.4%가 응답한 것을 비교해 볼 때,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더 이혼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것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 기혼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억압적인 현실에 있는 기혼 여성의 위치에 대한 우려가 이런 식으로 드러난 것이라 볼 수 있다.
결혼관을 형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설문에는 ‘부모, 형제, 친구들의 결혼 생활 또는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얻는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남성 61.8%, 여성 77.1%). 이 밖에 ‘언론과 대중 문화’(남성 11.8, 여성 2.9%), ‘교회의 교리 교육과 성사 전례’(남성 5.9%, 여성 11.4%)가 본인의 결혼관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여기서 교회의 교리 교육이 젊은 미혼 남녀의 결혼관을 형성하는 데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함을 볼 수 있는데, 이는 하루 빨리 고쳐져야 할 것이다.
위의 설문 조사에서 나타난 수치들이 현재 한국 교회 20대 미혼 남녀의 생각을 모두 대변한다고는 할 수 없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본 조사가 가지는 약점이지만 20대 미혼 남녀의 결혼에 대한 대략적인 정서는 읽을 수 있었다고 본다.

4. 교회 혼인 교육의 정체성 찾기

위의 설문에서와 같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서’ 사람들은 결혼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결혼의 전제 조건으로서의 사랑은 때로 무시되거나 합리화의 수단으로 남용되기도 한다. 때로 우리는 시장의 상품처럼 거래되는 결혼, 재산의 보전과 더 나은 부의 축적을 위한 결혼도 목격하고 있다. 여기서 사랑은 부수적인 것일 뿐이다.
또한 성관계를 혼인 제도 내의 고유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도 이제는 옛말이 되고 있는지 모른다. 사랑을 이유로 젊은 남녀들은 혼전 성관계를 갖고, 사랑을 이유로 기혼자들은 혼외 정사를 갖는다. 이들의 사랑은 결혼 제도를 넘나든다. 아니, 사랑의 지상 명제가 결혼 제도를 무화시킨다.
자녀 출산이 혼인 안에서 이루어지라는 법도 없다. 오히려 떳떳하게 이를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긍정하고 적극적으로 실천하려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다.5) 이런 현상은 어떻게 보면 서구의 사상과 풍속이 세계화의 영향으로 급속하게 전지구적으로 전개되는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1994년 영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32%가 혼외 출산이었다. 이탈리아에서는 겨우 7%였지만, 프랑스에서는 35%, 덴마크에서는 47%, 스웨덴에서는 심지어 50%에까지 육박했다.6) 또한 최근 보도에 따르면,7) 호주인들의 절반은 일생 결혼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법적 결혼이 아닌 사실혼 관계에 있는 남녀는 74만 4천 쌍으로 8년 전의 58만 4천 쌍보다 크게 늘어난 것으로 집계되었고, 이들 사실혼 남녀의 약 1/3은 결혼 경험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드문 경우이지만, 사회 구조와 가족 형태의 급속한 서구화를 볼 때8) 남의 나라 일로 넘겨 버릴 수만은 없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특히 일군의 여성주의자들은 사랑, 성, 결혼을 자신들의 문제틀로 삼아 이들을 상대화하는 작업에 여념이 없다. 문화 인류학자 조혜정은 그의 책9)에서 봉건, 근대, 탈근대의 사회 경제적 구분을 통해 사랑, 성, 결혼이 서구적 각본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중매 결혼과 생식의 도구로서의 성이 짝지워지는 봉건적 각본, 낭만적 사랑과 연애 결혼이 짝지워지는 근대적 각본, 또 근대적 각본의 변형인 감각적 사랑과 물상화된 성으로 이를 정리하고 있다. 이것은 ‘또 하나의 문화’ 동인들에 의해서 「새로 쓰는 성 이야기」, 「새로 쓰는 사랑 이야기」, 「새로 쓰는 결혼 이야기」등으로 심화 또는 변주되면서 그야말로 우리에게는 ‘새로운’, 그러나 서구에서는 지극히 ‘익숙한’ 여성주의적 논리들을 생산해 내고 있다.
한편 설문을 통해서 이에 대한 한국 교회의 20대 미혼 남녀의 의식을 살펴보면 정리된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현시대가 주는 여러 가지 사회 문화적 조건 속에서 자신의 그리스도인적 정체성을 확인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그것이 생각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성의 상품화와 혼인의 이벤트화로 대변되는 상업주의의 공세와, 부정적 가부장제의 온실로 가정을 묘사하고 혼인을 이에 이르는 관문으로 비판하는 여러 이념들 속에서 교회의 미혼 남녀는 갈등하고 있다.
그들의 혼란과 고민은 곧 교회의 고민이다. 교회는 가정과 결혼에 대해서 많은 문헌들을 발표하여 이에 대한 고민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요한 바오로 2세의 교황 권고 「가정 공동체」는 젊은이들의 갈등과 어려움을 돕기 위한 결혼 준비를 단계적으로 실시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크게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는 데 ‘먼 준비’, ‘중간 준비’, ‘가까운 준비’가 그것이다(66항). 이제까지 한국 교회는 가까운 준비에는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먼 준비나 중간 준비에는 거의 소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가까운 준비에는 혼인 강좌라도 있지만, 여러 의견 개진10)이 있었지만 먼 준비와 중간 준비에는 이렇다 할 만한 프로그램이나 교육이 없다. 따라서 교회는 이를 위한 체계적 준비에 지금부터라도 나서야 할 것이다. 먼 준비와 중간 준비가 없는 교회의 혼인 교육은 자칫 그 실효성을 크게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다시 문제가 되는 것은 교육의 양이 아니라 그 질적 차원에 대한 고려이다. 아무리 교회가 전달하려고 하는 내용이 불변의 진리라 하더라도 이를 담는 그릇은 구체적 상황에 적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의 미혼 남녀들은 이른바 ‘순결 교육’으로 명명되는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에 흔쾌히 동의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주체적으로 자신의 이성과 교회적 판단을 일치시키고, 이 세계의 모순을 비판적으로 직시하며, 구체적인 갈등과 선택의 상황에서 이를 해결할 신앙적 이론적 도구들을 원한다. 이를 위해서 교회는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할까?

1)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혼인율의 경우 1970년에 인구 천 명당 9.2쌍에서 1980년 10.5쌍으로 약간 증가하였다가 1996년에는 다시 9.1쌍으로 나타나 지난 26년 간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통계로 본 대한 민국 50년의 경제 사회상 변화」, 1998).
2)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권고 「가정공동체」, 4항 참조.
3) 「한겨레 신문」 1993년 7월 11일자.
4) 「중앙일보」 1995년 9월 12일자.
5) 한림화, “나의 생을 책임질 사람은 나밖에 없다”, 「새로 쓰는 결혼 이야기」, 2권, 도서출판 또 하나의 문화, 1996, 121-143면 참조.
6) Anthony Giddens, 「제3의 길」, 한상진·박찬욱 옮김, 생각의 나무, 1998, 144면 참조.
7) 「조선일보」 1998년 9월 19일자 참조.
8) 앞의 ‘변화하고 있는 1990년대 가정의 모습’ 참조.
9)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읽기와 삶읽기」, 도서출판 또 하나의 문화, 1994, 35-57면 참조.
10) 송열섭, “결혼 준비의 3단계”, 「사목」 181호(1994. 2.), 25-35면 참조.